6월의 청계산---푸른하늘을 우러르며, 개구리 울음소리 들으며 자유 게시판
'행복은 무엇인가' '행복은 어디에 있는가' '당신은 지금 행복하신가' 오늘은 일요일, 늦은 아침, 행복은 우리집에 와있었다. 누룽지 끓인 밥에 시큼한 열무김치 한사발이면, 행복이 넘치고도 남지 않는가. 왕늦잠꾸러기들, 황소같은 아들넘들 깨우는 소리까지 시끄럽게 더해지면 우리집은 '행복' '행복' 소리낸다. 게으름뱅이인 내게 늦은 일요일 아침은 바로 행복의 시작이다. 거기에 은근달콤한 커피맛이 더해지면 이세상 누가 부러울 것인가. 오늘은 게으름을 너무 피우다보니 아뿔싸, 벌써 9시 40분. 커피 마실 시간이 없다. 박찬호는 4회까지 4실점하고, 쓸쓸히 강판당하고 있었다. 은근달콤한 커피의 행복은 다음으로 하고, 어서 6월의 청계산을 만나러 가자. 산행을 서둘러 꾸리면서 '꼰대'의 잔소리를 눈이 반쯤 잠긴채 야구중계를 보고 있는 둘째녀석에게 쏘아댄다. '1년전 박찬호는 하늘 찌를듯 하였었는데, 요즈음 그녀석은 왜 저리 맨날 땅바닥에서 굴러다닌다냐?' '왓 두유 싱크 어바웃?' 보나마나 둘째놈은 인상을 긁으며, 나의 떠나는 뒤통수를 보고 있을 것이다. '잘 다녀 오세요' 소리는 들리지만 아마도 곧 소파 위로 놈의 머리는 떨어질 것이다. 8월이 되면 늦은 나이에 군대를 가야 하는 것이, 애비는 걱정이나 놈은 태평이다. 첫째넘은 아직도 침대위에서 벽에 기대어 비몽사몽. 그래도 빼먹지 않고 일요일 성당 미사를 챙기는 것을 보면 신통방통이다. 복학하여 어려운 강의 준비해야 한다며 힘들어 하는 것을 보면, 내가 해버릴까 노망떨기도 해본다. 집사람을 꼬셔서 산으로 가자고 유혹을 해보지만, 나는 이미 왕년의 그 청년이 아닌 모양이다. '내가 미쳤어요. 그 뙤약볕에 고운 살결 태울 일 있게?' 하고 이유를 되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따라가 봤자 '인생이란 무엇이냐'류의 내 시시콜콜한 공자왈이 싫은 것이리라. 차라리 집에서 애새끼들까지 모두 쫓가내고 나면 '나홀로 집에'가 더 좋다는 것 아닌가. 그래도 산에 가는 사람 못가게 말리지 않고 풀어준다는 것, 얼마나 고맙고 행복한 노릇인가. 우리집 일요일 아침, 늦게 시작되는 나의 행복은 청계산으로 이어진다. 은근달콤한 커피맛을 보지 못하고 가까스로 청계산 입구에 도착한 시각은 10시 50분경. 78-1 버스속에서 농대 후배이자 옛 직장 동료인 김변호사를 우연히 만났는데, 그는 어쩌면 나와 소위 코드가 비슷한가 중심적 주류를 못견뎌하는 변방적 비주류 브랜드. 많은 사람들이 '가지 않은 길'로 매봉을 가자고 한다. 그는 불교철학에 심취하여 산사수련도 여러번, 포교사 자격까지 갖고 있다고 한다. 말이 더 많은 나보다 그의 말 하나하나는 산속처럼 나를 시원하게 한다. '세상은 넓으나 좁으며, 물질을 털고 정신을 사는 대단하고 무서운 사람도 많다' '세상만사 인연의 끈에서 시작하고 또 끝나는 오묘한 우주의 섭리를 이해하고 깨달아야, 겸손해져야' '행복은 마음속에 있는 것, 가까이에서 찾아야지 멀리 가서 헤매는 것은 멍충이' '무소유의 행복' 나에게 던지는 화두일 것이다. 그를 어찌 15년여만에 버스속에서 해후하는 인연이었단 말이냐. 드디어 매봉 582.5 미터. '내 아무것도 가진 것 없건마는 머리위에 푸른 하늘을 우러렀으매 이렇듯 내마음 행복하노라' 유친환님의 시 '행복'이 바위돌 위에서 빙긋이 웃으며 서있었다. 우리의 행복이란 무엇인가. 행복은 어디에 있는가. 매봉에 올라와 땀닦고 있는 사람들을 보는 것도 행복이다. 일요일 게으름을 털고, 가족들과 함께, 친구들과 함께, 회사동료들과 함께, 아니면 '나홀로'일지라도, 모두 이미 행복 속에 있다. 하산길을 어떻게 잡을까. 김변호사는 헬기장 오른쪽으로 내려가면 옛골로 떨어지는데 역시 '가지 않은 길'로서 '맛'과 '멋'이 색다르다고 하였다. 옛골에서 거꾸로 매봉을 거슬러 올라온 적이 있었으나, 내려가는 길이 더 좋다는데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원더풀' 곳곳이 시골맛이 물씬 풍기는 산길이었다. 옛날 어린시절 시골에서 나무짐 등에 지고 오르내리던 그 길과 다름이 거의 없었다. 일요일인데도 사람들이 많지않아 인간의 독기가 아직 덜 밴듯, 6월의 산속은 자연을 그대로 보여주었고 나무들은 햇볕을 촘촘히 가려주어 내내 우리들에게 시원한 마음을 만들어 주었다. '행복이 무엇이냐' 우리들 가까이 있다는 것처럼 행복은 내가 걷고 있는 바로 산속에 나와 함께 웃고 있었다. 헬기장에서 1시간여쯤 지났을까. 갑자기 눈앞이 확 트이고 마음이 힘차게 열리고 있었다. 아니, 이런 곳에 이렇게 넓고 시원한 공간이 있었다니, 내려다보이는 옛골이 저만치서 천천히 하산길을 마무리하라고 손짓하는듯 하였다. '개골개골' 뒤집어놓은 흙더미속인가 아니면 어디 풀밭속인가 논못자리도 없는데, 발끝에서 귓가로, 마음속으로 개구리 울음소리가 계속하여 '개골개골'해댄다. 환영하는 것인가 알려주는 것인가. '행복이란 별것 아니다. 바로 이런것이 행복이다'고 하였다. 하산길의 마지막은 시큼한 김치가 좋아 단골이 되어버린 '버섯과 묵'에서, 막걸리 한병에 두부김치, 그리고 산채밥. 식사 후 써비스로 나오는 '다방커피'같은 막뽑아주는 커피도 맛있다. 오늘따라 산행객이 왜 이리 많은가. 모두들 개구리 울음소리 들으러, 푸른 하늘 우러르러, 행복을 찾으러 청계산에 왔단 말인가. 소란스러움 속에서도 나는 오늘 일요일, 행복하였다. 다음에는 집사람을 꼭 꼬셔서 와야겠다. 왕잠꾸러기들, 황소 둘을 코를 뚫어서라도 끌고 다시 오고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