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태상사(주)에서(1980-1995)

거리는 오토바이 메뚜기떼, ‘복면쓴 여전사들’, 거지떼들,그리고 젊은여인과 '잃어버린 시간'

햄릿.데미안.조르바 2019. 1. 5. 21:44

/사이공 공항을 막 나오니...거리는 오토바이 메뚜기떼 ‘복면쓴 여전사들’

 

짐을 찾아 공항을 나오니, 수많은 인파가 나를 맞이하였다. 사이공에 현지지사도 없고 또 거래선도 아직 찾지못하였으니 나를 마중나온 사람들은 물론 아니었다.

우리 70년대 김포공항이 그리하였을 것이다.(국민소득에 따라, 공항 출영객 수가 반비례한다든가? 소득이 낮을수록, 공항에 환송.환영하는 가족.친지의 수가 많아진다는 속설...우리의 70년대도 가족 누가 해외에 나가고 들어오면, 가족 거의 모두가 김포공항에 나가지 않았던가?)

 

사이공시내 어느 호텔에 가느냐? 얼마...얼마...얼마...

택시운전사들이 개떼들처럼 달려들었다. 그 중 가장 열심히 소리치며 끈질지게 따라붙는 자에게 짐을 맡기고 호텔로 향하였다.

시내로 들어가는 길에 보이는 풍경 하나...

거리에 왠 자전거.오토바이가 그리 많은가? 오토바이의 왕국이었다. 모두들 복면을 썼는데, 도로를 질주하는 ‘여전사’였다.

나중에 알고보니 여성들이 따가운 열대햇볕을 가리는 햇볕차단용 마스크를 쓰고 있는 것인데, 그것이 마치 전쟁터에 나가는 ‘여전사’의 복면처럼 보였으니, 나의 표현상상력도 말릴 수 없었다.

밤거리를 자세히 봤더니, 메뚜기떼처럼 움직이고 있었는데, 가족단위로 오토바이를 타고 있었고, 아빠메뚜기.엄마메뚜기.아기메뚜기가 한꺼번에 뭉쳐서 도로를 질주하고 있었다.

밤중에도 열대의 밤은 뜨거우니, 집에 머물러 있는 것보다는 밖으로 나와, 가족모두가 오토바이를 타고 더위를 쫓아내고 있는 것이었다.

다이나믹 코리아라고 하였지만, 그에 못지않은 ‘다이나믹 베트남’의 단면이었다.

사이공 거리 곳곳의 오토바이 메뚜기떼들은, 적어도 내 눈에 비친 그들은, 전투적이고 진취적이고 멈추지않는 베트남의 추진력을 보여주고 있었다.

 

호텔에 여장을 풀고, 시내구경을 나섰다.

오토바이 메뚜기떼, 복면쓴 여전사들이 이곳저곳에서 눈에 들어왔다.

(첫 사이공 방문때는, 거리에 메뚜기떼들이 그렇게 많지는 않았다. 그때는 도로 정체라는 것이 전혀 없었다. 그러나...첫출장이후, 주정용 타피오카칩 선적때 검품을 갈때마다 거리풍경은 달라졌다. 메뚜기떼들의 숫자가 눈에 띄게 많아져갔다...서울에는 차들이 대부분이고 오토바이가 매우 소수이지만, 사이공은 정반대. 오토바이가 99%라면 자동차는 소수, 거의 1%?. 도로 정체의 주범은 자동차가 아니라 오토바이떼때문이었다. 주정용 타피오카 Business에 대해서는, 개발팀장을 그만두고, ‘농산부장’이 되고나서.. 후술...)

 

차도에는 오토바이떼가 차지했다면, 도로에는, 거지떼들이 출몰하였다.

내가 호텔 문밖을 나오자마자, 어디서 나왔는지 한무리의 거지들이 몰려와 나늘 순식간에 둘러쌓다.

무심코 주머니에서 미화1불을 꺼내서 주었더니, 아니 이럴수가...다른 거지들이 물밀 듯이 쳐들어왔다.

나는 도망치듯 다시 호텔로 돌아오고 말았다.

저녁식사 시간까지는 아직 2시간여의 여유가 있었다.

나는 호텔 근처의 공원을 찾아갔다. 가는 동안 사이공 시내 여기저기를 눈요기할 겸, 슬슬 걸으면서, 머릿속을 정리해가고 있었다.

달려드는 거지떼들을 적당히 따돌리는 ‘노련함’도 터득했으니, 저녁시간까지 남은 시간들을 여유있게 즐길 일만 남았다.

잠시 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가는 생각, ‘아, 우리나라 6.25 전쟁후 서울거리가 지금 사이공거리와 비슷했을까 싶었다. 미군들이 지나가면 ’초코렛 기브미플리스‘ 하였을 것이다 싶었다.

얼마나 걸었을까? 10여분?

한적한 공원이 나타났다. 벤치에 앉아서 호텔에서 여기 공원까지 오는 동안, 내 눈속 카메라에 찍힌 내용들을 수첩에 옮겨적고 있었는데...어느 사이, 젊고 예쁜 아가씨가 벤치 내옆에 앉는 것이 아닌가?

나는 호기심도 나고, 이국에서 젊은여성과 이야기하는 기회이니 스스럼없이 수인사를 주고받았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는 동안, 그녀의 손길이 은연중 나의 주요부위를 드나들었다. 순진하게도 처음에는 이야기하다 실수로 정말 실수=손을 잘못놀림한 것으로 생각했는데 실수가 아니었다. 의도된 터치였다.

1989년이니 내나이 아직 청춘 38광땡,금따라지.

베트남, 이쁘고 젊은 남방여성의 손길이 계속해서 닿으니, 이녀석이 주책없이 벌떡벌떡 일어나지 않은가. 그 주인양반은 준엄하기가 누구보다 제일 앞서는 주제였는데, 그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그녀석은 성질을 죽이지못하는 것.

아, 이를 어찌 다스려야 하나..우물쭈물거리며 그 주인양반은 정신이 잠깐 저멀리 외출하고 말았을 것.

가까스로 정신을 다시 붙들어메고는, '노.노.노..절대로 안돼.안돼' 하면서 그녀를 성공적으로 물리쳤다고 생각하고는, 그 벤치에서 노트에 쓰던 일을 계속하였다.

뱃속이 허전한듯도 싶어서, 저녁먹을 시간이 다된 모양인 듯 싶어서, '몇시나 됐지?'하며,  손목의 시계를 보는 순간, ‘앗, 앗불4’... 시간을 보려고 시계를 보았더니 시간이 보이지않고 시계 또한 보이지 않게 되었나니....나의 첫 베트남 방문은 두고두고 나의 머릿속에 ‘내 시계를 평화롭게 낚아채간 남방의 여인’이 깊이 박혀있다.

(내가 주책없이 고개쳐드는 녀석을 다스린다고 갈팡질팡 허둥대는 사이, 그녀는 내 손목시계를 평화롭게 나꿔채간 것이었다...성동격서? 지금생각해봐도, 웃픈 사건이었다..지금도 시계를 노린 그녀의 노력.정성을 생각하니, 얼마나 가상한 노릇인가? 나는 그것도 모르고, 딴생각을 하며 정신수습하느라 정신이 없었으니쯔쯔ㅉㅅ 하하하)

 

저녁식사를 하면서, 공원에서 일어났던 ‘시계’이야기를 하였더니, 그곳에 상주하는 한국인 가라사대, 빨리 경찰서에 신고해서 그 시계를 찾으세요...아마도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조언하였지만...

나는 일반상궤를 훌쩍 뛰어넘어 대범하게 해보자 하는 생각이 들어왔다.

‘내 시계를 얻고자, 그 여인은 얼마나 열심히 일하였는가? 최소한 그 노동의 댓가치고는 내 시계는 어쩌면 헐값일 수 있다. 일본땅콩수출사업하면서 아끼하바라 전자제품할인시장에서 사서 그동안 줄창 차고다녔으니 이미 본전은 뽑고도 남았고, 그걸 잃어버린 셈 치면 된다라고, 또 어느 훗날 하나의 재미있는 추억담으로 남을 수 있으니 남는 장사 아닌가, 그리고또, 덤으로 훗날 나의 베트남 비즈니스가 ’대박‘을 터트린다면, 쎔.쎔=그냥 퉁치고 넘어가기로 하였다.

첫 출장이었지만, 웬일인지 베트남이 싫지 않게 다가왔다.

얼마 지나지않아, 국내 주류협회 소주제조 주정용 타피오카 공급시장이 인도네시아에서 베트남이 바뀌었고, 나는 한국의 큰손바이어가 되어있었는데, 그때 1989년 첫 베트남 출장이 많은 도움을 주었다.

(내가 베트남을 다시 찾아간 것은, 농산부장이 되고나서 한참후, 인도네시아 타피오카칩 비즈니스가 또 한계에 왔다싶었을 때, Chaiyong의 Mr.Boonchai의 소개로 알게 된, 싱가포르 무역상의 소개로 베트남 타피오카칩시장을 개척하기 위해서였다. 주정용 타피오카칩 공급시장은, 태국에서-인도네시아로-다시 베트남으로 이전하고 있던 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