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태상사(주)에서(1980-1995)

내 일생일대의 '대전환'=또다른 운명과의 만남, .‘긴급히 방콕으로 떠나라!!!’ 'I just called to say I love you'

햄릿.데미안.조르바 2018. 12. 29. 21:58

 

 /내 일생일대의 '대전환'=또다른 운명과의 만남, .‘긴급히 방콕으로 떠나라!!!’ 'I just called to say I love you'


(내가 곡물과장이 되기(1985.1.1)전에는 일본땅콩수출전담과인 ‘특작물과장’이었다. 곡물과의 ‘대리’이다가 과장으로 승진하면서(1983.1.1), ‘특작물과’를 설립하여 ‘과장’으로 보임되었다.)


일본땅콩수출사업을 하던중에도, 농산사업부에 무슨 중요하고 긴급한 일이 터지면, 특작물과장인 내가 ‘차출’되어 긴급 업무지원을 하였다.

정부의 긴급물가안정용으로 양파국제 입찰이 있었는데 내가 곡물과장 대신, 긴급히 시장조사차 대만에 출장하여 공급선확보와 대만양파의 품질등을 확인한 바 있었다.(시장조사후 우리회사는 입찰참가를 포기하였다.)

다음으로는, 대한주류공업협회가 시행하는 주정용 태국산 타피오카수입입찰에 낙찰되어, 소주제조업체에 공급하게 되었는데, 태국정부의 갑작스런 타피오카수출정책변경으로 인하여, 공급에 공백이 생기게 되었다.

진로.백화.보해등 소주업체의 주정생산공장이 가동을 중단할지도 모르는 긴급한 상황이 발생된 것이었다.

해태 방콕지사가 있어서 현지공급선들과 해결책을 찾고있었지만 시간만 지날뿐 뚜렷한 방법이 나오지않았다.

회사에서는 급기야 ‘특작물과장’인 나를 방콕에 현지출장파견하여 해결책을 찾아내라고 명령하였다.

곡물과장이 아닌데도 나를 보낸 것은, 곡물과장은 곡물과장대로 국내에서 해야할 일들이 많이 있는 것도 있었지만, 방콕지사장과의 불편한 관계도 있고 또 모든 수단.방법을 동원해봤지만 특별한 길이 보이지않으니, 마지막으로 ‘투수’를 바꿔서 말하자면 잘 알려지지않은 ‘소방수’를 투입해서 시장을 흔들어보자는 속셈도 깔려있었지 않나 싶었다.

(나에게 크게 기대를 하는 것 같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일말의 희망, 낭떨어지에서 끄나풀하나라도 잡아야 하는 심정?으로 나를 방콕에 보냈다...출장기일을 처음부터 정하지않고 떠났다...우리상무님 가라사대, 문제를 해결하지않고는 귀국할 생각을 말라! 그 양반의 특허품인 강공.엄포가 뒤따랐다.)

 

1주일, 2주일이 지나도 묘수가 나오지않았다. 묘수가 나올 리가 없었다.

거의 20일이 되었을 즈음, 나는 최후 보고를 하며 곧 귀국하겠다는 Telex(팩스를 거쳐 지금은 전자메일 또는 카톡)를 본사에 긴급히 타전하였다.

본사에서 돌아온 답장은 ‘해결때까지 귀국불가. 해결후 귀국할 것’(그때는 텔렉스요금 때문에 가능한한 내용은 간단하게 그것도 약어를 써가며 비용을 줄일때인데, 전보치듯이 짧게 답장이 왔다. 국내소주업계 공장이 곧 멈춘다는 데, 무슨 수단방법을 모두 써야할 판이었다.)

‘하늘은 미리 시련을 준다고 했던가? 어떻게 그 시련을 헤쳐나가는 것을 보면서 해답을 주고, 또 그를 큰 사람으로 단련시킨다 했는가?)

 

귀국은 못하지, 방콕에서 특별히 할 일은 없지, 나는 그날 일찍 Chaiyong group의 아유타야 타피오카공장을 견학하기로 하였다.(이때를 기점으로 나는 Chaiyong group과 운명적인 만남을 갖게 되고, 그들이 보유하고 있던 타피오카를 긴급히 확보하여, 가장빠른 배에 선적하여, 국내소주업체의 원료대란을 해결하기에 이르렀으며, 또한 나중에 태국산옥수수를 한국사료시장과 국내옥수수가공업체에 처녀수출하는 쾌거를 이루게 되었다.)

방콕에서 아유타야까지 가려면 반나절쯤 걸리고 방콕으로 다시 돌아와야 하니 하루종일 걸리는 일정이었다.

아침일찍 출발해야했다. 아침식사를 제빨리 해치우고 Chaiyong group 직원을 기다리는 사이, 호텔로비에서 방콕포스트 신문을 훑어보고 있었다.

평소 출장때 같으면야 방콕포스트를 읽어볼 여유가 없지만, 그날은 로비에 있자니 남는 시간에 특별히 할 일도 없고 옆에 놓여있는 방콕포스트를 뒤적일 수 밖에 없었던 것.

그런데 세상일이란 게 그렇지 않던가요? 일이 풀리려면 그러하지 않던가요?

우연이 우연히 생기지 않고...수많은 우연이 쌓이고 쌓이면 필연이 되고, 또 필연이 쌓여서 운명이 된다고도 하지요?

내 눈에 띄는 기사 하나. 그렇게 크게 나온 기사가 아니었다.

‘E.E.C Quota....Tapioca market change?'

태국정부의 타피오카수출정책이 바뀐다는 뉴스였다.

태국 타피오카칩의 주시장은 유럽인데, 유럽시장의 수출쿼타량은 한정되어있었고, 수출년도의 태국내 생산량 증감에 따라, 수출쿼타비율을 조정해오고 있었던 것이며, 그 조정비율이 곧 바뀌게 된다는 뉴스였다.

속내용이 무엇인지, 태국수출업자들에게는 어떤 영향을 줄 것인지등 전혀 알수 없지만, 뭔가 곧 ‘출구’가 보일 것이라는 느낌이 팍 들어왔다.

(나는 중요한 때, 절체절명의 어떤때에는...남다른..어떤 동물적 감각이 있지않나하는 생각을 자주 한다.)

 

나를 데리러 온 Chaiyong group의 직원은 회장 큰아들인 Mr.Boonchai 였다. 태국의 서울대격인 츌라롱콘대학을 중도포기하고 아버지를 돕고 있었다. 비서실장겸 영어통역담당, 내나이보다 두세살 어렸다.

그는 BMW에 나를 태우고 아유타야로 갔다.

‘I just called to say I love you'

(난 그냥 그저 전화했어. 뭐 특별한 일, 뭐 특별한 게 있어서도 아냐. 그저 너를 사랑해.=내가 Chaiyong 너와 무슨 특별한 일이 있는 것 아니잖아, 뭐 무슨 특별한 인연도 없지응. 그냥 그저 .....??? 무슨 인연일까?.....이 노래가 왜 갑자기 지금 나오는 고야? 무슨 인연이 맺어질까?)

경쾌한 팝숑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평소에는 그다지 귀에 들어오지 않던 그 노래가 그날따라 유난히 감미롭게 내 귀를 파고들어왔다....I 'just' called you, I love you.............

 

공장견학후, Chaiyong 본사로 돌아와 Chaiyong 회장을 면담하였다.

아침에 내가 읽은 신문기사를 언급하며 타피오카칩 시장에 큰변화가 있다고 하는데 어떻게 생각하는지 단도직입적으로(칼을 바로 찔러대듯이) 물었다.

그는 빙그레 웃으면서 어디서 그런 이야기를 들었는지 묻더니...곧 너에게 좋은 소식이 갈지도 모른다 하는 것 아닌가?

확보해야할 수량이 얼마며 너의 예산(구매희망가격을 말하는 듯)은 얼마정도이냐고 되묻는 것 아닌가?

최소 10만톤, 그리고 희망가격은 지난번 계약가젹수준(계약체결하였지만 당초 계약한 가격으로는 공급할 수 없다고, 공급업자가 공급불가=선적불가선언했던 것.)

본사와 상의하여 구체적 숫자를 내일 아침 다시 이야기하자 하는 것이 아닌가?

 

나는 호텔에 돌아오자마자, 본사에 긴급전화를 넣었으나 모두들 퇴근하고, 옆부서의 최정만차장(일고13회선배)이 전화를 받았다.

나는 숨넘어가게 설명하고 그의 도움을 구했다.

Chaiyong group의 회장 앞으로 긴급전문을 나의 이름으로 쳐주라.

내용은 ‘타피오카칩 10만톤, 즉시선적, 가격은 미화000=지난 계약가격’

평소같으면 당연히 사업본부장에게 보고하고 결재를 받아 구매오파전문을 보내야할 것이나, 그가 내이름으로 보내야할 내용은, 전혀 결재받을 필요가 하나도 없는, 너무나 당연한 내용이었기 때문이다...그 가격에 그 물량을 확보하지못해..국내소주업체공장에 난리가 났으며, 이 불을 끄기위해 내가 긴급히 방콕출장가서 지금 거의 20일이 넘어가고 있는데...무슨 다른 조건이 필요할 것인가?

내가 생각해서 중요한 것은, 내가 입으로 내일 아침 이야기하면 또 하루가 지나고, Chaiyong 회장이 나의 말을 믿고 계약체결까지 하기는 또 하루가 더 들기때문...하루라도 시간을 절약할 필요도 있었지만...계약프로세스상 나의 서면가격과 조건이 상대방의 신뢰를 끌어내기위해서는 절대적으로 필요했기때문이었다.

 

다음날 아침 나는 일찍 Chaiyong 사무실에 갔다. 그땐 방콕지사의 한상0과장이 나늘 수행하였다.(방콕지사장 한주0부장은 본사에서 파견나온, 담당인 ‘곡물과장’이 아닌, 땅콩과장인 나를 인정하지않고 있었다. 그래서 한과장 또한 나에게 붙여주주않고 있었는데 내가 그날은 특별히 요청하여 오게 되었다. 만일 계약이 성사되면 방콕지사의 입회도 필요했으므로...나는 철두철미한 사람 아닌가? 싸울때는싸우드래도 공적업무는 공적업무였다.)

나는 Chaiyong 회장에게 해태상사본사에서 전문이 도착했는지 물었다.

그; 도착했다.

나;......

그; 한마디만 하겠다. 이것이 최종이냐? 딴 이야기 하지않기로 하자.

나;.....????@@@@(속으로, 아니 그 가격에 모두 O.K 한단 말이야?)

그; Mr.Park? O.K?

나;(갑자기 배를 쥐어짜면서) 저 잠깐, 화장실에 좀 갔다오겠다.

그;Yes...

 

나는 너무나 급변한 상황에 ‘정말정말로 놀라면서’ 꿈인지 생시인지 재확인하고 있었다.

(결코 받아들일 수 없는 조건을, 일단, 내질러놓고 상황을 살핀다음, 가격을 상향조정해서라고 계약을 체결하려 하는 수순이었는데...이를 하나도 수정없이 받아들이겠다니, 어찌 놀라지 않을 수 있을 것인가??)

 

나; 저의 전문에 있는 내용대로, 물량.가격 모두 o.k입니다. 서면계약하시지요?

그;o.k....서면계약 합시다.

(그 대목에서갑자기 방콕지사의 한과장이 눈물을 뚝뚝 흘리는 것이 아닌가? 그는 울면서 말하는 것 아닌가...왜 방콕지사가 요청할때는 들어주지않고, 본사 Mr.Park이 이야기하니 o.k 해주는 것이냐?..말인지 소인지 이해하지못할 이야기를 그는 하고있었고, 그만큼 그동안 마음고생이 많았으며 본사에 대한 원망이 가득했다는 것.)

 

계약서가 체결되고(나의 1차적 싸인, 최종적으로는 본사 사장싸인) 보고를 받은 본사는 난리가 났다.

곡물과장도 아닌, 땅콩과 박과장이 만루역전홈런을 쳤다고 난리.난리였다.

(처음엔 곡물과장 대신 긴급소방수로 투입되었지만...상황이 바뀌어서 대타로 나가 만루역전홈런 하하하)

(그날 아침, 방콕포스트에 나온 뉴스는, 타피오카 E.E.C 수출쿼타비율이 상향조정된다는 것이었다. Non-E.E.C 시장=한국시장에 수출하는 수출업자는 가격이 좋은 E.E.C 수출쿼타를 더 많이 받아오기 때문에, 당연히 Non-E.E.C 시장 수출가격은 낮아질 수 밖에 없는 것.

그날 계약을 지난번 수준에서 체결할 수 있었던 것은 이런 이중가격구조로 인한 것....

내가 방콕출장후에야 이런 가격구조를 본사에서는 알게 되었으며...이를 바탕으로 대한주류공업협회와의 향후 계약에 활용하였다.)

 

그날 밤비행기를 예약하고 방콕지사장에게 귀국인사를 하러 가겠다 했더니..

그가 말하기를, 올때도 인사 받지않았는데 갈 때 할 필요 있겠어요?

잘먹고 잘사세요 하는 것 아닌가?

그는 언제나 매우 독특했다.(후술하겠지만...나와는 첫옥수수계약 건으로 부딪치게 되고...내가 방콕지사장으로 부임하자 그는 인수인계도 해주지않은채 귀국하였다. 그는 ‘농대’보다 좋다는 ‘상대’출신이며 자존심이 하늘을 찔렀다...나는 그들의 자존심을 언제든지 깰수 있는 ‘그릇’을 가지고 다닌다 하하하.)

 

Chaiyong group 과는 이렇게 인연을 맺었다.

아무 관계도 없는 내가 ‘곡물과장’대신으로 갑자기 출장와서는 ‘일’을 낸 것.

회장과 그 아들은 나를 어떻게 보았을까?

(아무튼 나를 보았다. 해태 방콕지사 식구들도 보았었고, 그들은 빅한+스몰한이라 불렀다. 나와 그들은 달랐을까? 물론 달랐겠지요, 어떻게 달라보였을까?)

 

왜 그때 내가 그 현장에 있어야 했을까요?

왜 곡물과장 대신에 땅콩과장인 내가 그곳에 가야했나요?

왜 그날 아침 방콕포스트에 타피오카 뉴스가 들어왔을까요?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는 것은 참인가요?

(그 이후 나는 땅콩과장에서 곡물과장으로 전보되었고, 곧이어 태국산 옥수수를 한국시장에 처음으로 도입하게 되었고...차장으로 특별승진되었고...1986년 방콕지사장으로 부임하게 되었다. 누가 내 운명의 큰그림을 그리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