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2 겨울방학....
광주상고 가까운 계림동.서방지역. 문간단칸방에서 자취할 때.
윗 상하방에는 장성출신 누나와 남동생이 살림을 하고있었다. 누나는 상고 전화교환원을 하면서 야간여상을 다녔다. 그 누나는 친남동생외에 먼 친척인가 고아출신인 남동생까지 책임지고 있엇다. 다행히 그는 상고에서 전교1등을 하여 나중에 무시험추천으로 한국은행에 근무하게 되었다. 그와 나는 동급생이라 향후 대학진학에 대하여 가끔 의견을 주고받았다.
그는 상고생이라 대학진학보다는 은행취직을 목표하였고 제일 좋은 한국은행에 들어가게 되었으니 소원을 이룬 것일까?
그때 이런저런 이야기 끝에 나의 장래희망이 뭐냐고 그가 물었을 때 나는 ‘농림부장관’이 되어서 농촌문제를 해결하고 싶다고 대답한 기억이 있다. 참 싱거운 이야기지만 그때는 그렇게 말했고 나는 어찌된 일인지 말이 씨가 된 것인지 어떤 운명인지 ‘농대’로 진학하고 말았으니 싱거운 씨를 뿌린 셈이 되었다.
그 누나는 성격이 괄괄하여 꼭 여장부였다. 낮에는 교환일 하고 밤에는 야간수업하느라 피곤할 터인데도 언제나 씩씩하고 괄괄하였다. 두 남동생이 조금이나 한눈을 팔면 소리소리하면서 군기를 잡고 닦달을 하였다.
누나에게 꼼짝 못하는 두남자들이 재미있기도 하였다.
그 누나는 김치를 담을때는 항상 여유있게 담가서 나에게 김치를 듬뿍듬뿍 안겨주곤 하였다. 어찌나 고맙고 어찌나 이쁘게 보이던지. 지금 시집가서 할머니 되셔서 잘 살고 계실 것이다.
이야기가 옆으로 새고말았는데....
고2 겨울방학이 되니 내일이면 고3. 대학진학의 무게가 온몸에 밀려들어왔다.
지금처럼 아마츄어식으로, 학교수업만 들어서는 아무래도 뭔가 부족하고 불안하였다.
그당시 학생들에게 대세는 수학은 홍성대의 수학의 정석, 영어는 송성문의 정통종합영어.
어찌할 것인가? 몇 번 고민하다가 나는 간단한 결론을 얻었다.
나는 새로이 참고서 살 돈도 없을 뿐더러, 복잡한 참고서를 이제야 새로이 처음부터 공부하는 것보다는, 기본으로 돌아가자였다.
-수학;2% 부족한것같은 수학을 보완하는 방법은, 무조건 고1 고2 수학교과서를 완전이해할때까지 반복하여 읽고 문제를 풀어나간다.
-영어; 두꺼운 정통종합영어 대신에 그동안 손에 익은 ‘완전영어’를 몇 번이고 다시 보기로 하였다.
방학이 되었지만 시골에 내려가지않고, 보충수업만 끝나면 그때부터 강행군. 매일 밤12시 취침, 새벽5시 기상. 개미 체바퀴 돌 듯 겨울방학 1달을 꼬박 들이파고 또 들이팠다.
그래서일까?
3학년이 되어 첫시험 소위 ‘진단고사’. 그해 3학년의 학력수준을 알아보기 위하여 매년 학교가 시행하는 첫 시험.
나는 그 시험에서 반 1등을 하였다. (전교성적은 공개되지않아 모르겠다.) 수학은 100점을 받았으니 기본으로 돌아가자는 나의 결론은 옳았다.
알차게 겨울방학을 보낸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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