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학기를 다니고도 졸업을 끝내 하지 않은 녀석이 이제 군대를 갔다.
지난 가을 해군을 갔다가 일주일만에 돌아온 녀석이 다시 군대를 갔다.
틈만 나면 잠의 꿈속으로 들어가 깨어나질 않던 녀석이 드디어 군대를 갔다.
이제 우리집이 조용할 것인가.
학기만 끝나 가면 성적표가 왜 아니 오느냐
등록은 언제까지 하는 건데 했느냐
왜 너는 무슨 일을 맺고 끊지 않느냐
왜 너는 잠만 자느냐
오늘 강의는 없느냐
여자친구를 왜 바람 맞추느냐
한동안 우리집은 조용할 것이다.
한동안 우리집은 썰렁할 것이다.
한동안 우리집은 허전할 것이다.
2년 1주일까지 그럴까.
우리집 잠의 왕자, 돼지 발톱처럼 어긋나는 둘째가 드디어 군대를 가는데,
애비도 에미도 마지막 떠나는 그를 보지 않는 것이 좋다고 했는지
형에게 군대로 가는 동생의 마지막을 보게 했다.
잠실 전철역까지만, 출근길 사무실 가는 도중에 형제를 떨어뜨렸다.
녀석들이 형제애를 조금은 맛볼까
동서울 터미널, 춘천행 버스, 1시간 40분이 걸린다고 한다.
8시 30분에 친구들과 함께 간다고 했다.
오후 1시까지 102보충대에 입소하면, 학교생활 끝 군대생활 시작.
학교생활이 주었던 무한의 자율이 이제 군대생활 속으로 들어가면 무한의 타율로 바뀐다.
바뀌는 접점에서 잠시 반동이 있을 것이다.
인간은 환경적응의 동물, 그 반동은 새로운 적응을 위한 간단한 몸부림, 통과의례 같은 것.
지나가면 몸과 마음에 피가 되고 살이 되어 보약으로 돌아올 것이지만,
자잘한 생각들이 산을 이룬다.
다만, 폐쇄적 공간, 획일적 단순이 자유분방하기만 하고 속셈이 없이 천방지축인 녀석을 극단적으로 밀어붙이지 않았으면,
무슨 틀이 잡히지 않고 도통 어떤 질서가 아예 존재하지 않는 초자연의 세계 속에 살던 그에게, 오히려 군대생활을 통하여 알맞은 틀과 단단한 질서가 우리 살아가는데 반드시 필요함을 자연스럽게 터득하고 나왔으면,
몸 크게 다치지 않고, 마음 크게 단단해져 나왔으면,
특별한 사람으로 보다 평균적인, 몸과 마음이 너무나 평균적으로 건강한 청년으로 나왔으면,
어제 저녁식사하면서
나는 그에게 던졌다.
돈이란 무엇이냐
시간이란 무엇이냐
무궁무진한 두 보물이 네 앞에 놓여 있다.
그것들은 주인이 없다.
쓰는 사람이 주인이다.
게으른 자, 욕심많은 자를 그들은 좋아하지 않는다.
그냥 비교만 하는 자 또한 그들은 싫어한다.
우선 시간이 무엇인지 그 단초를 군대에서 만나보았으면,
그가 알든 모르든 선문답을 나는 그에게 했었다.
2년 1주일의 시간이라도 잘 쓰면서 우리 삶의 시작을 잘 만나고 왔으면,
내가 3년을 보냈던 군대를
그 형이 2년 6개월을 보냈던 그 곳에
이제 우리집 둘째가 마지막으로 갔으면…
오늘 아침 서울 하늘은 흐리고
그 하늘을 보는 내 마음도 여느 날 같지 않다.
지난해 11월, 동창회 홈페이지에 '곧 군대갈 아들에게' 담담한 편지를 올린 적이 있었지요.
이제 오십줄을 넘어서서 아들들을 군대에 보내야 할 나이들이 되었고, 우리들 지난날을 되돌아보면 군대 가는 녀석의 마음이나 부모들 마음이나 '싱숭생숭'할 것이어서, 혹 같은 위치에 있는 아니면 곧 있을 동년배의 친구들에게 그 일단의 감정을 함께 하고 싶어서, 올렸던 글이었습니다.
오늘 그 편지 속의 주인공이 다시, 이제 정말로 군대에 갔습니다.
오늘 자잘한 생각들이 금방 산을 이루었지만 왠지 그냥 너무 외롭고 초라해서, 지난해 11월, 심려했던 이야기들을 되돌려 보았습니다.
우리에게 군대는 무엇인가요?
우리의 아들들에게 군대는 또 무엇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