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군대에서,1970-1977

달걀후라이의 추억

햄릿.데미안.조르바 2018. 9. 5. 21:52

//달걀후라이의 추억

수원여고에 가까운 우리 하숙집은 고등동에 있었다. 우리들은 그래서 우리를 고등하숙당이라 불렀다.

고등하숙당은 모두 10여명. 수원세무서. 경기도청에 근무하는 2명을 제외하면 모두 수원여고생들의 과외선생님들.

주인아저씨는 수원역전에서 건자재상을 하고, 하숙은 아주머니가 운영하는데 억세고 강한 여장부였다.

그들에게는 아들이 셋, 딸이 셋 모두 여섯. 대식구였다.

안방과 하숙방이 여섯 그리고 매우 넓은 텃밭이 있는 큰집이었다.

보통 1주일에 한번 특식이 나왔다. 평일은 풀밭. 김치등 채소가 대부분인 식단이었다.

특식이 나오지않는 날에 계란후라이라도 나오는 날은 아주머니가 크게 인심을 낸 것. 그리 자주 있는 일이 아니었다.

어느 날, 나는 늦게 과외를 하고 저녁식사 시간 한참 지나서 하숙집에 돌아왓고 나의 저녁식사는 혼자 하게 되었다. 먼저 식사를 끝낸 하숙당들은 안방에서서 물러나지않고 저녁뉴스를 보고 있던 참이었다.

나앞에 밥상이 들어왔다. 배고프던 차 한참 열심히 밥을 먹다가 밥속을 들이파니 웬걸 ‘달걀후라이’하나 살짝 들어있지않은가?

나는 나도모르게 큰소리를 쳤다. 나; 우와 달걀후라이가 있네욧!!!

아주머니;.....

다른 하숙당들; 어어어어 왜 동희에게만 달걀후라이를 주는거야요????

나;@@@@@

 

그 하숙집 딸들이 셋이 모두 예뻤고 공부도 잘했다. 큰딸은 나와 학번이 같았고 나머지 두딸은 고1.중2. 모두 나를 잘 따랐다. 그중 하나를 나에게 점찍어주려고 했는지 아니면 내가 그래도 열심히 살면서 하숙비도 밀리지않고 잘 내니까 대견해서였는지 지금도 알수는 없지만,

그때 달걀후라이 하나는 내내 내 기억속에 자리잡고 있다. 광주서중때 광주부잣집짝꿍이 싸가지고 오던 그 달걀후라이 그리고 광주일고 입주가정교사때 점심도시락 위에 덮혀있던 그 달걀후라이...나에게는 달걀후라이만 보면 가슴이 아릿한데, 고등동 하숙집 달걀후라이는 다른색깔로 내 가슴을 아릿하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