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대기발령’이 되니...회사 곳곳에서 ‘수군수군, 쑥덕쑥떡’ 말들이 많았다.
해외지사장까지 다녀왔는데, 더군다나 그동안 오늘의 해태상사의 밑바탕을 마련한 개국공신중의 한 사람인데...뚜렷한 과실도 없는데 ‘대기발령’씩이나 내야하는가?
또 한편에서는, 그래도 그렇지 ‘박지사장’이 좀 고분고분하게 회사명령에 따라야지 너무 고집부리고 ‘독불장군’식으로 하는 것은 회사조직원의 일원으로서 너무 나간 것 아니겠는가?
양쪽의 분분한 의견을 쪽집계 할 수는 없었지만, 90대 10정도로 나에 대하여 ‘호의적’인 반응이 더 많았었다.
그래서인지, 아니면 끝까지 나의 꼴통기질 때문인지, 나는 더 호기롭게 회사에 출퇴근하여 내 볼일을 보고 다녔다.
엄밀하게 이야기하자면, 대기발령받은자는 매일 총무부 지정석에 출근하여 퇴근때까지 묵언수행비슷하게 그 자리에 앉아 근무하는 것이 대원칙. 그러나, 나는 누가 뭐랄 것도 없이 내 하고싶은대로 외출하고 그동안 못다한 거래선들과의 인사 다니며 바쁘게 보냈다.
(내가 '대기발령'받았다는 소식이 다른 그룹사에도 알려진 모양..내가 일본땅콩수출할때 해태산업의 전무였던 분이 해태음료의 사장으로 계셨는데, 그분이 나의 능력을 기억하고있어, 해태음료의 해외사업을 맡겨주겠다 하였다. 그러나, 나는 정중히 사양하였다. 왜냐하면 제조업체의 해외사업이란 매우 제한적이어서, 절차적업무에 국한될 수밖에 없다고 판단했기때문이었다...물에 빠진 놈이, 배고픈놈이 찬밥 쉰밥 가릴 때였던가 싶기도 하지만, 그때 나는 그렇게 막무가내였다...참...참..참????)
그 엄중한 ‘대기발령’ 와중에도, 나는 거리낌없이 내가 하고싶은 일들을 하고 다녔으니 참 희한한 일이었다.
내일모레...곧 3개월이 지나면, 회사를 떠나게 되고, 그러면 어디서 무엇을 해야할까 고민고민해야 하는 것이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현상일 터인데, 도통 나에게는 그런 고민걱정거리가 하나도 없었다.
지금 내가 생각해봐도 그렇게 태평했다니 믿어지지가 않는다. 도대체 무엇이 나를 그렇게 태평하게 만들었을까?
비공식적으로 시험수입한 ‘멸치액젓’ 때문에?(그 멸치액젓에 대한 시장반응은 무미건조, 한톨도 팔리지않고 있었다.).\, 아니면 ‘동부산업’의 합격통지서 때문에? 이들 때문이라고 일부 말할 수 있겠지만 그것은 전혀 아니었다. 나도 모르는 무엇인가 ‘믿음’‘자신감’이 마음속에 내재해 있었던 것 아닐까?
나와 함께 박사장에게 찍힌 기획실 차장 김희0 차장이 있었다. 그는 경기고.서울대 국문과출신으로 국제상사에서 입사한 재원이었는데, 사사건건 박사장의 경영방침에 반기를 들다가 ‘대기발령’받은 친구였다. 나하고는 서울대 70학번이어서 더 의기투합하였다.
또 철학관 이야기.
사람이 어려운 상황에 처하게 되면 누구나, 학벌의 고하를 막론하고, 점집을 찾는 모양...무엇이라도, 누군가에게, 의지하고 싶을 것...빈소리라도 제3자의 말을 듣고싶을 것..
우리는 철학관이라 불리는 점집을 몇 번 함께 갔었다. 처음엔 호기심 반, 심심 파적 반으로, 다음에는 재미삼아서...여기를 가나 저기를 가나, 비슷비슷한 점괘.
학력과 경력이 서로 비슷해서인지...어느 점집이나 그나 나에게 똑같은 점괘를 내놓았다.
‘너무 고지식하다’ '너무 강직하고 직언을 잘해서 윗사람에게는 부담되고, 아랫사람에게는 인기가 많다' ‘고집 너무 부리지말고 때로는 윗사람 뜻하는대로 따라주라’ ‘강남으로 이사하면 좋은 일들이 많을 것이다’ 등등
나의 얼굴에서, 그의 말투에서...고집스럽고 고지식한 태도가 흘러나오는 모양이었다.
강남땅에 서울의 부유함이 쏠리고 있었으니, 강남에 가면 좋은 일이 생긴다는 것은 너무나 뻔한 정답 아닐까? 고민없는 사람이, 어려움처해 있는 사람이 어디 한둘일까, 철학관 점집은 눈치빠르고 머리좋은 사람이 운영하는 비즈니스였다.
(내 눈으로 확인하기 전엔, 논리적으로 이해가 되기 전에는, 어떠한 것도 약속하지 않고 실행하지 않는 나이지만, 요즈음 어느때는 헛소리라 하면서도, 철학관점집에 한번 가볼까 하는 생각이 들때가 있다. 세상 뭐, 너무 딱딱하게 살 필요 있어? 하면서 하하하. 세상 살아가는 이율배반이라니...사람의 마음이 아침저녁으로 바뀔 수 있다?고 느긋한 마음을 때로는 가져야하지 않을까? 해해해...그때 그상황에서 점집을 드나들었던 나를 추억해보고 드는 웃픈 소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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