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3보충대의 반란? 눈오는 날, 공수부대 차출 두려움에 범생의 자존심은 사치였다. 별 염치없이 아무런 고민도 없이 사라져나갔다.
3군사령부의 103보충대가 있던 곳이 의정부? 1군사령부의 101 보충대는 원주?
103보충대에 도착하던 날 그날 밤, 눈이 내리고 있었다. 10월말에 논산훈련소 입소하여 6주간의 훈련을 마치고 배치되었으니 아마도 12월 중순경 아니었을까?
의정부가 있는 한반도 북쪽은 12월이면 한겨울 매서운 날씨. 눈까지 내렸으니 더욱 추웟다.
연병장에 집합시키고 각자 내무반 배치가 끝났다. 내무반에 들어가자마자 내무반장인 기간병이 당장 빤쓰바람 연병장에 집합하라는 것.
아 과연 전방은 전방이고 훈련은 끝났지만 이제 본격적으로 신병생활이 시작되는구나싶었다.
빤쓰바람으로 집합된 신병들은 기간병의 명령따라 앞으로취침 뒤로 취침 일어서 앉아 일어서 앉아 엎드려뻗쳐등 그동안 훈련병시절 갈고닦은 기합기술들을 모조리 반복하고있었다.
마침 내리는 눈발위에서 기합을 받고 있었으니 감기가 걸려도 몇 번은 걸렸을 터였지만 아무도 감기에 걸렸다고는 하지않았다.
군대는 군대, 전방은 전방. 나는 스스로 군기가 잡혀가고 있었다.
첫날밤을 그렇게 보내고 곧 있을 자대배치 배속명령을 기다리고 있었다.
떠도는 소문은 가지가지.
최전선 철책선 지오피근무부대로 간다든지 공수부대로 차출된다들지 이미 103보충대는 휴전선 최전방 근무부대로 가는 중간지대라는 것.
어느 부대로 배치될지 생각이 많아지고 언뜻 불안감까지 들게 되었다.
두 번째날인가?
103보충대 행정반에서 나를 불렀다.
행정병; 3군사령부 자충기회가 있는데 어찌 생각하느냐?(자충이라함은 자체병력중에서 소요를 충당하는 것?)
나;기회가 된다면 무조건 좋습니다. 그렇게 해주십시오.
행정병;그렇다면 조건이 있다.
나;무슨???
행정병;돈이 필요하다.
나;왜 돈이 필요할까 의문이 들었지만 그 생각은 뒷전이고 3군사령부에 배치된다는데 그동안 온갖 걱정거리가 모두 사라졌다. 허리춤에 숨겨둔 비상금을 털어 그 행정병에게 주었다.
(내무반에 돌아와보니 나와 비슷한 제안을 받은 신병들이 몇몇 더 있었다. 훈련소때부터 비공식 소통하던 친구들이었다. 우리 28연대 병력은 운동권학생들중 학적변동자들이 주로 모여있었는데 음으로 양으로 서로를 이해하고 알고지내던 사이였다. 행정반에 불려가서 자충제안을 받은 신병들은 주로 일류대 출신자들이었다. 서울대.연대.고대출신 모두 6명이었다.)
셋째날인가.
연병장에서 3군사령부 예하부대에서 온 병력수송트럭이 들어오고 있었다.
이윽고 각자 배치될 부대이름과 함께 신병들 이름이 호명되었다.
나는 5사단으로 배치된다는 것.
우리 6명은 모여서 약속과 다른 부대배치에 울분을 토했다. 누가 먼저랄 것 없이 모두 행정반으로 쳐들어갔다. 어찌된 노릇인가? 왜 자충되지않고 모두 전방으로 배치되는가? 약속이 틀리지않은가?
재학시절 데모에 이력이 붙어있던 그들이었다. 학생들의 의견을 모으고 행동으로 옮기고 이에 대항하는 데 너무나 익숙해있는 그들에게 행정반 선임하사는 놀래고 있었다.
설마 신병들이 단체행동을 하면서 행정반에 쳐들어올지 그들은 예상치못했던 것일까?
선임하사는 불이야불이야 우리들을 행정반 밖으로 불러내서 사정사정하는 것이었다. 자충할 계획이었으나 긴급지시로 모두 전방으로 보낼 수밖에 없었다는 것. 대신 받은돈 일부는 이미 윗선등에 사용했으므로 일부만 되돌려주니 미안하고 받아주라는 것.
(지금 생각하면 그들의 생각은 단순하면서 명확했을 것. 3군 사령부에 자충요원이 필요하면 자충명령을 내야하고 그럴 경우 사령부에 자충된 병력의 학력은 최우수자원이어야하고 그러러면 일류대출신 서울대.연대.고대출신이어야햇을 것이니 우리6명을 불러모으로 그중 몇 명을 자충시키면 되는 것. 불행하게도 한명도 자충지시가 내려오지않으면 우리같이 행정반으로 몰려오는 경우는 거의 없었을 것.
대부분의 경우 반대로, 똥밟았다 셈치고 그냥 전방부대로 떠나고 말았을 것 아닐까? 누가 그 바쁜 와중에, 명령지를 받아들고 따불백을 메고 각부대별 트럭이 기다리고 있는데 보충대행정반을 찾아갈 엄두를 낸달 말인가?
지금 생각해보면 그들은 상습범이었지만, 우리들의 집단행동은 그들의 상습행위에는 들어가있지않았을 것이 분명하였다. 대기병이 감히 행정반으로 쳐들어올 생각을 하겠는가?
그때 행정반으로 가서 따져야한다고 주장했던 나는 알아줘야할 통뼈꼴통, 나같은 통뼈가 어디 흔한가?
세상은 요지경속. 이런사람 저런 사람 별의별 사람들이 모여서 살아간다. 그속에서 서로 싸우고 갈등하고 또는 몇몇은 속는 셈치고 그냥 지나치기도 한다. 한편으로는 아 재미있는 세상 아닌가?)
우리 6명은 사태가 잘못되었다 판단하고 더 이상 어찌할 도리가 없어서 선임하사의 수습책을 수용하기로 했다. 나도 반토막나버린 나의 비상금과 나의 자존심을 맞바꾼 촌극을 받아들여야했다. 모두들 각자 배치받은 부대로 떠났다. 그들중 몇은 가끔 신문지상에서 기명칼럼을 쓰는 사회의 저명인사가 되었다.
내노라하는 대학에서 그래도 내노라하는 학생들이었는데 일개 행정병의 꼬임에 넘어가 돈을 주고 자충을 지원했다니 말이 되는가?
최전선 휴전선부대에 배치된다든가 공수부대에 배치된다든가에 겁을 먹고 불안해서, 내노라하는 자존심을 헌신짝버리듯 버리고 몇푼 돈에 양심을 팔았으니, 이를 어찌 설명할 수 있을까?
자존심? 허울좋은 자존심이었다.
우리사회생활에 수도없이 일어나는 우리의 평범한 삶.
자존심이란 것이 있어요?
돈앞에 권력앞에 자존심은 언제든지 팽개쳐 버릴 수 있는 것인가?
의리도 명예도 때로는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고마는 것이 우리 현실 아닌가?
그때 나도 그랬다. 불안하였다. 좀 편한 곳에서 군대생활하고싶었다. 무슨 논리고 자존심을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우선 불안한 것에서 도망가고 싶었다. 추운 겨울날 눈오는 밤에 빤쓰바람에 딩굴어대는 기합을 주면서 공포감을 불러내는데 나의 자존심이 어디에 있단 말인가?
오히여 자충기회가 해프닝으로끝나고 나서 나는 정신을 차렸다.
아, 내가 못할 짓을 저지르고 말았구나. 어찌 일개 행정병의 말을 듣고 돈 몇푼으로 좋은보직을 사려고했단 말인가?
나의 본격적인 군대생활은 공수부대라 일컬어지는 5사단에서, 누구나 피하고 싶었던 5사단에서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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