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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락에 콩 볶듯' 다녀온 이틀의 휴가를 마치면서

햄릿.데미안.조르바 2019. 7. 30. 1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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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며칠의 휴가였나.
    그래도 이틀의 짬이 어디인가.
    벼락에 콩 볶아먹듯, 우리는 3일의 휴가를 이틀로 줄여서 다녀왔다.
    돈과 시간을 줄여서 하는 것은 우리가 선수.

    항용 그래왔듯이 휴가는 내게는 사치,
    그러나 하지 않으면 아니 되는 통과의례 같은 것.
    우리들은 부쩍 휴가는 꼭 다녀와야 하고,
    그것도 남들이 갔다와서 자랑해대는,
    그럴듯한 곳을 다녀와야 체면이 서는 것으로 어느새 자리매김 되어 버렸다.

    그동안 회사 일은 내게 '계획적 휴가' 란 있을 수 없다고 하였다.
    그 놈의 국제경쟁입찰이 내 개인사정을 봐줄 까닭이 없는 것 아닌가.
    아무리 계획을 잘 세워 휴가날짜를 잡아본들, 오늘 입찰이 뜨면 왕창 도루묵.

    입찰은 예고 없이 시도 때도 없이 떠서 휴가에 대한 나의 체면을 언제나 납작하게 만들고
    말지만, 또한 20여 년 나를 먹이고 보살펴준 은인과 같은 존재.
    원망하며 미워할 수도 없을뿐더러, 일을 주고 있으니 오히려 감사해야 하는 것 아닌가.

    그래서 나의 휴가일정 잡는 것은,
    '장마 속에 햇볕 나는 날 잡는 일만큼' 예측하기 어렵고 실현되기 쉽지 않은 것.
    잠깐 틈이 보이면,
    쏜살같이 도둑처럼 사나흘 다녀올 수 있기라도 한다면 그것은 감지덕지.

    휴가 이야기가 나오면 나는 우리 집에서는 말발이 서지 않는다.
    전혀 무슨 말할 자리가 없다.
    '휴가의 본래 의미란 것이 일을 하면서, 틈나는 대로 시간을 내어 재충전하는 것으로서........., 남들이 간다고 미친 사람들처럼 한꺼번에 왕창 쏠려서들...........' 하다보면,
    마이크는 꺼져 있다.
    주최측이 더 말할 기회를 박탈해버리고 말기 때문이다.

    그런 내게 황금 같은 기회가 온 것.
    장마 속에 햇볕이 5일 정도 보였다는 것 아닌가.
    지난 금요일 출발,
    잘 하면 그동안 잃어버린 점수를 일거에 만회할 수 있으리라 회심의 미소를 짓고 있었다.

    문제는 갈 만한 장소인데,
    그럴듯한 곳은 이미 예약이 넘쳐 빈틈이 없고, 맨 맛하고 만만한 것이 '홍어 뭣',
    강원도 산골 '그 리조트'가 맨 날 위태위태하게 휴가를 잡아야 하는,'위험한' 나를 위하여 빈방 하나를 남겨 놓고 있었다.

    그 곳에서는 세 번만에 '공집어넣기'도 할 수 있고,
    또 인근의 통나무 골짜기에서 '개방형 아홉구멍에 공집어넣기 왕복'도 할 수 있으며,
    그리고 치악산 산행이나 근처의 계곡에서 발 담그기나 산림욕까지 할 수 있으니,
    이 정도 페케지이면 에이뿔(A+)은 아닐지라도 그렇다고 과락도 분명 아닐 것이야.

    그런데, 호사다마라 했던가.
    토요일은 친한 친구의 딸 결혼식, 대타를 보내선 안되니 금요일 출발은 불가,
    그러면 첫날 둘째날은 집에서 휴가, 그리고 셋째 날부터 일찍 강원도 산골을 가면 되겠구나, '장마 속 햇볕 같은 날들을 잡은' 나의 휴가일정 조정을 끝냈었다.

    '따르릉' '따르릉' '따르릉'
    '에미다. 막둥이 집인데, 어제 저녁에 올라왔다'

    지난 일요일 늦은 아침을 먹고,
    휴가 떠날 차비를 점검하고 있는데 걸려온 팔순 노모의 전화였다.
    휴가는 떠나야 하는데, 어렵게 상경하신 노모를 어떻게 해야 한단 말인가.

    팔순의 노모에게 시시콜콜 어떻게 설명을 드릴 수 있으며,
    설명한들 이해하실 수 있는 일인가.
    막내 부부는 이해는 하지만 원칙적이고 합리적인 셋째형이 오늘은 몹시 이기적으로 비칠 것이며,
    또, 얼마나 미울 것인가.

    '저희 집은 오는 13일에 오시지요?'
    나의 목소리는 힘없이 숨어들고 있었다.
    우리 집 사람은 벌써 죄인이 되어 있었다.

    이미 잡혀져 있는 일정을 지금 와서 '무효'로 처리할 수 없잖은가.
    어떻게 잡은 장마 속 햇볕인데 없던 것으로 해버리면,
    죽을 때까지 '휴가'에 대한 나의 발언권은 영영 살아날 수 없는 것 아닌가.

    '야, 큰넘아, 어젯밤에 뭐했어? 아직도 자고 있냐?'
    '야, 작은넘아. 어서 일어나. 뭐하고 있어?'
    '야, 짜샤들아, 짐 좀 차에 실어야지?'

    집사람은 시어머님한테 하지 못한 짜증을,
    나는 노모에게 말못한 죄송함을 애꿎은 자식넘들에게 쏟아냈다.

    우리의 휴가는 이렇게 시작되었다.

    휴가 이틀째 오후,
    아침 일찍 일어나 '그 리조트' 인근의 개방형 '아홉구멍에 공집어넣기' 왕복을 하고나서,
    간단한 점심을 마치고, '그 리조트'로 돌아가야 하는 일정이었는데,
    고속도로를 통하여 되돌아가는 것은 너무 상투적이며 무미건조할 것.

    국도를 따라 리조트가 있는 둔내를 가보면 어떨까
    시간이 좀 더 걸리더라도 고속도로에서는 보지 못할 풍광, 강원도 산골 냄새를 한번 실컷 맡아보는 것도 좋을 것이야,
    시간을 버리고 자연을 만나기로 마음을 바꾸고 나니, 자연은 벌써 나의 편이 되어 있었다.
    가까이 있는 것은 시원한 푸른 숲이요, 시원한 산바람이라,
    그들은 어느새 오래된 친구가 되어 나를 맞이하였다.

    여름은 이미 지나간 듯,
    초가을이 성큼 내 발 앞에 서있더니 어느새 마음속으로 들어와 앉아버렸다.
    산자락에도, 하늘 끝이 와 닿은 산봉우리에도 벌써 가을이 찾아와 앉아 있었다.

    짙푸른 산등성이를 따라, 이제는 푸르른 하늘이 따라가면서 또 만나는데,
    가끔 흰 구름이 그 사이를 왔다 갔다 하며 뽀시락 장난을 치는 것 같기도 하였다.
    여름을 보내고, 동시에 가을을 맞이하는 자연의 삶 한 부분을 보는 것 같았다.
    가을빛이 완연하게 나의 큰 눈 속으로 들어와 있었다.

    내 차 속의 노래방은 '꽃밭에서'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 '고래사냥'이 흐르고,
    오십을 지난 나이가 거꾸로 되돌아가서 지난 젊은 날, 꿈 많던 대학생으로 만들어 버렸다.
    그 젊은 날의 초상은 봉평으로 가는 이정표를 보았고, 곧장 '메밀꽃 필 무렵'의 이효석님을 불러내고 말았다.

    둔내의 리조트에 가면 남은 오후 시간, 서너 시간이 남는데,
    딱히 무엇을 할 것인가 없던 참에,
    '메밀꽃 필 무렵'의 봉평은 신선한 돌파구요 새로운 유혹이었다.
    떡 본 김에 제사를 지낼 수 있게 되었다.

    내 휴가의 특징은 '게릴라성'
    언제 시작할지,
    무엇을 할지,
    그것은 그 때 그 때 상황에 따라 전격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오늘 다시 그 게릴라성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산 끝과 하늘 끝은 서로 만나서 벌써 가을이 되었지,
    차 속의 노래방은 젊은 날의 옛 꿈을 불러대고 있지,
    봉평 가는 산길이 아무리 꼬불꼬불 울퉁불퉁 고행길이라 해도
    이미 멈출 수가 없었다.

    700여 미터 태기산 정상을 넘어가는 길은 숨이 찼고,
    지난번 산사태로 길들은 우리를 힘들게 하였지만,
    여름을 보내려 하고, 가을을 맞이하려는 산골 풍광을 더 많이 맛볼 수 있어 좋았다.

    오후 4시 50분,
    가까스로 봉평 읍내 그리고 '메밀꽃 필 무렵'의 그 물레방앗간 앞.
    점심을 먹고 나서 거의 2시간 반이 지나 있었다.

    ''허생원과 성서방네 처녀가 사랑을 나누던 곳''

    '돌밭에 벗어도 좋을 것을
    달이 너무도 밝은 까닭에
    옷을 벗으러 물레방앗간으로
    들어가질 않았나'

    -메밀꼿 필 무렵 중에서,

    물레방앗간 앞에 돌 위에 쓰여있는 몇 마디는,
    나를 사정없이 옛날의 소년으로 되돌리고 말았다.
    대학입시를 준비하면서도 철없고 꿈 많던 소년,

    이효석님의 '메밀꽃 필 무렵'은
    상큼한 초가을 달밤의 은은한 노래였으며,
    한 폭의 수채화 그림이었으며,
    한 편의 아름다운 서정시였다.

    '밤중은 지난 무렵인지
    죽은 듯이 고요한 속에서
    짐승같은 달의 숨소리가
    손에 잡힐 듯이 들리며,
    콩포기와 옥수수 잎새가
    한층 달에 푸르게 젖었다.

    산허리는 온통 메밀밭이어서
    피기 시작한 꽃이 소금을 뿌린 듯이
    흐뭇한 달빛에 숨이 막힐 지경이다.
    붉은 대궁이 향기같이 애잔하고
    나귀들의 걸음도 시원하다.'

    효석 문학관까지 가는 숲속 오솔길은 호젓하고 운치가 있어 좋았다.
    자칫 도시의 문명이 고약한 손길을 뻗쳤을 뻔한데도
    어떻게 간신히 그 마수에서 벗어나 있었다.

    완전히 안심할 단계는 아닐 터이지만 아직은 있는 그대로 자연을 품고 있어 다행이었다.
    암탉도 보이고 다람쥐도 달려서 숨고, 매미소리도 시골을 닮게 울고 있었다.
    도시의 매미 울음소리는 사납고 무서운데,
    시골 매미가 시골스럽게 울면서 나를 반가이 맞이하는 것이었다.

    살짝 땀이 밸 듯 말 듯한 거리, 그 오르막 끝에 효석 문학관이 있었다.
    '오늘은 휴관'
    왜 오늘 문을 닫아야 하는가?
    일요일 다음 월요일은 쉬어야 한다? 왜 연중무휴로 하면 안될까?
    잠시 우리의 문화행정을 생각해 보았다.

    문학관을 내려와 인근의 효석 생가를 찾았는데,
    자동차로 500여 미터를 가니 막다른 곳 끝, 그것은 촌색시.
    그렇지만 넉넉하여 편안하였다.

    옛 시골의 자연풍광이 그대로 넓게 자리잡아서, 내 마음이 넓어지며 시원해졌다.
    앞마당에 연하여 드넓은 텃밭은 초가을 또는 늦여름 건강한 햇살을 마음껏 담아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또 저 멀리 산자락의 산그늘까지 내려오고 있어, 내 큰 눈은 볼거리 풍성함에 벅차고 넘쳐서 더 커지고 있었다.

    강원도 산골, 늦여름 오후 6시는 거의 해질녘.
    해질 무렵의 풍광은 금빛이요 꿈빛이 되었다.
    산의 짙푸르름과 붉은 해가 산을 넘어가며 만들어내는 빛깔, 그것은 꿈빛이었다.

    푸르스름과 누르스름이 만나서 어우러지는 자연의 색깔을 누가 보았는가.
    그 자연의 소리를 누가 들었는가,
    그 자연의 냄새를 누가 맡았단 말인가.

    메밀이 활짝 더 피려면 열흘이나 보름은 더 기다려야 한단다.
    달빛 교교한 곳, 산골 밭에 메밀꽃이 흐드러질 초가을이 되면,
    소금 뿌린 메밀밭에 달빛은 짐승소리를 낼만도 할 것 같았다.

    꼬불꼬불 태기산을 오던 길로 다시 되돌아가려니 오십 넘은 나이에 떡심이 풀렸다.
    체력도 체력이지만 이제는 시간을 버리는 것이 아니고 시간을 벌어야 했다.
    조금이라도 빨리 둔내의 리조트에 돌아가 좀 쉬어야 하지 않겠는가.
    장평 나들목을 타면 고속도로로 연결된다니, 이제는 자연구경은 주고 대신 시간을 받기로 하였다.

    해질 무렵의 태기산을 넘으며 맛볼 풍광도 일품이었겠지만,
    고속도로변 짙푸른 산들이 달려나오는 것을 맞이하는 것도 못지 않게 대단하였다.
    달리는 자동차와 정지된 자연의 만남은 또 다른 우리 삶의 미묘함이었으며 아름다움이었다.
    햇살의 역광으로 빚어지는 산그늘은 또 어떤가,
    강원도의 산골 자연은 우리에게 숨겨놓은 보물 하나를 더 보여주었다.

    알프스의 산그늘도 지금 이 둔내 가는 길에 펼쳐지는 강원도 산그늘과 견주어 더 좋다 말 할 수 있을까.
    우리의 것을 먼저 알고 그리고 남의 것을 알면, 우리의 것이 어떤지 왜 소중한지 쉽게 알게 될 것이다.

    봉평 가는 산길,
    둔내로 돌아가는 고속도로 주변의 살아 움직이는 산자락 풍광은,
    또 다른 새로움으로 늦여름 아름다음을 연출하고 있었다.

    '장마 속 햇볕 나는 날 잡기 같은 휴가' '벼락에 콩 볶듯 하는 휴가' 이틀째,
    하늘은 내게 '메밀꽃 필 무렵'의 옛 꿈을 되돌려 주었고, 산그늘의 새로운 아름다움을 선물해 주었다.

    서울로 되돌아가는 길은,
    제발 막히지 말았으면,
    서울은 더 이상 숨막히고 더워지지 않았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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