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8.4.수. 전철로 퇴근하면서
'오늘 나 차 팔았어'
'왜요?'
'차 없이 다니면 어떻게 되나 한번 볼려구'
'다음에 무슨 차 살 거예요?'
어제 갑자기 차를 팔았다고 하니 우리집 '그냥'은 한편 놀라면서도,
다음에는 무슨 차를 살 건지 그게 벌써 궁금하다.
나는 가끔 엉뚱한 일을 저지르곤 한다.
4 년 전 어느 날,
조수석에 타고 있던 수남에게,
'차 속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리는데 무슨 소린지 한 번 들어봐라'
'나이가 들어가고 여유가 조금이라도 있으면 좋은 차로 바꾸는 거래'
수남은 이 기계맹의 답답한 심사를 풀어줄 생각은 않고는 동문서답을 하였었다.
'지금 이 차가 어때서? 차는 그냥 잘 굴러가면 되는 거지, 바꾸긴 뭘 바꿔'
나는 수남의 권유를 크게 담아두지 않았었다.
'차는 최소한 10년은 타야지, 우린 겉멋만 들어서 멀쩡한 차를 놔두고 새 차만 찾으니, 원'
'차란 필요한 사람이 필요한 만큼 타야지 '폼'잡으려고 큰 차만 또 찾아요' 하면서도,
그러나 수남의 지나가는 듯 툭 던지고 간 말이 내 머리 속을 맴돌았었다.
며칠 후 어느 날, 나는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을 하였었다.
만 4년이 되지 않은 차를, 그것도 검정색이 아닌 '황금색' 새 차로 바꿔버렸으니 나의 셈으로는 과히 '코페르니쿠스적'이라는 것.
사무실 빌딩의 경비 아저씨들의 손이 더 높이 오르고 고개가 더 많이 숙여지는 것 같은 기분은 부수입, 그러나 세상 인심이 그렇다더니 막상 확인하고 나니 씁쓸하였었다.
나 보다 차를 더 존중하는 것 아닌가.
여느 때와 비슷하게 사무실을 나섰다.
어두운 지하 주차장이 아닌 훤한 사무실 빌딩 현관으로 나가니
몸에 맞지 않은 옷을 입은 듯 어딘가 어색하고 쭈삣거려졌다.
아직도 바같은 더위가 후끈하였고 그리고 맨눈으로 보이는 거리는 산뜻하게 다가섰다.
차로 퇴근하였으면 어찌 이 자연적 후끈함과 가공되지 않은 선명함을 맛볼 수 있었으리오.
전철을 기다리는 지하철 승강장도 다른 나라의 풍경이었다.
한가한 듯, 바쁜 듯 어디서 저 많은 사람들이 모여드는가.
석간 신문 하나를 사들고 신문판매대 위에 걸쳐들 있는 야한 주간지와 자극적 시사주간지 표지를 다 훑어보고 나니, 이윽고 전철이 들어왔다.
내리고 오르는 사람들이 기계적으로 자연스러웠다.
전철 안도 다른 나라의 다른 그림,
이방인을 맞이하는 듯 전철 안은 갑자기 조용하였다.
자동차 안에 익숙한 내게 전철 안이 낯서는 것은 너무나 당근,
파도가 밀려오다 갑자기 멈춰 설 수 있을까, 나는 그 파도처럼 잠깐 어색해졌다.
누군가 내게 자리를 내주었다.
어, 아, 나의 흰머리가 벌써 일을 하는구나,
곧 내릴 것이지만, 못 이긴 척 내어주는 자리에 앉았다.
벌써, 잠실역,
2호선으로 갈아타는 길목이 길기는 해도,
오고 가는 사람들 구경하는 재미에 긴 것이 차라리 더 좋았다.
모두들 쭉쭉 빵빵해서 어찌나 눈이 즐거워하는지, 승용차로 움직인다면 이 그림들을 구경할 수 있겠는가.
배꼽을 내놓고도 있고, 허리띠를 엉덩이에 살짝 걸친 이도 있고,
가슴을 보여주는 건지 감추는 건지 아슬아슬하게 질문하는 이들도 있고,
이 더위에 착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는 쌍들도 있었다.
무엇을 생각하는지 발 밑만 내려보며 터벅거리는 젊은이도 있고,
넥타이를 풀어 늘어뜨리고 하루의 긴장을 풀어내는 듯, 담담한 중년들은 어딘가 힘들어 보였다.
그래도 더 좋은 것은 건강하게 자신만만하게 걸어가는 우리의 젊은이들 특히 젊은 여성들을 보는 것, 늙은 말이 새 콩을 더 좋아한다더니, 내가 그 짝이 되었다.
그 위에 하나 더,
나는 또 다리 운동이 꽤 되겠다 싶으니 더 좋았다.
'세상 사람들아, 차를 버리고 전철을 타자스라'
2호선으로 갈아탔다.
마침 들어간 곳이 노약자석 근방,
비어있는 자리를 그냥 놔두는 것도 모양이 좋지 않아 내 차지가 되었다.
석간신문도 볼 겸 차라리 잘 되었다 싶어 주저 없이 주저앉고 말았다.
30 여분, 죽 훑고 나니 벌써 서초역,
시간이 빨리도 흘렀다.
자동차의 시간과 전철의 시간이 다르게 움직이는 게 틀림없었다.
사무실에서 자동차로 퇴근하는 도로의 시간은 정말 더디게 흘렀었다.
오늘 전철 속의 시간은 몹시 빨리 흘러갔다.
절대적 시간과 상대적 시간의 차이,
시간을 이해하고 다룰 수 있다면 얼마나 신나고 좋으리.
오늘따라 손전화가 신나게 울렸다.
'어디예요?'
'3 번 출구 앞, 서초역'
'아, 차 팔았다고 했지요?
그럼 전철 타고 퇴근하는 거예요?
잘 됐다, 오다가 케이크 하나 사오세요,
얼마전 큰놈 생일도 그냥 지나쳤고 어제 둘째도 휴가 왔으니.....'
나를 부려먹으면, 그것도 돈을 쓰게 하는 일을 시키면, 우리집 '그냥'은 그냥 살 판이 난다.
나는 제일 맛있고 좋다는 케이크 하날 사들고는,
세월아 네월아 하면서
땀이 온몸을 휘감아도 아랑곳하지 않고
드디어 걸어가는 인간의 속도가 무엇인지
걸으면서 보는 거리의 풍경이 정말로 제일 아름다운 것인지
가름해 보았다.
전철역에서 집까지 가는 시간은 또 빨리 흘러갔다.
아무리 천천히 느리게 걷는다 했지만 내 마음은 지루하지 않아
그냥 빨리 지나간 것으로 계산되지 않았을는지,
온 몸이 땀으로 범벅이 되었어도 그것은 몸 어디에 박혀서 고이는 것이 아니었고,
오히려 몸 속의 찌꺼기를 들어내어 몸 밖으로 뽑아내는 것이 아니었을는지,
우리집 샤워의 물이 이렇게 시원한 것인 줄 오늘에야 나는 알았노라.
절대적 시간으로는 1 시간 여,
차라리 자동차로 퇴근하면서 걸렸던 시간보다 오히려 덜 걸렸다.
차가 막히는 경우를 생각하고 또 거기에 오며가며 보는 재미를 더하면, 분명 전철로 다니는 것은 남는 장사가 아닌가.
기계의 속도를 버리고 인간의 속도로 돌아온 것은 잘 한 일인가,
오늘 하루만 가지고 셈을 따진다면 너무 성급할지 모른다.
며칠 더, 아니 몇 달만이라도
달리는 기계의 도움을 받지 않은 채,
도시의 인간이 어디까지 잘 살 수 있는지 실험해 보자.
그러고 나서 또 조금 엉뚱한 짓을 하면 누가 뭐라고 하나?
아무도 뭐라고 하지 않는다.
네 마음대로 해도 좋다.
'오늘 나 차 팔았어'
'왜요?'
'차 없이 다니면 어떻게 되나 한번 볼려구'
'다음에 무슨 차 살 거예요?'
어제 갑자기 차를 팔았다고 하니 우리집 '그냥'은 한편 놀라면서도,
다음에는 무슨 차를 살 건지 그게 벌써 궁금하다.
나는 가끔 엉뚱한 일을 저지르곤 한다.
4 년 전 어느 날,
조수석에 타고 있던 수남에게,
'차 속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리는데 무슨 소린지 한 번 들어봐라'
'나이가 들어가고 여유가 조금이라도 있으면 좋은 차로 바꾸는 거래'
수남은 이 기계맹의 답답한 심사를 풀어줄 생각은 않고는 동문서답을 하였었다.
'지금 이 차가 어때서? 차는 그냥 잘 굴러가면 되는 거지, 바꾸긴 뭘 바꿔'
나는 수남의 권유를 크게 담아두지 않았었다.
'차는 최소한 10년은 타야지, 우린 겉멋만 들어서 멀쩡한 차를 놔두고 새 차만 찾으니, 원'
'차란 필요한 사람이 필요한 만큼 타야지 '폼'잡으려고 큰 차만 또 찾아요' 하면서도,
그러나 수남의 지나가는 듯 툭 던지고 간 말이 내 머리 속을 맴돌았었다.
며칠 후 어느 날, 나는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을 하였었다.
만 4년이 되지 않은 차를, 그것도 검정색이 아닌 '황금색' 새 차로 바꿔버렸으니 나의 셈으로는 과히 '코페르니쿠스적'이라는 것.
사무실 빌딩의 경비 아저씨들의 손이 더 높이 오르고 고개가 더 많이 숙여지는 것 같은 기분은 부수입, 그러나 세상 인심이 그렇다더니 막상 확인하고 나니 씁쓸하였었다.
나 보다 차를 더 존중하는 것 아닌가.
여느 때와 비슷하게 사무실을 나섰다.
어두운 지하 주차장이 아닌 훤한 사무실 빌딩 현관으로 나가니
몸에 맞지 않은 옷을 입은 듯 어딘가 어색하고 쭈삣거려졌다.
아직도 바같은 더위가 후끈하였고 그리고 맨눈으로 보이는 거리는 산뜻하게 다가섰다.
차로 퇴근하였으면 어찌 이 자연적 후끈함과 가공되지 않은 선명함을 맛볼 수 있었으리오.
전철을 기다리는 지하철 승강장도 다른 나라의 풍경이었다.
한가한 듯, 바쁜 듯 어디서 저 많은 사람들이 모여드는가.
석간 신문 하나를 사들고 신문판매대 위에 걸쳐들 있는 야한 주간지와 자극적 시사주간지 표지를 다 훑어보고 나니, 이윽고 전철이 들어왔다.
내리고 오르는 사람들이 기계적으로 자연스러웠다.
전철 안도 다른 나라의 다른 그림,
이방인을 맞이하는 듯 전철 안은 갑자기 조용하였다.
자동차 안에 익숙한 내게 전철 안이 낯서는 것은 너무나 당근,
파도가 밀려오다 갑자기 멈춰 설 수 있을까, 나는 그 파도처럼 잠깐 어색해졌다.
누군가 내게 자리를 내주었다.
어, 아, 나의 흰머리가 벌써 일을 하는구나,
곧 내릴 것이지만, 못 이긴 척 내어주는 자리에 앉았다.
벌써, 잠실역,
2호선으로 갈아타는 길목이 길기는 해도,
오고 가는 사람들 구경하는 재미에 긴 것이 차라리 더 좋았다.
모두들 쭉쭉 빵빵해서 어찌나 눈이 즐거워하는지, 승용차로 움직인다면 이 그림들을 구경할 수 있겠는가.
배꼽을 내놓고도 있고, 허리띠를 엉덩이에 살짝 걸친 이도 있고,
가슴을 보여주는 건지 감추는 건지 아슬아슬하게 질문하는 이들도 있고,
이 더위에 착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는 쌍들도 있었다.
무엇을 생각하는지 발 밑만 내려보며 터벅거리는 젊은이도 있고,
넥타이를 풀어 늘어뜨리고 하루의 긴장을 풀어내는 듯, 담담한 중년들은 어딘가 힘들어 보였다.
그래도 더 좋은 것은 건강하게 자신만만하게 걸어가는 우리의 젊은이들 특히 젊은 여성들을 보는 것, 늙은 말이 새 콩을 더 좋아한다더니, 내가 그 짝이 되었다.
그 위에 하나 더,
나는 또 다리 운동이 꽤 되겠다 싶으니 더 좋았다.
'세상 사람들아, 차를 버리고 전철을 타자스라'
2호선으로 갈아탔다.
마침 들어간 곳이 노약자석 근방,
비어있는 자리를 그냥 놔두는 것도 모양이 좋지 않아 내 차지가 되었다.
석간신문도 볼 겸 차라리 잘 되었다 싶어 주저 없이 주저앉고 말았다.
30 여분, 죽 훑고 나니 벌써 서초역,
시간이 빨리도 흘렀다.
자동차의 시간과 전철의 시간이 다르게 움직이는 게 틀림없었다.
사무실에서 자동차로 퇴근하는 도로의 시간은 정말 더디게 흘렀었다.
오늘 전철 속의 시간은 몹시 빨리 흘러갔다.
절대적 시간과 상대적 시간의 차이,
시간을 이해하고 다룰 수 있다면 얼마나 신나고 좋으리.
오늘따라 손전화가 신나게 울렸다.
'어디예요?'
'3 번 출구 앞, 서초역'
'아, 차 팔았다고 했지요?
그럼 전철 타고 퇴근하는 거예요?
잘 됐다, 오다가 케이크 하나 사오세요,
얼마전 큰놈 생일도 그냥 지나쳤고 어제 둘째도 휴가 왔으니.....'
나를 부려먹으면, 그것도 돈을 쓰게 하는 일을 시키면, 우리집 '그냥'은 그냥 살 판이 난다.
나는 제일 맛있고 좋다는 케이크 하날 사들고는,
세월아 네월아 하면서
땀이 온몸을 휘감아도 아랑곳하지 않고
드디어 걸어가는 인간의 속도가 무엇인지
걸으면서 보는 거리의 풍경이 정말로 제일 아름다운 것인지
가름해 보았다.
전철역에서 집까지 가는 시간은 또 빨리 흘러갔다.
아무리 천천히 느리게 걷는다 했지만 내 마음은 지루하지 않아
그냥 빨리 지나간 것으로 계산되지 않았을는지,
온 몸이 땀으로 범벅이 되었어도 그것은 몸 어디에 박혀서 고이는 것이 아니었고,
오히려 몸 속의 찌꺼기를 들어내어 몸 밖으로 뽑아내는 것이 아니었을는지,
우리집 샤워의 물이 이렇게 시원한 것인 줄 오늘에야 나는 알았노라.
절대적 시간으로는 1 시간 여,
차라리 자동차로 퇴근하면서 걸렸던 시간보다 오히려 덜 걸렸다.
차가 막히는 경우를 생각하고 또 거기에 오며가며 보는 재미를 더하면, 분명 전철로 다니는 것은 남는 장사가 아닌가.
기계의 속도를 버리고 인간의 속도로 돌아온 것은 잘 한 일인가,
오늘 하루만 가지고 셈을 따진다면 너무 성급할지 모른다.
며칠 더, 아니 몇 달만이라도
달리는 기계의 도움을 받지 않은 채,
도시의 인간이 어디까지 잘 살 수 있는지 실험해 보자.
그러고 나서 또 조금 엉뚱한 짓을 하면 누가 뭐라고 하나?
아무도 뭐라고 하지 않는다.
네 마음대로 해도 좋다.
출처 : 68 기러기
글쓴이 : 박동희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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