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사반 사역과 통닭
6주간의 기본훈련.
훈련병이 6주간의 기본훈련을 마치면 대한민국의 정예군인이 되는 것.
그러나 그 과정은 끊임없는 집합과 기합. 총검술이나 제식훈련은 그렇게 어려운 것이 아니었다. 그 사이사이 촘촘히 들어있는 비공식적 군기잡기.
조금의 틈만 생기면 고향생각을 하게 되고 그러다보면 딴생각을 하게 되니 이를 미연에 방지하려면 딴생각을 못하게 끊임없이 기합을 준다는 것. 앉았다 섰다 뒤로 취침 앞으로 취침은 기본. 시도때도 없이 군기잡는 기합이 있었다.
취사병사역은 하나의 탈출구. 운이 좋으면 기본훈련에 빠질뿐더러 취사반 사역이라는 것이 난이도가 높은게 아니고 일종의 기간병 보조역할이라 하등 어려울 것이 없었다.
더 좋은 것은 취사가 끝나면 남아서 배부르게 배를 채울 수 있는 것은 취사반사역병만이 갖게되는 특권이었다.
특식이 나오는 날의 취사병 사역은 모두의 선망이었다.
내가 논산훈련소에 입소한 것은 날짜로 치면 10월26일이니 초겨울. 훈련소의 초겨울 아침이른 시각은 손이 꽁꽁 얼어붙는 살얼음추위.
이런 추운날 취사반 사역은 해방구. 취사반 안은 춥지않을뿐더러 특식이 나오는 날은 그 특식까지 배부르게 먹을 수 있으니 더바랄 것이 없었다.
어느 날 나는 운좋게 취사반 사역에 뽑혔다.
사역일반이 그렇듯이 사역하는 중간중간 쉬는 시간이 되면 기간병이 훈련병을 하나하나 불러세워 고향이 어디냐는둥 시시콜콜 물어보며 시간을떼우기 일쑤였다.
기간병; 네 고향이 어디야?
사역병; 서울입니다.
기간병; 서울이 전부 네 고향이냐?
사역병; 서울시...구...동...번지....
기간병; 그만그만...
기간병은 기간병대로 사역병은 사역병대로 뻔한 문답으로 시간을 떼워가면서 군대시계를 흘려보내고 군대제대날짜를 손꼽아 기다렸다.
취사반사역이 끝나면 바로 내무반에 돌아가 점호를 받아야 했다.
그런데 취사반 고참병장이 나를 부르더니 점호빠지고 더 취사반에 머물다 가라는 것이었다.
나는 놀래서 그래도 되느냐 물으니 이미 내무반장에게 말해놨으니 걱정하지말고 점호끝나면 들어가라는 것.
아다시피 내무반 점호는 그날의 일과를 마감하는 절차. 따라서 군기잡기가 보통이 아니었다. 침상일열에 정렬, 침상 3열에 정렬...느닷없이 머리를 침상에 박는다 실시! 하면서 훈련병들의 몸과 마음을 다잡기 일쑤. 소위 고향생각이 나지않도록 다잡아채는 것.
따라서 점호를 받지않으면, 오죽하면, 군대 말뚝박는다 하겠는가?
점호를 빼준다니 이 얼마나 신나는 일인가? 그 취사병고참의 고향이 마침 해남이었는데 나의 고향과 가깝다하여 베푸는 호의였다.
고향사람 덕을 본 것이 유일하게 군대 취사반이었다. 호남출신.광주출신이면 사회생활하는 데 결코 플러스효과가 아니었는데 논산훈련소 28연대 취사반에서 본의아니게 난생처음 고향덕을 보게 되었다.
내무반 돌아가는 길에 그날의 특식인 통닭 한 마리를 챙겨주기까지하였다. 내무반에 돌악가서 옆동료들과 나눠먹으라. 그 취사병고참은 나중에 복받았을 겨!
점호가 끝난 내무반. 조용조용 조심조심 내무반 모포에 들어가서 옆동료를 깨워 통닭을 발라먹은 기억이 엊그제 같다. 훈련병의 뱃속은 언제나 비어있고 부족할뿐인데 통닭이 들어오니 얼마나 신나는 달밤이었을까보냐.
훈련병 내무반, 취침시간, 불꺼진 침상 모포속에서 겁대가리 잠깐 홀딱 잡아잡수신 훈련병들이 먹는 통닭의 맛이라니...누가 이 기막힌 시츄에이션속 기막힐 맛을 기억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