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삶, 사랑 그리고 마무리.
-자유로운 영혼, 헬렌 니어링, 그 감동의 기록
저 가을산을
어떻게 혼자 넘나
우리 둘이서도
그렇게 힘들었는데/중국 7세기
한쪽 문이 닫히면 다른 문이 열리고...다른 방, 다른 곳에서 다른 사건이 일어난다.
떠남은 다른 곳에 다다르는 것으로 이어진다.
한 문을 닫고서 그 문을 뒤로 하고 떠나는 것은, 새로운 전망과 모험, 새로운 가능성과 동기를 일으키는 세계로로 들어가는 것을 뜻한다.
53년동안 함께 살았던 스코트가 만 100세가 된지 3주일만에 메인에 있는 집에서 조용히 숨을 거둔 날 하나의 장이 막을 내렸지만, 내 삶은 아직 끝나지 않았으며 그이와 더불어 계속되고 있다.
그이는 오랫동안 최선의 삶을 살았고, 일부러 음식을 끊음으로써 위엄을 잃지않은 채 삶을 마쳤다. 나는 느슨하게 그이 손에 마지막까지 쥐어져 있던 고삐를 거두어들이지 않으면 안되었다.
나는 내삶을 꾸려갈 수 있다. 나는 의기소침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알고 있다.
‘우리 머리 위로 새가 슬퍼하며 날아다닌다고 해서 우리 머리에 새 둥지를 틀게 할 필요는 없다’는 고대 중국의 격언이 생각난다.
‘부부중 한 사람이 상대방을 잃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일입니다.....삶의 연속성이 상처받고, 감정의 안정이 멈추며, 외부의 자극으로 새로운 국면으로 들어갈 때까지 삶의 흐름이 중단되고 움직임이 둔해집니다. 그 중단된 시간은 끔찍합니다‘
스코트가 떠난 뒤 몇 달은 내 정신에서 축복받은 공백의 시기였다.
루이스는 <눈에 보이는 비통함 A Grief Observed>에서 이렇게 썼다.
‘잃음은 우리가 경험하는 사랑에 뒤따라오기 마련인 한 부분이다. 결혼이 구혼에 뒤따르듯, 가을이 여름 뒤에 오듯 사별은 결혼에 이어서 온다. 잃는다는 것은 단절이 아니라 하나의 다른 국면이며, 춤의 중단이 아니라 그 다음 차례이다. 사랑하는 사람이 여기 있을 때 그 사람 손에 이끌려 우리는 앞으로 나온다. 그리고 나서 그 사람 모습이 보이지 않게 되었는데도 여전히 우리는 앞에 남아 있도록 배워야 하는 것이 이 춤의 슬픈 장면이다’
내게 주어진 남은 시간동안 물건을 정리하고 집안일 책 원고 농장에 관한 일들을 적절하게 결정하여 정리한 뒤 나 또한 홀로 떠날 것이다. 나는 언제라도 떠날 준비가 되어있다. 사실 이제 떠난다고 해서 결코 이르다고는 할 수 없다. 나는 특별히 운이 좋은 만족스러운 삶을 살아왓으며, 이제 나날이 되풀이되는자질구레한 일에서 빠르게 떨어져나가고 있다. 만일 저 반짝이는 바다가 가라앉게 된다면, 나는 기쁘게 내 몸을 그 속에 잠글 것이다. 그리고 저 너머 도달한 곳에 내가 해야 할 일이 더 있다면, 나는 잠깐 숨을 쉬고 주위를 돌아본 뒤에 기꺼이 그 일고 맞닥뜨릴 준비가 되어 잇다.
나는 앞으로 남은 삶의 열쇠가 내 손에 쥐어져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이제 나는 우리가 가기로 마음먹으면 언제라도 갈 수 있으며 평화롭고 고요한 가운데 위엄을 지키며 죽을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스코트가 그랬듯이 음식 먹는 일을 멈출 수 있다. 죽음이 우리의 목적이라 한다면, 음식은 우리를 육체에 매이게 하는 미끼요 독이다. 육체에 음식물 공급을 멈추면, 육체는 기울어져 죽음에 이른다. 죽음은 삶의 모험을 끝내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다만 육체가 끝나는 것일 뿐이다.
간디는 제자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렇게 썼다.
‘사물을 관찰하고 탐구하면 할수록 헤어짐에서 오는 슬픔이 아마도 가장 큰 망상이라고 나는 점점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그것이 망상이라는 사실을 깨달으면 자유롭게 됩니다.
우리가 친구들을 사랑하게 되는 것은 그들 속에서 우리가 보는 실체 때문인데도, 우리는 잠깐동안 그 실체를 덮고 있던 껍데기가 사라지는 것을 한탄합니다. 실체의 죽음, 실체와 이별하는 일은 없습니다.
진실한 우정은 겉껍질이 사라진 뒤에도 그 실체를 만나고 지켜집니다.‘
삶과 죽음에 대한 깊은 생각은 1세기에 티아나 Tyana의 아폴로니우스Apolonius가 남긴 기록에서도 발견된다.
‘겉으로 보이는 모양말고는 어떤 것도 죽지않는다. 본질에서 자연계로 건너가는 것은 탄생이요, 자연계에서 본질로 돌아가는 것은 죽음처럼 보일뿐이다. 실제로 창조되거나 사멸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으며, 다만 눈에 보이거나 안 보이게 될 뿐이다’
스코트는 언젠가 죽은 뒤의 삶의 가능성에 대한 친구의 질문에 답장을 쓴일이 있다.
‘나는 다르게 묻고 싶네. 사람은 그가 속해있는 우주와 계속해서 관계를 유지하는가? 내가 이르게 된 결론은 삶이 본질에서 아주 다른 경험의 영역으로 옮겨간다는 것일세. 삶은 단순한 것이 아니라 복합적인 것이고, 그 복합적인 것의 하나는 삶이 길거나 짧은 지속기간을 갖는 여러 조각들로 나누어진다는 것이네. 그리고 어떤 조각의 삶이든 이 땅에서 우리 삶을 이어가도록 해주는 몸의 기관보다는 영속적이라네’
우리삶에는 너무 많은 ‘나’가 있다. 저마다의 인격은 우리의 본체[가 아니라 우리가 걸치고 있는 무엇이다. 우리 몸은 우리가 아니다. 우리 몸을 사용하고 잇는 것이 우리다. 우리 생각 또한 우리가 아니다. 우리 생각에 지침을 주는 것이 우리다. 우리의 감정은 우리가 아니며 우리 감정을 느끼는 것이 우리다. 우리는 가치있거나 또는 한탄할 만한 인격으로 세상을 좋게 만들기도 하고 망칠 수도 잇다.
우주는 너무 광대해서 낱낱의 인격과 맺는 관계를 초월해 있다. 살면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위대한 일은 우리 자신의 작은 자아속에서가 아니라 우리 삶이 전체와 연관되어 있음을 깨닫고 그 속에서 우리의 삶을 꾸려가는 것이다.
도대체 이‘나’는 무엇이며 누구일까?
우리는 과연 자기 중심 Self-centered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우리의 세게에서 어떻게 이 자기 중심주의를 뿌리뽑을 수 있을까?
삶은 모든 사람에게 운 좋게 거머쥐거나 잘못 빠지기 쉬운 기회와 함정으로 이루어진 거대한 가능성의 그물이다.
우리는 우리 삶을 꾸려감으로써 그 표적을 남기는 것이다.(4-1)/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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