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1년?...새벽의 우면산, ‘불혹 맞이 홍역앓이’
한참 때,
지난 40살 즈음?
그 때는 뭐가 뭔지 그냥 치열하기만 했다.
그 때는 모두들 그냥 앞만 보고 달렸다.
어디 쉬고, 어디 딴 데 돌아볼 시간이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늦게까지 잠을 못 이루기도 하고,
간신히 잠을 이루고 자다가도
얼마가지 않아 깨버리는 일을 자주 만나게 되었다.
하나의 병이었다.
(방콕에서 힘들 때, 자주 만났었는데....서울에 와서 또다시 만나게 되었다. 심신이 피곤한 것이리라. 어찌보면, 방콕때보다 더 힘들지 않았나 싶다.)
지금 생각하면 불혹을 맞이하는, 홍역같은 병이었다.
불혹 맞이 '홍역'
시간이 가면 낫는 것이 홍역일 수 있는데,
그 때 나는 온 몸과 온 마음에 열이 가득가득 끓었다.
회사운영이 내뜻과 나의 방향과 일치할 수 없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인데, 어느 때는 이를 참아내지못하고, 소화해내지못하고...혼자서 끙끙대는 것이었다.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난다고 하였는데...나는????
모두 잠들어 있는 새벽에
나만 홀로 깨어 있었다.
책을 봐도 글을 쓰려고 해도 도무지 집중이 되지 않았다.
돌파구는 산이었다.
그냥 자연스럽게 발걸음이 산으로 옮겨졌다.
반지하 전세살이 하던 시절이었는데
가까이 있는 우면산의 새벽은
나에겐 축복의 선물이었다.
그는 홍역 앓는 마음을 차분하게 감싸주었다.
어둠속에서 채이는, 만나는 돌뿌리는
뭔가에 집착만하는 나를 깨우는 채찍이었다.
어둠속에서 무섭게 달려드는 나무들은
나를 강하게 키우는 회초리였다.
며칠 아니 한달여,
새벽의 우면산을 다녀버릇하고
최이른 공중 새벽탕을 몇 번 치르고나니,
불혹 맞이 홍역은 어디론가 말끔히 사라져 버렸다.
곰보가 되지 않고, 내 몸과 마음은 다시 건강해졌다.
회사와의 힘든 싸움도,
현실의 끊임없는 압박도,
이제는 우습게, 가볍게 보이기 시작했다.
내가 가야할 길이 어렴풋이 보이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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