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8 기러기 카페 글모음)

[스크랩] 나는 또 `번개팅`을 하였다.

햄릿.데미안.조르바 2018. 11. 9. 22:28
아침에는 하늘이 곧 비가 올 듯 '꿀꿀'하더니,
오후 들어 햇볕이 짱짱, 하늘이 우리 인간들을 왔다갔다 훈련시키고 있는 것이야.
아휴, 답답하고 더워라.

그런데 우리 사랑방은 오늘 썰렁, 냉기가 돈다.
어제 영희가 '너희 남정네들 어쩌구 저쩌구...........' 일갈하니 추운가?

언제 따져볼 날이 올 것이닷, 누가 이렇게 썰렁하게 방을 맹글었는지.


오늘 또 땜방, 다시 썰렁할까 무섭다.

지난 26일 상숙이네 '인성참치' 다녀온 메모.

2003.8.26.화.

어제 저녁 집사람과 함께 털보 상숙이네 인성참치에 갔다.
수남이가 7시전에 오면 밥과 술을 산다고 했는데 워낙 퇴근길 명동 앞 길이 막혀
아깝게 수남이의 지갑 들여다 볼 기회를 놓치고 말았다.
다른 친구 누가 왔을까 했는데 역시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또 수남이와만 '번개팅'을 하게 되었다.

저녁 7시 반경의 인성참치는 앉을 자리가 쉽지 않았다.
수남은 이미 자리를 잡고 있었는데 우리들 자리가 없었다.
우리가 도착하자마자 천사 영애의 전화가 왔다.
같이 왔으면 좋으련만, 일 때문에 여의치 않은 모양이었다.

조금 기다려서 문 가까이 자리를 잡을 수 있었다.
생각보다는 영업이 나빠 보이지 않았다.
온 가족들이 시간을 내어 운영하는 것이니 최소한 노동의 댓가 이상이 보장되어야 하겠지만, 어디 이 불경기에 그것이 쉬운가.
현상유지만 되어도 하늘에 감사해야 하지 않은가.


털보의 막내, 대학 2년짜리가 이모와 함께 땀을 흘리며 바삐 손님들을 맞이하고 있다.
언니를 멀리 모스크바에 보내놓고 왜 마음이 아프지 않으리요만,
그 날은 생활의 여전사, 입 모습이 굳게 닫혀져 비장하기까지 하다.
부모님이 없어도 가게 운영은 문제가 전혀 없다고 웅변하고 있다.
아이들은 어른들이 없을 때, 자신들이 알아서 할 일을 잘 하게 되어 있구나,
새삼 확인하였다. 모든 부모들이여, 자식들을 너무 어린애 취급하지 마시라,
그냥 간섭하지 말고 그들에게 맡겨두시라.

우리 집사람은 수남의 팬이다.
68 게시판의 수남의 글은 간결하고 꾸밈이 없고 낭만적이어서 좋다는 것이다.
수남의 담담한 표현들을 나 또한 좋아하지만, 왜 나의 글은 길다고 하면서 크게 반겨주지 않는지 우리 집사람이 나는 오늘 밉다. 나의 것도 못지 않게 좋다고 하면 안 되는가?

소주 두 잔인가 세 잔인가.
오늘따라 얼굴이 더 붉다.
오늘따라 몸이 더 무겁다.
나이가 든 것인가.
요즈음 너무 신경을 써서 그러한가.
수남이도 예전과 달리 얼굴이 붉어 보인다.

근처 국세청 33층의 라운지 야경은 어디 다른 나라에 온 것 같다.
오랜만에 종로에 나온 집사람이 더 좋아한다.
우리는 진토닉, 이름 잊어버린 칵테일, 아이스크림 하나씩을 들면서
30여 년 전 종로 이야기, 대학 1학년 때의 이야기를 하였다.
재수하던 주인이, 제평이는 1학년 신입생 수남과 동희를 시도 때도 없이 불러내었었다.
지들이 공부를 죽어라 해야할 놈들이 당구치며, 아르바이트로 생계를 꾸려야 하는 친구들을 불러내었으니,
지금 생각해도 '웃기는 짬뽕들'이었다.

그 때의 종로통은 나에게는 부러움의 거리,
밤의 거리를 친구들과 어울리고 싶어도, 그 놈의 가정교사 역할은 내게 이를 허락하지 않았다.
그것도 1 년이 지난 뒤에는 수원으로 내려가서 더 이상 종로는 내게 어울릴 수 있는 거리에 있지 않았다.

오늘 종로거리는 변함없이 젊은이들로 가득차고,
젊은 연인들의 거리낌없는 자유로움은 33년을 건너뛴 나를 시샘나게 한다.
더 늦기 전에 가끔 종로거리를 우리집사람하고 걸어다녀야겠다.
시새움나면 나도 더 젊어지는 거 아니겠어?
출처 : 68 기러기
글쓴이 : 박동희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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