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평원농상 주식회사’, 한국참깨시장의 뉴스타의 탄생이었다.
나는 Huyton의 Mr.Philip으로부터 한국정부 참깨입찰의 한국대리인으로 지정 Nomination을 받았으니, 대단한 행운이었다. 그런데도 나는 그것이 무슨 행운인지, 무슨 큰복인지 하나도 알지못하였다.
그냥 어느 이웃집 아저씨가 있는데, 그가 무슨 일을 하고자하는데, 그일을 하는데 내가 필요하고, 나의 도움이 필요하다하니, 그저 그냥 그의 일을 도와주는 것이었다.
(세상에 이런 일이 있다니...내가 몸담고 있었던, 대기업재벌회사, 종합상사의 일이라는 것이, 일종의 국제적 비즈니스인데...그 중에 한국정부의 곡물.농산물입찰사업인데, 이를 잘하기 위해서는 국제적으로 유력한, 공급경쟁능력이 있는 해외공급자 확보가 최우선되는 일이고, 해외유력공급자를 확보하기 위하여...종합상사원들은 수단방법을 가리지않고 뛰어다녀야했다. 아무리 그렇게 뛰어다니고 찾아다녀도 해외유력공급자가 ‘어서 오세요 저도 그대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하지 않는다. 이메일을 보내도 답장이 아예 없기도 하고, 답장이 온다해도 ‘우리는 이미 인게이즈드 engaged’ 하기가 십상인데...나는 그 유력공급자를, 참깨시장의 큰손중의 하나를, 시쳇말로 손하나 까닥하지않고, 오히려 '제발좀 맡아주세요', 사정사정 부탁받아서, 나의 해외공급자로 확보하였으니, 세상에는 별일도 많다는데 그중의 하나가 바로 ‘나’였다...나는 ‘그일’을 그냥 그저 이웃집 친한 아저씨의 일 하나를 도와주는 듯, 편하게 하고 있었다.)
(물론, 그와의 인연...1994년? 김일성주석이 사망하던 해, 불모지대 수단을 그의 말따라, 무작정 시장조사 찾아나섰던 때부터...인도산대두박 불이행사건 그리고 그 이후 보험사고에 대한 사후처리...최근의 중국산참깨.수단산참깨 입찰분쟁때 나의 중재까지...그와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그에게 나는, 언제나 한국의 '귀인' 이었고 언제나 ‘백기사’가 되기에충분하였었다.)
1996년, 가락시장 앞에 조그만 오피스텔을 얻어 아침마다 출근해도 할일이란 것이, 새사무실이면 온갖 무가지 신문들이 들어오고 그 신문들을 모두 읽고나면 특별히 할일은 없고 신문을 바닥에 깔고 아침잠 또는 이른 낮잠을 자기 일쑤의 나날이 계속되던 어느날,
그가 전화로 곧 농유공(현재의 농산물식품유통공사, 농림부 산하 국영기업체)의 참깨입찰이 있다고 급한 목소리로 알려왔다.
농유공에 알아보니, 아니나다를까 참깨 국제경쟁입찰이 이미 공고되어있었다.
나는 불이야불이야 서둘러 참깨입찰등록(해외공급자=Huyton, 국내대리점= ‘박동희’ 또는 법인)해야 했다.
급하게 사무실을 얻고, 도배를 하고, 사무용집기.비품을 사들이고...그리고 아침신문을 사무실바닥에 깔고 잠을 자던 나에게, 드디어 일거리가 생긴 것이었다.
‘창업’은 하였는데 개인으로 할까? 법인으로 할까? 뭐 아직 특별한 일이 없으니, 사업자등록을 하지않고 미루고 있었는데, 농유공참깨입찰이 떴으니 더 이상 미루고 있을 수가 없었다.
잠시 ‘박동희’ 개인으로할까? 법인으로 할까 고민하다가, 이왕 시작하였으니 제대로 해야지싶어 ‘법인’으로 사업자등록을 내기로 하였다.
다음 문제는 그럼 법인 이름을 무엇으로 할지 금방 떠오르지 않았다.
큰뜻을 담아야하고, 곡물.농산물을 취급하는 상사를 뜻하는 의미를 담고있는 이름을 지어야했다. 그러나, 거기에 그때 유행하던 영어식 이름은 피하고 싶었다. 그런데 그것이 그렇게 쉽고 간단하지 않았다. 좋은 이름들은 이미 법원에 법인이름으로 등록되어있었다.
두글자에서 세글자로...하였더니, 법원에 등록된 이름에서 해방되었다. 난산 끝에 태어난 이름이 ‘대평원농상’이었다.
맨처음에는 미국의 대평원 The Great Prairie, 중고등학교 지리시간때 배웠던 미국의 대평원.대초원이 생각났고, 시베리아 벌판, 만주벌판..남미의 대평원 등 세계의 대평원들의 곡물.농산물의 트레이딩하는 ‘법인’이면 참 잘되었다 싶었다. 거기서 생산되는 곡물.농산물을 트레이딩하는 것이니 ‘농상’, 대평원농상(주)가 되었다.
(훗날, 회사 안내장을 돌리고, 입찰참가를 하였더니, 이구동성으로 왜 회사이름이 두자가 아니고 세자로 하였느냐, 부르기에 쉽지가 않다..‘농상’이 무엇이냐? ‘농산’을 잘못 표기한 것 아니냐, 왜 영어식이름으로 했으면 부르기 좋고 기억하기 좋은텐데...왜 ‘대평원농상’으로 하였느냐고 불평아닌 뒷소리를 들어야했다...그래도 나는 왜 ‘대평원’을 회사이름으로 지었는지
열내고 침튀기면서 늘어지게 설명하러 들었다.
그것이 나였다. 나는 내가 좋다.옳다고 하면 그냥 밀어붙였다. 영어식이름을 그냥 써버리면 간단할 껄 나는 그것이 죽기만큼 싫었고, 농산물.곡물을 국제적으로 취급한다는 뜻이 담긴 ‘농상’을 끝까지 고집하였다. 답답하고 고집불통의 대명사, 그것이 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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