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9.5.금.
출근길부터 비가 쏟아지더니 이제 잠시 비가 멎었는가.
바람 불며 사무실 창을 때려대더니 잠시 한숨을 돌리고 있는가.
창 밖으로 보이는 거리에는 사람들이 드문드문 우산을 받쳐들고 걷고 있다.
쏟아지지는 않고 가랑비 수준으로 비가 내리는 것이려니.
오늘도 가락시장은 차분하다. 속으로는 부산할 것이다.
이 비가 그치면 계절의 순환은 가을, 분명하게 가을이 올 것이다.
우리 나이에 새로운 가을을 또 만나게 된다는 것은,
또 새로운 상념에 젖어 잠깐 일손을 멈추게 하지 않은가.
가을을 재촉하는 비까지 오고 있는 마당에야 더.
일단 릴케의 '가을 날'을 인터넷에서 불러냈다.
''주여, 때가 왔습니다. 지난 여름은 참으로 길었습니다.
해시계 위에 당신의 그림자를 얹으십시오.
들에다 많은 바람을 놓으십시오.
마지막 과실들을 익게 하시고,
이틀만 더 남국의 햇볕을 주시어
그들을 완성시켜, 마지막 단맛이
짙은 포도주 속에 스미게 하십시오.
지금 집이 없는 사람은 이제 집을 짓지 않습니다.
지금 고독한 사람은 이 후로도 오래 고독하게 살아
잠자지 않고, 읽고, 그리고 긴 편지를 쓸 것입니다.
바람에 불려 나뭇잎이 날릴 때, 불안스러이
이리저리 가로수 길을 헤맬 것입니다.''
가을이 왔음을 기뻐하고,
가을이 주는 풍요로움을 즐기면서도,
우리들 인간의 이 쓸쓸함을 어떻게 만나야 하는지,
릴케는 우리들에게 그 문제만을 던져주고,
어떻게 만나야 하는지는 각 자의 몫으로 남겼습니다.
누군가는 고독하지 않으면 좋은 시가 나오지 않는다며, 릴케의 고독을 둘러서 평가했습니다.
고독을 모르면, 어려움을 모르면, 좋은 삶이 나오지 않는다고 나는 비약을 해도 좋은가요?
비가 와서인지,
여름이 가고 가을이 올 것이라는 확실한 자연의 순환을 알아서인지,
나이 들어가는 자연의 흐름을 이제 인정해서인지,
옛 고3 국어시간, 18 살 소년으로 돌아가 보았습니다.
출처 : 68 기러기
글쓴이 : 박동희 원글보기
메모 :
'(68 기러기 카페 글모음)'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크랩] 톰은 추석날 연극을 보러갔다. (0) | 2018.11.10 |
---|---|
[스크랩] 추석을 맞이하시는 며느님들께 (0) | 2018.11.10 |
[스크랩] 깜깜한 열차 속에서 일어난 일 (0) | 2018.11.09 |
[스크랩] 8월을 보내면서 (0) | 2018.11.09 |
[스크랩] Your honest John----그 후 이야기 (0) | 2018.11.0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