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일요일에도 출근하여 모든 Telex파일들을 읽어냈다. 'Peter Cremer의 선박조출료'받아내기.//보관된 파일들을 읽어낸 후,
나는 다음단계로...미결클레임 해결에 들어갔다. 작은 것은 그냥 리스트업만 해두고, 우선 큰 것 중심으로 마무리 짓기로 하였다.
그 중, 눈에 띄는 해외거래선이 Peter Cremer였다. 농산부의 모든 거래선들은 내가 거의 모두 아는데, Peter Cremer 만은 아니었다. 물론, 해외사료곡물 Trading House의 하나인 것은 알았지만, 우리 해태상사의 고정거래선일 줄은 모르고 있었다.
알고보니, 나와 사료곡물사업을 함께 시작했던 신병0대리가 개척한 독일의 해외사료곡물 Trading House. 한국의 사료곡물시장에 해태상사와 함께 참여하였는데, 의외로 사업실적이 매우 좋았다. Peter Cremer의 공급능력이고 이를 개발하고 잘 안내한 신병0대리의 공이었다. 그러나, 수많은 계약중에서 마지막 단계인, 사후관리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채로 남아있었다.
(사료곡물등 대량벌크화물은 콘테이너가 아닌 대형선박으로 운반공급하는데, ‘용선계약’을 하여 곡물공급계약을 이행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대형선박이 어떤 조건으로 운항했느냐에 따라, 운반선박이 선주와 용선자의 이해관계가 서로 상충하기 때문에,즉, 하역작업이 빨리 끝났느냐 아니냐에 따라 사후정산을 하게 된다...이를테면, 해당선박이 30일 걸려 용선계약을 완결하기로 했는데, 35일이었느냐 25일에 끝났느냐에 따라, 선박유지비용이 절감 또는 절상되는 것이니, 35일 걸렸으면 체선료가, 25일 걸렸으면 반대로 조출료가 발생하니, 이에 대한 사후정산절차가 있는 것...보다 디테일한 조건이 있지만...크게 대충 이야기하자면 그렇다.)
나는 계약현황판을 요약하라 지시하고, Peter Cremer에게, 긴급 전문을 보냈다.
미결된 체선현황에 대하여, 조속 해결이 필요하다는 내용이었다.
그런데, 바로 답장이 오지않고, 뜻밖에 신대리에게서 전화가 왔다. 무슨 큰문제도 아닌데 왜 그렇게 해야 하느냐는 것.
나는 신대리 전화를 받고 두 가지 사실에 대해서 놀랐다.
하나는, Peter Cremer가 아닌 신대리가 왜 나오느냐는 것.
(이로써, 김차장과 신대리가 창업한, KS무역은 Peter Cremer를 주요공급선으로 하여 한국사료곡물사업에 뛰어든 것이 판명되었다.)
둘은, 체선료/조출료등 사후정산이 왜 하찮은, 사소한 일이냐는 것.
(선주와 용선주 사이의 계약내용에 따라, 체선료/조출료가 한푼도 발생할 수도 있으나 반대로 상당한 금액의 사후정산이 필요한 경우도 많아서, 구체적 선박사용일수을 확인하기 전에는 뭐라 확답할 수 없는 것인데, 신대리의 발언은 ‘건방졌다’.)
엄밀하게 이야기하자면, 그때 당시, 아직도 Peter Cremer는 해태상사의 거래선으로, 해태상사의 ‘자산’이었지, KS무역의 자산이 아니었다. 법률적으로는 KS무역은, Peter Cremer의 체선료/조출료 사후정산에 관여할 수 없는 것이었다.
신대리 언행이 괘씸하였지만, 옛부하직원이라 내색하지않고, 사료협회/축협 바이어들과의 사후관리에 집중하였다.
사후정산하는 과정에서 Peter Cremer의 사업윤리상 예의에 벗어나는 행위(해태상사에게 미리 에이전트계약 해지통보없이, 일방적으로 KS무역과 신규대리점계약을 한 것은, 매우 부적절한 행위였지만, 그들 담당자들은 일체의 사과한마디 없었다.
나는 이를 일단 집고 넘어갔으며, 그들의 사과여부는 떠나서, 빠른 시일내 조출료 송금을 재촉하기에 이르렀다.(모든 계약의 선적이행현황을 뽑아놓고 보니, 체선도 일부 발생했지만, 배가 일찍 출항해서 막대한 조출료가 발생하였다.)
KS무역과 Peter Cremer의 법적문제를 다퉈봤자 큰 실익이 없고 또한 옛부하직원과의 싸움이 보기에 좋지않을 것이어서, 나는 조출료의 조기정산을 요구하는 것으로, 모든 미결문제를 마감하게 되었다.
(앞서 이야기했던, 젠틀한 김차장은 내 사무실에 찾아와, 은근한 사과를 전해왔다...명시적으로 하나하나 구체적으로는 이야기하지 않았지만, 박사장의 지휘방침을 받아들일 수 없어서 부득이하게, 본의 아니게 Peter Cremer 등과 신규법인을 설립하게 되었다는 비공식.개인적 브리핑겸 사과였다.)
(나는 이런 경우, 의외로, 요즘말로 ‘쿨’하다. 구질구질하게 시시비비를 가려봐야 내가 해야할 일이 태산같이 크고 많은데...이것은 내가 시비걸 일은 아니었다. 회사차원에서 그들의 퇴사절차를 마감하면서 무슨 조치가 당연히 따를 것이니 여기에 내가 왈가왈부하는 것은, 아무리 내가 후임팀장이라해도, 직원들간의 문제이니 개입하는 것이 적절치 않다고 판단내렸다.)
김차장이 다녀간 뒤로, 곧바로 마감.
Peter Cremer를 붙들고 있는 것은 낭비였다. 바람이 나서, 이미 마음이 떠난 옛애인을 다시 돌아오라 한들 그녀가 돌아오겠는가?
(그러나, Peter Cremer로부터 조출료송금을 조속히 하는 조건이었다. 솔직히 그때 나는 조출료 받아내는, '돈'문제가 아니라 '자존심'문제가 더 컸다. 소위 대한민국의 내놓아라하는 재벌회사 그것도 종합상사에서, 직원들이 외국회사와 짬짜미해서 새법인을 차려나간다는 것이 못내 수치스러운 일일뿐더러, 더군다나 계약이행후 '사후관리'도 제대로 하지않은채, 거래관계를 마감한다는 것이, 정말 자존심 상하는 일 아닌가 하였다.
그들 Peter Cremer 독일친구들이 우리 해태를 뭐라 하겠는가..'둊도 뭘 모르는 짜식들' 하지 않겠는가? 그래서 난 너희들 그따위로 하ㅡㄴㄴ것 아니야 하며 '해태[에도 사람이 있음을 보여주고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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