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8 기러기 카페 글모음)

[스크랩] 차 없이 살아보니(4)---`사는 대로 생각할까, 생각하는 대로 살까`

햄릿.데미안.조르바 2018. 11. 15. 02:22
---차 없이 살아보니4/‘사는 대로 생각할까, 생각하는 대로 살까’
무엇보다도 좋은 것은 지나가는 사람들과 부딪치고 만나는 것,
지나가는 세월의 흐름을 좇아 따라가 보는 것.

마을버스가 오기를 기다리면서,
전철이 오기를 기다리면서,
전철을 바꿔 타려고 걸어가면서,
이런 저런 생각들을 하다보면 시간 가는 줄을 잠시 잊는다.

또는 마을버스마저 타지 않고 터벅터벅 골목길을 휘저으면서,
여러 군상들을 만나고 그 사이를 흘러가는 세월을 냄새맡는 것은,
시간의 절대적 양을 잊게 하여 시간의 지루함을 모르게 한다.

그래서 물리적인 출퇴근 50분은 나의 시간계산으로는 ‘눈깜짝할만큼’ 금방 지나간다.
아름다운 연인과 먼 길을 가는 것처럼 시간의 흐름이 느껴지지 않을 만큼,
그만큼 지루하지 않고 좋다.
더욱 신기한 것은,
이런저런 생각들이 답답한 나를 다르고 새로운 세상으로 이끌어간다는 것이다.

‘사람은 생각하는 대로 살지 못하면,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된다.’
그런데 생각한 대로 산다는 것이 여간 쉽지 않고,
살아가면서 거기에 맞추어 생각이 따라가는 게 우리들 범인의 생활이다.
그러니 아예 당초부터 사는 환경을 바람직한 쪽으로 바꾸어놓고 살아가면,
바람직한 생각이 만들어지지 않을까.
새로운 환경을 만들어 새롭게 좋은 생각을 많이 하게 하여
자신을 새롭게 살아가게 해야 하지 않을까.

손수 운전을 하지 않으니 이런저런 생각들이 자연스럽게 드나들고 또 자유롭게 더 많이 하게 되고,
전철 안에서 또는 걸어가면서 만나고 부딪치게 되는 여러 사람들과 여러 사건들이 새로운 생각들을 불러내고 만들어낸다.
손수 운전을 하였더라면 결코 만나지지 않았을 것들을 새롭게 만나는 것이니,
새로운 세상을 경험하게 되는 것.
환경에 따라 사람들의 사고방식이 달라질 수 있다는 것, 전혀 새로운 이야기는 아니지만 새삼스레 실감하며, 세상이 갑자기 더 살만한 것이구나 싶고 더 흥미로워 보인다.

보이는 것들이 다르니 생각하는 방향, 생각하는 크기,
생각하는 속도도 손수 운전할 때와는 당연히 다르다.
생각하는 것이 승용차의 속도에서 사람의 걷는 속도로 바뀌었다고 해야 할까?
생각하는 관점이 직립인간 본연의 위치로 이제 제대로 돌아갔다면 비약일까?
인간이 걸어갈 때 보는 사물의 모습이 가장 잘 보이고 가장 아름답다고 한
누군가의 말은 맞는 것이었다.

답답함이 어느새 없어지고 모든 것이 편안해지니 달리 이유를 찾을 필요가 있는가.
손수 운전을 하지 않고 살아보니 이렇게 출퇴근이 편안하고 즐거우니
지난 세월이 아까울 뿐,
더 이상 바보짓을 하지 않아도 되었으니 이나마 감사해야 할 것이다.

손수 운전을 시작한 것이 지난 1989년.
방콕에서 해외지사생활을 마치고 돌아오니 서울은 큰 변화의 물결,
나는 또 촌놈이 되어 있었다.
88 서울올림픽이 끝나고 서울은 마이카, 마이카, 자가용시대였다.
차가 없으면 팔불출의 하나.
지금 생각해 보니 차를 사서 손수 운전을 시작한 것이 팔불출의 어리석은 시작이었다.

이제 다시 손수 운전을 하지 않게 되었으니 나는 다시 1989년 이전으로 돌아갔다.
몸도 마음도 생각도 모두 1989년 이전으로, 그러니까 나는 몸과 마음이 최소 15년은 더 젊어진 것이다.
다시는 손수 운전을 하지 않으며 인간의 속도로 살아가리,
차의 속도로 다니며 세상을 보면 분명 그것은 과속으로 사물을 만나는 것 아닐까,
또 인간의 위치가 아닌 차 속에서 사물을 보게 되는 것이니 제대로 인간답게 보지 못하는 것 아닐까,
걸으면서 보는 것하고는 커다란 차이가 있을 것이다.

그 시절의 속도로,
손수 운전하지 않던 시절의 ‘걷는 속도’로 나는 돌아가리.






출처 : 68 기러기
글쓴이 : 박동희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