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군대에서,1970-1977

영화여고3년, 수원시내버스조합장집 과외

햄릿.데미안.조르바 2018. 9. 5. 21:48

//영화여고3년, 수원시내버스조합장집

수원여고3년의 그룹제 과외가 끝나고, 마땅한 과외자리가 없었는데 농대학생과장께서 불렀다. 여의도고 3년생인데 입주과외자리였다.

여의도에서 수원까지는 기차통학을 할 수 있어서, 수원을 떠나야했지만 하기로 하였다.

그런데 문제는 학생의 부모님들이 야간장사를 하는지 새벽에 들어오는 것이었고, 더 참을 수 없었던 것은, 아파트내에서 골방 하나가 나에게 배정되었다. 부엌에 붙어있는 방이었는데 마치 식모방이나 마찬가지였다.

1주일을 채우지못하고 그만 두었다.

(과외선생님이란 위치가 상대에 따라 천차만별. 식모 바로 윗자리이기도 하고, 어느 학부모에게는 정말 준선생님 대접을 받기도 하는데, 세상은 당사자 자신이 만든다는 것이다.)

 

마침 나와 일고동기생인 김00이 군대에 가면서, 그 자리를 나에게 인계해주었다.

또 여고3년생. 이번에는 사립학교인 영화여고.

북문의 3층 양옥집. 수원시내버스의 총대장. 조합장집 셋째딸.

예비고사만 합격하면 더 바랄 것이 없다는 것. 수원여고 보다는 학력이 떨어지는 영화여고는 예비고사 합격률이 10%선?

 

학생은 생각보다 학습태도가 잘 잡혀있었다. 예쁘장하였지만 오로지 입시준비에 여념이 없는 듯 하였다.

그런데 한달여 지난 어느날, 나는 처음으로 여자의 화장내음을 맡게 되었다. 야릇하다고 해야할까 갑자기 기분이 묘해졌다.

다시 정신을 추스르고 열심히 수학문제를 풀어주면서 설명하고 있는데 이번에는 책상 밑으로 여학생의 무릎이 밀고 들어왔다.(과외는 2층 여학생의 방에서 앉은뱅이 책상에서 나와 학생이 마주앉아 가르치고 있었다.)

나; 야 너무 가까이 오지마!!

그;.....

다시 문제를 설명하고 있는데 화장내음이 더 강하게 코를 자극하였다.

고개를 들고 쳐다보니 그녀석의 얼굴이 거의 내코앞에 다가와 있는 것.

나; (소리치며) 야, 문제 푸는 것을 봐야지 나를 보고있으면 어떻게 해?

그;.....

 

또다시 문제를 풀고있는데 이번에는 책상 밑으로 그의 무릎이 거침없이 들어오고 있었다.

나;@@@@@

 

나는 더 이상 어찌하지못하고 그대로 그 집을 나와 버리고 말았다.

그리고 더 이상 그 학생을 가르치러 가지않았다.

그 학생의 언니가 어찌된 노릇이냐고 물어왔지만 사실 그대로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언제 가르치러 올 것이냐고 물어도 대답을 할수 없었고 더 이상 그집엔ㄴ 가지않았다.

그때 속상한 것은, 그 여학생의 행실이나 나 자신의 태도가 아니라, 가르친 날짜만큼의 과외비는 받아와야했었는데 그것을 받지도 못하였고 그집에서는 줄 생각도 하지않았단 것.

수원의 큰부자집이 야속하기만 하였다.

나는 과외를 하지않으면 하숙비를 낼 수 없는 처지. 보름여 하숙비를 챙기지못해 하숙비가 밀렸던 기억이 있다.

 

또 운명론.

그때 내가 젊은 혈기를 어찌할 수 없어서 그 여학생과 무슨 일이 났다면 나는 어떻게 되었을까?

나는 훌륭한 사위가 되었읆까? 나의 사회진출은 어떻게 되었을까?

(내가 군대제대하고 복학햇을 때 그 언니가 학교로 찾아와서 그 밑 동생을 과외지도해달라는 것을 받아주지않았다. 그때는 큰형수가 나의 하숙비를 부담해줘서 내가 과외를 하지않았기도 하엿지만 왠지 하고싶은 생각이 들지않았다. 그때 들은 소식으로는 그 학생은 예비고사에 무난히 합격하여 서울모여대에 다닌다고 들었다...내가 다시 그집에 과외를 하였다면 나의 미래는 또 어떻게 변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