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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2박 4일의 출장 그리고 노래방을 다녀와서

햄릿.데미안.조르바 2018. 11. 10. 23:27
2004. 12월 17일. 2박 4일의 번개출장 그리고 노래방을 다녀와서

하는 일의 특성상, 난 갑작스런 출장에 항상 준비되어 있어야 한다.
국내에서야 언제 어디이건 크게 부담되지 않지만, 해외의 경우에는 때론 '빵빵칠'을 흉내내기도 한다.
어떤 중요한 입찰을 하기전이거나, 또는 먼저 계약을 하고 나서 현지의 확보된 물건을 확인하기 위하여 거나, 또는 선적을 정말 하는지를 꼭 확인할 필요가 있거나, 할 때에는 하루 이틀 번개출장을 가기도 한다.

이번에는 앞으로 곧 있을 입찰에 새로운 공급자로 누구를 해야할지, 확신이 서지 않아 호치민에 날아가서 맞선을 보기로 하였다. 서울에 앉아서 그냥 결정해버리면 나중에 낭패를 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서로 눈을 맞추어 보고, 서로 입도 맞추어 보면서, 상대방의 진짜 냄새를 난 맡아내고 나서야, 일을 저지른다. 그가 어떻게 사는지도 둘러보고, 사무실 분위기는 어떤지도 킁킁거리면서, 나하고 사업궁합이 맞는지 어떤지, 확인 또 확인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배떼기'로 움직여야 하므로 말로만 하는 '뻥'을 따라갔다가는 정말 삼천포로 빠져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 10일 갑작스레 밤 비행기를 타고, 한밤중에 호치민에 내려서, 다음날 11일 아침 호치민 근교에 있는 보관창고를 둘러보고, 다시 다음날 12일 하루종일 앞으로 있을 입찰상담을 하고, 그리고 또 그 날로 밤 비행기를 타고, 그리고 13일 오전 서울에 도착하여야, 저녁 약속을 맞출 수 있지 않은가, 그렇게 번개출장을 해야했다.

온몸이 몸살이 들려는지 욱신거리고, 비행기 안에서 밤잠까지 설치니 제정신이 왔다갔다 하였다. 더군다나 그 날, 호치민의 새벽 1시 비행기는 기계고장으로 인하여 1시간 반쯤 지연출발까지 하여, 더 몸과 마음을 태웠다.

13일 토요일, 기러기들과의 저녁식사 약속이 아니었다면, 엄살 좀 부려서 며칠 넘어지고 싶었는데, 이왕 넘어진 김에 며칠 푹 쉬어 버릴까도 해보았는데, 약속은 약속이었다.

약속시각보다 한참 늦게 도착하였지만, 모두들 너무나 편안하여 어떻게 식사를 마치고 시간이 갔는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재미있게 지나갔다.
'영신'은 지난 모친상 답례로 꼭 식사값을 내야한다고 주장하여 어찌 막을 수가 없었다.
또, 기회를 놓쳐버린 '인옥'은 자연스레 2차 노래방을 자기가 챙기겠다고 하여 또한 말릴 수가 없었다. 아들을 외고에 입학시킨 즐거움을 기념해주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30분만, 30분만 더 하던 노래방이 밤 11시가 넘어서야 끝이 났다. 노래방을 가자고 하지 않았다면 얼마나 서운해 했을까, 나는 피곤도 할뿐더러 이 나이에 무슨 노래방? 하면서 속으로 누군가가 간단히 차 한잔 하고 가자고 하면, 그 쪽으로 밀어붙일 요량이었는데, 아무도 이의를 달지 않으니, 별 도리가 없었다.
한바탕 소리소리 지르고나니 몸과 마음이 개운하였다. 그래 이렇게 가끔 소리를 질러야 건강에 좋다는 것이구나, 새삼 깨달았다.
목이 조금 잠겼지만 몸 상태는 생각보다 나쁘지 않았다. 피곤함과 졸리움이 없어져 있었다.

어제 오늘, 혹 몸살이 날까 걱정 또 걱정하고 있었는데, 오늘 아직 괜찮다. 그날 이후 몸살 기운까지 어디론가 도망간 모양이어서 난 기분이 썩 '나이스'가 되었다.
다음에 또 노래방 가자고 하면, 못이기는 척 따라갈까? 아니야, 노래방 가자고 하면 '차나 한잔 하지 뭐, 노래방은 무슨 넘의 노래방? 할 것이다. 모두들에게 자칫 '왕따'당할지 모르지만.....

1 년 후에나 보자고 하였으니 당분간 노래방 갈 일은 없지 않겠는가, 나는 혼자 오늘 중얼거렸다.


출처 : 68 기러기
글쓴이 : 박동희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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