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가르치는 도덕
마당 앞에 자리 잡은 늙은 매화꽃이 활짝 피어 아름답다.
창 밑의 수선화도 어느새 노란 꽃잎을 함초롬히 내밀고 있다.
이제 곧 다투어 다른 봄꽃들도 화려하게 제 목숨을 태워 꽃을 피울 것이다.
땅은 배신하는 법이 없다.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땅을 기업으로 받응 것이다’는 성서의 한 구절이 생각난다.
상추와 쑥갓과 배추를 키워 먹는 것이 경제적 가치로 보면 하찮은 것일 테지만, 그것들이 땅을 헤집고 나와 내가 주는 물을 먹고 하루가 다르게 자라는 것을 한 번이라도 본 사람이라면, 경제적 교환가치로서만 그것들을 파악하려 하지 않을 것이다.
그것들은 생명의 신비와 그 본질을 매 순간 일깨워줄 뿐 아니라 개발주의 이데올로기에 갇힌 우리의 영혼을 어떤 때, 놀랍게도 일깨워준다.
일찍이 워즈워드는 노래했다.
‘봄철의 숲 속에서 솟아나는 힘은 인간에게 도덕상의 선과 악에 대해서, 그 어떤 현자보다도 더 많은 것을 가르쳐준다’
도덕은 형식이 아니다.
우리가 진실로 믿을 수 있는 도덕이란 우리의 영혼 속에 있으며, 선의 최종적인 힘은 생명 그 자체로부터 나오는 것일 터이다.
인간주의의 본질은 인간중심주의가 아니라 생명주의라고 해야 옳다.
모든 생명은 저마다 존중받을 가치가 있다는 것을 봄철의 숲이나 뜰에 나와 서면 저절로 느낄 수 있다.
T.S. 엘리엇이 ‘4월은 잔인한 달’이라고 노래한 뜻도 거기 있을 것이다.
단단히 굳은 땅을 작고 연약하기 한정 없는 어린 싹이 뚫고 솟아나 세수한 아이같이 정결한 얼굴로 햇빛 아래 서 있는 것을 볼 때, 누가 생명에게 서열이 있다고 감히 말할 수 있겠는가.
티베트사람들은 이렇게 말한다.
모든 살아있는 것은 언젠가 내 어머니였던 적이 있다고.
생명의 윤회설을 굳게 믿는 그들에겐 너무도 당연한 말일 것이다. 사람이 죽어 다음 생애에서 무엇으로 태어날지는 전적으로 그가 살아서 행한 업보에 따라 결정된다.
사람이 죽어 사람으로 태어날 확률은 부처님 말씀에 따르자면 ‘태평양 바다 밑에 살다 백 년에 한 번씩 바다 위로 떠오르는 거북이가 떠오르는 순간, 물결에 따라 흘러 다니는 널빤지의 구멍에 목이 꿰어 들어갈 확률’과 맞먹는다고 한다.
생명의 서열주의는 현대 문명이 만든 악덕이다.
‘사람 위에 사람 있고 사람 밑에 사람있는’ 비뚤어진 풍조도 그렇거니와, 사람이 모든 생명을 오로지 제 뜻대로 할 수 있다고 맹신하는 폭력성도 문명이 만들어낸 생명 서열주의의 악습이다.
봄은 생명이 발화하는 시기다.
꽃이 아름다운 것은 말할 것도 없이 그 꽃이 제 목숨을 바쳐 그것을 피워냈기 때문이다.
미물도 마찬가지고 짐승들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소중하게 여겨야 할 것들은 꽃을 피우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과정이지 꽃이라는 결과물이 아니다.
그게 사람이라면 더 말해 무엇하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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