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의 정상을 찾아서;
산악인들이 고산을 오르는 방법 2가지
-극지법 등반=등정주의
-알파인 스타일=등로주의
삶의 길이라고 뭐 다르겠는가?
자본주의적 무한경쟁이 세계를 지배하는 세상에서, 우리가 그 경쟁의 게임 속으로 뛰어들 때 먼저 주체적으로 결정해야 할 것이 있다면 바로 이것이다.
등정주의 이데올로기로 무장하고, 수단과 방법을 가릴 것 없이 오직 높이의 최고를 겨냥할 것인가,
아니면 남과 상대적으로 경쟁해가는 높이서열에 대한 목표는 차선으로 미루어두고, 그것보다 먼저 주체의 고유성을 좇아 내가 원하는 ‘봉우리’를 찾아 그것을 내 에너지와 판단력에 따라 오르고, 그런 다음 그것을 ‘내 봉우리’로 삼는 것에 더 가치를 둘 것인가.
선택은 물론 각자의 몫이다.
지난 반세기 우리 모두가 각개약진으로 뛰고 달렸던 삶의 산행에서 보편적으로 선택했던 방법은 단연코 극지법, 곧 등정주의 등반법이었다. 어디서 어떻게, 무엇이 되든 상관없이, 일단 높이에 따른 ‘정상’만을 염두에 두고 오로지 ‘일등’만을 향해 달렸던 이 전근대적인 등산법은, 개발 이데올로기의 강력한 지원을 받으면서 아이러니컬하게도 ‘조용한 아침의 나라’ 백성이었던 우리 모두의 가장 보편적인 삶의 방법으로 차용되었다. 이 방법의 삶에선 오직 매출 목표나 직위의 서열 같은 외형적인 가치만이 존중되었고, 그래서 게임의 룰은 無化되기 일쑤였으며, 자신의 정체성을 전제하지않기 때문에 높이 올라도 더, 더 높은 봉우리가 보일 뿐, 만족감에 이르기는 어렵다.
삶은 스포츠와 다르다.
그것의 주체가 살아있는 존재로서의 인간이기 때문에 삶을 축구장이나 농구 코트같은 것에 한정할 수 없다. 바구니에 공을 집어넣는 숫자의 서열만으로 성공과 실패가 결정된다는 식의 이데올로기는 인간의 다양성과 위대성을 송두리째 부정하거나 한정하는 결과에 닿을 뿐이다.
앉아서도 신을 느끼고 우주를 내다볼 수 있는 존재가 인간이다. 그러므로 어떤 높이에 도달하든지 간에 인간은 내면가치에 따른 만족감을 수반하지 않는 한 행복해지지 않는가.
중요한 것은 ‘나의 정상’이다.
삶에서 모든 이가 다 에베레스트를 오를 수는 없다. 세상엔 얼마나 많은 봉우리가 있는가. 높든 낮든 상관없이, 내 본원적 그리움과 지향에 따라 ‘나의 정상’을 찾아내는 것이 만족감을 얻는 일차적 관문일 것이고, 그다음엔 그것을 향한 나만의 길을 찾아내고 오르는 것이 성공으로 가는 이차적 관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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