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글로벌(주)에서(1995-1996)

동양글로벌에서 12; ‘입찰분쟁중재’가 마무리 되자마자, 나는 ‘동양글로벌’을 떠나기로 하였다.

햄릿.데미안.조르바 2019. 3. 9. 16:33

/동양글로벌에서 12; ‘입찰분쟁중재’가 마무리 되자마자, 나는 ‘동양글로벌’을 떠나기로 하였다.

 

나는 싱가포르 출장을 마치고 돌아왔다. 나는 ‘동양글로벌’에 중국산 참깨 2천톤 수의계약체결하였다고 보고하고, 바로 ‘사직서’를 제출하였다.

 

채사장은 깜짝 놀라면서, 왜 ‘사직서’를 내야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농유공 참깨 ‘입찰분쟁중재’를 맡으면서, 내가 말씀드렸던 ‘사임’이야기가 단순히 해보는 차원의 ‘공포탄’인 줄로 여겼다는 듯이, 그는 정말로 놀라워하면서, ‘말도 되않는’일을 들으려 하지않았다.

그렇다고 물러날 내가 아니었다. 한번 결심하면 퇴로없이 바로 ‘직진’해버리는 꼴통스트레이트 아닌가.

 

채사장은, 관리총무본부장인 이활상무를 나에게 보내서, 내마음을 한번 돌려보려고 하였다.

(이활 상무는, 경북 봉화가 고향이고, 서울대상대 경영학과와 두산그룹 출신으로, 내게는 대학 2년선배가 되었고, 하나건너 서로 아는 사람이 많기도 하였고, 사람이 좋아서 나와는 개인적으로 매우 친하였다.)

이 본부장은, 내게 무엇이 불만인지, 회사가 무엇을 잘못했는지, 회사가 어떻게 해주면 ‘박이사’마음을 돌릴 수 있는지, 수없이 반복해서 나에게 물어왔지만, 한번 마음이 굳어진 내가 마음을 바꾸기에는 너무 늦었다.

아마도, 채사상이 나의 속내를 짐작도 하지못하니, 재벌기업의 ‘이사’자리를 감히 헌신짝버리듯 할수있을까 하였는데, ‘박이사’는 그것을 아무런 거리낌없이 ‘사임’해버리니, 정말 이해못할 일이었을 것이다.

그렇다고, 이미 떠나기로 마음먹은 내가, 시시콜콜하게 옛이야기를 하겠는가?

사료곡물사업담당 직원하나 스스로 뽑지못하게 하였고, 사전 협의 한마디없이 ‘6층’으로 내 사무실을 옮겨버린, 그 ‘무례함’을 지금 이야기한들 무슨 소용이 있을 것인가?

‘동양글로벌’에 오래 근무하려 했다면, 그때 그때 나의 불만을 이야기하고, 회사에게 그 부당함을 이야기했을 것이었다.

지금껏 참아오다가 결국 ‘사임’을 결정한 것은, 내가 ‘동양글로벌’에 오래오래 있을 곳이 못된다는 판단을 했기때문이었다.

(아무런 사전 협의없이 6층으로 사무실을 옮겨야했던 그때가...나도 모르게 눈물이 뺨을 타고 내렸던 '그때'의 마음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그렇다고, 나에게 무슨 뚜렷한 ‘미래’가 보장된 것은 하나도 없었다.

그저 ‘동양글로벌’을 더 늦기전에 떠나는 것이 더 낫다고 판단했을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동양에서 '월급쟁이'가 아닌, 더 발전된 '위치'를 구축할 수 있는지 한 3년정도 힘껏 노력해보겠다는 당초의 뜻이 허물어졌으니, 그렇다면 하루라도 빨리 '동양'을 떠나, 아직 현장감각이 남아있을때, 하루라도 빨리 '동양'을 나가서, 나의 사업을 시작하는 것이 맞다는 판단을 하였을 뿐이었다.)

(해태상사를 떠날 때, ‘동양’에 가서 최소한 3년을 버티면서 내가 하고자 하는 일을 펼쳐보겠다하였는데, 그 3년이 1년으로 단축되었다는 사실만 조금 다를 뿐, 어차피 떠나야 할 ‘큰회사’이고, 이제는 나의 회사를 만들어야 하는 ‘운명’이 바로 닥쳤을 뿐이었다.)

 

내가 요즈음 잘하는 이야기로 ‘운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