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호실업에서...외환과에서; '하늘은 크게 될 사람을 위하여 시련을 미리 주어 단련시키는가?'
1년여 종합상사업무를 하였지만 단순히 농수산식품수출의 보조역할만 하였을 뿐이었다.
그러던 중 갑자기 예상치않게 신설부서인 '외환과'로 전환배치되었다.
식품공학전공인 나에게 외환업무는 또 더욱 낯설기만하였다. 더욱이나 신설부서이었으므로 무슨 기준이 있다거나 선배사원이 있어서 기본업무를 안내해주지도 않았다.
모두가 새롭게 내가 만들어서 해야했다.
수출선적후 수출대금회수하는 절차인 은행네고가 주요업무이긴 했지만 수출신용장 전반에 대한 무역실무가 이해되어야 했다. 거기에 수출무역금융을 만들어내서 회사자금조달에 절대적으로 기여해야 했다. 그때는 수출금융을 한국은행에서 총괄하고 있었는데 긴급한 자금조달을 해야할 때는 한국은행 담당자들과도 논리적으로 이겨내야했다.
자존심 강하기로는 한국은행 또한 만만치 않았다. 판검사만 자존심이 강한 것이 아니었다.
내가 보기에는 그나 나나 거기서 거기, 잘난 것으로 하면 나또한 빠질 것이 하나도 없다고 자부하던 터였다. 다만 다른 것은 나는 비인기대학인 ‘농대’출신일뿐 그들에게 꿀릴 게 정말로 하나도 없었다.
그런데 업무적으로 부딪치다보면 은근히 소위 갑질을 하려들었는데 나는 이를 도저히 참아내지못했다.
갑과 을의 싸움도 싸움이지만 논리적으로 밀리면 끝장 아닌가.
나는 지고는 못사는 스타일. 관련법규는 물론 무역금융실무 외환실무등 닥치는 대로 공부를 해나갔다.
영업부서의 담당자들은 물론 각은행창구직원에게도 실무이론에서 한치도 밀리지 않게 관련외환실무를 더 철저히 공부하게 되었고, 더 나아가 특수업무라 할 수있는 한국은행 수출금융담당에게도 이론적으로 전혀 밀리지않게 관련법이나 시행령을 하나하나 끝까지 파고들게 되었다.
어느날, 회사에서는 매우 긴박한 자금조달이 필요하였다. 한국은행에 가서 특별인출을 해와야한다는 것. 나는 불이야불이야 서류를 만들어 한국은행 수출금융담당에게 찾아갔고 마침내 소기의 금액을 그날로 대출받을 수 있었다.
지금도 그날을 기억한다. 외환담당임원은 그날 백지에 싸인을 해주면서 금액이 얼마든 마음대로 먹고마시고 하라는 접대비 백지위임이었다.
술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나는 그리 많은 금액을 쓰지는 못하였지만 대단한 성과였고 나름 뿌듯한 성취감을 경험하게 되었다.
외환부서 근무가 나에게는 한편으로 나의 능력을 현재에 안주하지않고 보다 넓은 세계로 펼쳐나가는 좋은 계기를 마련해주었다.
부정적으로만 생각하지말고 주어진 상황을 적극적으로 긍정적으로 대처해나가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가 성장되어 돌아온다는 실증이었다.
(하늘은 누군가 나중에 크게 써먹으려고 할 때 그에게 먼저 시련을 준다고 하였던가? 시련을 통하여 더 깊이 성찰하면서 스스로 해결해나가는 길을 찾아가는 기회를 얻게 되는 것이니까. 어찌보면, 나의 금호실업에서의 성장과정이 그러한 것이 아니었을까? 처음에는 농수산과에서 식품수출의 일반을 배우고, 그 다음에는 외환실무를 직접 현장에서 익히게 되었다. 외환.금융업무는 영업부서에서 영업을 본격적으로 실행할 때 밑받침이 되는 기초실무지식 아닌가? 외환.금융업무 전반을 이해하고 영업을 하는 경우와 그렇지못한 경우의 차이는 어떠할까? 하늘과 땅의 차이는 아니어도 영업이 보다 탄력을 받느냐 그저 밋밋한 수준에서 머물고 마느냐의 차이가 아닐까? 고급영업과 보통영업의 차이가 아닐까?
나의 외환과 근무는 어찌보면 신의 큰 배려가 숨겨져있다고 봐야 하지않을까?
후술하겠지만, 또 그다음의 원자재수입업무까지 배우게 되었으니, 과연 하늘의 숨은 배려가 아니고는 설명이 되지않는 ‘최고의 실무코스’를 경험하게 된 것 아닌가? 농수산식품수출업무+외환.금융업무+원자재수입업무=임원 또는 최고경영자과정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누가 만들어도 이런 실무실습 황금코스를 만든다는 것은 불가능. 나는 아무도 누릴 수 없는 천혜의 기회와 경험을 갖게 되었다고 자평해본다. 후일, 해태상사와 동양글로벌에서 본격적인 해외영업을 할 때, 특히 내 회사 ‘대평원농상주식회사’를 창업하여 운영할 때 정말 많은 도움이 되었다. 시쳇말로 피가 되고 살이 되었다. 하늘이 후일 나를 크게 쓰려고 먼저 ‘외환과’ 시련을 주었으며 나는 그 시련을 참 참아내고 더 좋은 방향으로 만들어 갔다는 것이 실증되었다.)
인연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운명의 끈은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아무리 이미 정해진 운명이라해도 나의 자유의지가 전제되지않은 운명은 없다고 생각한다. 그냥 수동적으로 소극적으로 끌려가는 나의 운명이 아니고 나의 의지가 반영된 능동적 운명? 나의 자유의지까지 반영된 ‘운명’! 나의 운명은 내가 만드는 것 아닌가.)
금호실업은 나에게 여러모로 좋은 기회를 많이 주어서 고맙고 고마운 기업으로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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