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농장의 자유글(모두모음)

2002.4.7...뷰티플마인드를 보고나서..

햄릿.데미안.조르바 2013. 1. 31. 15:47

2.2002.04.07. 일. 뷰티풀 마인드를 보고나서

늦은 아침을 먹고 나서 오늘은 무엇을 할까 게으른 하루를 시작하였다. 일요일이 항상 내게 주어왔던 것은 적당히 게으름을 전혀 나무라지 않아서 낮잠을 잔들 근처의 산을 터벅대든 사무실에서 이것저것 뒤져도 모두 나의 일요일은 비난없는 자유였다.

오늘은 갑자기 다른 방향으로 시작되었다. 영화 하나 보러갈까. 뷰티풀 마인드 아직 할까. 친구의 마누라가 아들과 함께 보면 좋을 것이라는 말이 생각났다. 아들 녀석은 한마디에 '노'. 당연히 집사람과 나는 익숙하지 않은 순서대로 집 가까운 센트럴시티로 할 수 없이 밀려갔다. 왠 사람들이 그리 많은지 누가 모두 낳았느냐. 쓸데없는 생각과 함께 영화관을 찾아가니 '뷰티풀 마인드'는 우리에게 바로 열려있지 않고 두세 시간의 자유를 덤으로 남겨 주었다. 갑자기 자유시간이 오면 대개 나는 만지작거리며 어찌 할 바를 잘 모른다. 학교생활이나 회사생활을 꽉 짜여진 틀 속에서만 모범적으로 해왔던 사람들에게 공통된 심리상태일 것이다. 자유로부터의 탈출. 역설적으로 자유는 이럴 땐 순간적으로 도망치고싶은 두려운 존재가 되기도 하는 것이다.

자유에 대한 두려움은 쉽게 쇼핑으로 채워질 수 있었다. 수많은 마음속 망설임을 이겨내고 엉겁결에 저고리들을 하나씩 샀으니 오늘은 정말 특별한 일요일로 기억될 것이다. 자유 못지 않게 쇼핑이라는 것도 내게는 늘상 낯설고 항상 어려운 손님으로 이제껏 자리매김 되어왔었으니 말이다. 내 몸과 마음에 자연스럽게 옷을 맞추어야 하는데 옷에 내 몸과 마음을 억지로 맞추는 거 같아서, 내게는 옷을 하나 내 것으로 만들려면 여간 괴로운 일이 아닐 수 없는데 오늘은 이렇게 큰 저항 없이 저고리를 하나 얻었으니 특별하지 아니한가.

시간의 흐름은 어느덧 늦은 점심 시간에 가까워졌다. 억지 자유시간도 육신의 신호음을 건너뛸 수는 없는 모양이다. 허전해진 뱃속을 가벼운 냉면으로 채워야지. 백화점 8층의 음식점은 언제나 이렇게 북적거려 손님을 자유롭지 않게 하는가. 괜히 마음이 바쁘다. '마음 바쁜 냉면, 둘' 나의 마음은 벌써 냉면을 다 먹고 떠나가고 있었다. '어, 누구야 차 원장 아니냐'

친구는 빛나는 얼굴을 들이밀며 한껏 반가운 웃음을 보낸다. 녀석하고는 무슨 인연인가. 올해 들어 두 번째 이렇게 우연히 이곳에서 만나게 되다니. 광주와 서울은 먼 곳. 캐나다에서 잠깐 온 큰딸이 대견스런 모양이다. 눈 속에 잔뜩 자랑이 숨어있다. 우리집에 없고 남의 집에 있는 것은 시새움을 내고 만다는 것이 이상한 동물, 인간이라는데 오늘 내가 그 동물이 잠깐 되었다.

이제 영화 '뷰티풀 마인드'와 만나는 시간이다. 왜 영화제목이 '아름다운 마음'일까. 이것도 여느 평범한 연인들의 이야기이겠지.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경력의 러셀 크로우를 팔아 넘겨 보려는 상업적 작품일까. 특별히 영화감상법이 전혀 없는 나로서는 그냥 생각나는 대로 내게 물어보았다.

'환상 속의 우리들'은 그렇게 삶을 살아간다. 실제로 지금 살고 있는 삶이 정말 나의 삶일까 가끔 물어볼 때가 있다. 꿈일까 환상이 아닌가 지금 내가 정말 나인가 한번쯤 확인해보곤 하는 것이다.

'환상 속의 나'를 자주 만나는 사람도 있다. 틀에 꽉 짜여진 생활에 익숙하고 그 속에서는 누구보다도 앞자리를 먼저 차지했던 사람들은 내가 언제나 '환상적'으로 잘나 보인다. 환상적으로 계속 남보다 잘나 보이기 위하여 그들은 더 끝없이 자기만의 세계를 만들어간다. 그들의 세계가 깊고 넓게 만들어질수록 남들과의 세계는 점점 멀어지고 좁아져 없어지는, 이율배반의, 상반되는 관계를 그들은 필연적으로 만나게 되어있다. '정신분열'의 상태를 대부분은 가볍게 만나게 되지만 그러나 가끔 심각하게 만나는 경우도 있다.

'아름다운 마음'은 언제 어디서 나오는가. 인간이 인내할 수 있는 한계를 넘어서는 극한상황에서, 한 사람은 '현실 속의 나'를 갈등 끝에 버리고 버티며, 또 한 사람은 '환상 속의 나'를 끝까지 찾아내는, 암담한 현실을 이겨나가는 동안에 싹트고 자라서 만나지지 않는가.

현실 속에서 너무 환상을 좇다보면 자기분열의 악몽을 헤맬 수 있다고 본다. 꿈을 꾸지 않은 자에게 아름다운 미래가 보장되지 않는다. 아름다운 미래의 나를 위해, 젊은 날 남과 다른 '꿈'을 열심히 꾸준히 만들어야 한다. 그러나 그 꿈이 너무 지나쳐 환상 속에서 '나'를 잃지 않도록 주위와 현실적 거리를 만들어 원점을 잊지 않도록 해야 한다. 인생 '삶의 미로'에 들어가 괴물과 싸워 이겨 생환하려면 지혜의 '실'이 필요할 것이다. 그리스 신화에서처럼 돌아오는 길을 알려주는 '실'(아리아드네?)을 꼭 준비해야 한다. 자기만의 삶을 살아나가는 현실적인 지혜, 소박하고 겸손한 삶의 좌표를 설정하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