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학교는 불행한가/전성은..전 거창고교장..대한민국의 교육을 말하다.
/직업선택의 십계;
1.월급이 적은쪽을 택하라
2.내가 원하는 곳이 아니라 나를 필요로하는 곳을 택하라
3.승진이ㅡ 기회가 거의 없는 곳을 택하라
4.모든 것이 갖추어진 곳을 피하고 차음부터 싲가해야 하는황무지를 택하라
5.앞을 다투어 모여드는 곳은 절대가지마라. 아무도 가지않는 곳으로 가라.
6.장래성이 전혀 없다고 생각되는 곳으로 가라
7.시회적 존경같은 건 바라볼 수 없는 곳으로 가라
8.한가운데가 아니라 가장자리로 가라.
9.부모나 아내나 약혼자가 결사반대를 하는 곳이면 틀림없다. 의심치말고 가라.
10.왕관이 아니라 단두대가 기다리고 있는 곳으로 가라.
/생각이 없는 민족은 망한다.
생각한다는 말은 지금 당면하고 있는 문제를 어떻게 보느냐는 말이다. '생각이 없는'이라는 말은 잘못 판단하고 있다는 말이다.
바른 판단을 하지못하는 민족은 사태를 해결하기보다는 오히려 악화시키기만 하다가 결국에가서는 망하고 만다는 뜻이다.
걸어온 길을 돌아보지 ㅇ낳는 학문과 지식은 장님이 되고, 앞으로 나아가지 않는 학문은 덫이 된다. 뒤를 돌아보고 앞을 향할때만 진리가 된다.
불교인은 부처님의 진리를 실천하기 위해, 기독교인은 예수의 진리를 실천하기 위해 목숨을 내놓을 준비가 되어있어야 한다. 그분들의 진리를 사람들의 기호와 입장에 맞추면 종교라는 상품이 되어 버리고 만다.
/학교란 무엇인가
-로버트 오웬;자본주의 초기에 활동한 사회주의 운동가..1800년 스코들랜드 방직공장 지배인..이상적 사회를 만드는데 방해가 되는 것은 인간의 무지..가난한 아이들이 자라서 온갖 범죄를 저지르는 사회악이 된다고 믿었다. 그래서 그들에게 생활환경을 개선해주족 글을 가르피게 되면 빈곤과 사회악을 예방하는 효과가 있을 것..글런데 놀팝게도 생산능률이 오른다는 생각지도 못했던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오늘날 초등교육의 시작.
국가는 한 인간을 위해 존재해야한다.
인간을 이해하려면 여러 각도에서의 물음이 있어야한다. 물음의 가짓수가 많으면 ㄴ많을수록 인간에 대한 우리들의 이해의 폭이 넓어진다.
인간은 목적이지 수단이 아니다른 것이다.
'천상천하 유아독존, 삼계개고 아당안지' 하늘과 땅에 오직 이 한몸 세상에 온 것은, 세상 모든 사람들이 당하는 고통을,나로 하여금 편안하게 해주려 함이 아닌가...'아'는 부처님 본인만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모든 인간을 가리키는 것.
오늘날 우리나라 학교교육에서 행해지고 있는 입시제도는 경쟁이다. 네가 들어가면 내가 못들어간다. 경쟁을 수단으로 국민을 통제하던 고대국가롸 식민지 국가에서 하던 정책을 그대로 따라하고 있는 전근대적이고 비인간적인 제도다.
학교교육에 있어 아이들은 각자의 재능과 소질, 관심을 최대화시켜야 할 대상이다. '섬김의 교육'..아이들의 재능과 소질, 괸심을 최대화시켜주는 일이 학교교육이 학생을 섬기는 방법.
국가가 주관하는 시험에서는 교과서에 나온 것이 정답이다. 정답의독점은 암기식 수업을 낳고, 암기식 수업은 주입식 교습방법을 가져온다.
주입식 수업은 교사의 학생에 대한 지배권위..존경권위가 아니다..를 필요로 하고, 학생에 대한 교사의 권위주의는 상명하복의 학교문화를 만든다.
'정답의 문화'는 스스로 알아보고 비교해본뒤 내린 결론이 아님에도...마치 자기가 연구해서 알아낸 결론인 것처럼 믿게 된다. 그렇게 되면 자기의 의견이 안미에도 불구하고 확신을 가지고 주장할뿐마나 아니라 남에게 강요까지 하게된다. 그리고는 다른 견해를 가진 사람에겐 공격적이 되는 문화다.
아이들 재능과 소질, 관심을 무시하고 학교공부를 한날한시에 평가하여 등급을 매기고 그 등급에 따라 계층과 계급을 결정하는 것이 정의라고 위기는 '제국주의 이데올로기'를 어ㅉ제까지 허용할 것인가.
대학입학을 위하여 국가가 한날한시에 학새을 평가하는 나라가 있는가?
예부터 한 국가 또는 제국이 학교교육을 통해서 국민에게 주입한 '도덕'이라고 하는 것은, 통치계급이 자기들을 위해 만들어놓은 '질서'였다. 로마가 내세운 도덕은 '법과 정의'였다. 그런데 그 정의는 로마시민권을 가진자들만을 위한 것이지 피지배민족이나 노예를 위한 것이 아니었다.
파괴와 약탈이 제국의 정의였고, 그 정의는 곧 제국의 이익이었다.
예수가 태어나기전 갈릴리 지역에서 반란이 일어낫다. 로마는 군대를 보내 초토화시켰다. 마을을 모조리 불태우고 살육하고 약탈했다. 예수는 아마도 그런이야기를 살아남은 어른들로부터 들으며 자랐을 것이다...그러나 그가 설파한 가르침은 '원수가 목말라하면 마실 물을 주고, 배고파하면 먹을 것을 주라'는 원수에 대한 사랑이었다.
예루살렘에 편히 살면서 자신들의 신에게 제사 올리는 것을 허용받는 대신, 로마가 자기민족을 짓밟고 착취하는 것에 협력했던 제사장 계급(상륳사회)은 가난한 하층민이 지키기 어려운 안식일 법/안식일엔 어떤 일도 해서는 안되는 법..과 독점하고 있던 성전 제사 수호를 내ㅅ[ㅔ워 예수를 비난했다.
예수가 안식일에 한쪽손이 마비되어 쓰지못하는 장애인을 고쳐주자 그들은 안식일 법을 어겼다며 예수를 비난했다.
예수;'안식일이 사람을 위해 있는 것이지, 사람이 안식일을 위해 잇는 것이 아니다'
법도 도덕도 사람을 위해 잇는 것이다. 역사적으로 통치계급이 만든 도덕과 법은 백성을 지배하는 수단이었다.
결국, '질서는 복종'이다.
간디와 마틴 루터킹 2세...영국이 만들어놓은 질서, 백인들이 만들어놓은 질서를 지키ㅣ지않는 것으로 독립운동/인권운동을 시작햇다.
많은 사람들이 남의 의견에 따라 살아간다. 남의 눈을 의식하고 살아간다ㅣ 남을 위해서 사는 것과 남이 어떻게 볼까에 따라사는 것은 다르다.
우리의 문화가 남의 문화보다 더 훌륭해서 사랑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의 문화라서 사랑하는 것이다. 서양문화라면 무조건 우리것보다 훌륭한 것이라고 믿는 병도 무서운 병이지만, 우리것이 무조건 남의 것보다 뛰어나다고 믿는 것은 더 무서운 병일 수 있다. 문화는 그냥 서로 다를뿐이다. 모두 서로 다름에 가치가 있다. 문화는 서로 다를뿐 우열로 나누면 안된다.
받지말아햐 할 도움이나 도움을 받아서는 안 될 사람에게 받는 도움은 독약이다. 받아서는 안 될 돈을 받으면 죽는다.
세상에 똑같은 사람은 없다. 제각각이다.
바로 이 다른 점이 그 사람만이 갖는 가치다. 하교교육은 이처럼 각각 다른 사람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 교육하여야한다.
슈바이처..음악에 재능/오른간...그러나 신학에 괸심이 있어 신학을 배웠다...그러나 또..어느날 새벽 생의 방향을 바꾼다..새벽에 빗소리를 들으며..'주여, 저도 저 빗방울이 창에 부딪쳐 소리를 내듯 저 역시 예수와 부딪쳐 소리를 내게 해주소서...'
그의 나이 서른일곱..보장된 대학교수직을 버리고 의과대학에 들어가 의사가 되어...백인들이 아프리카인들에게 저지른 죄를 속죄하기 위해 아프리카로 떠난다...재능과 소질도 중요하지만 한 인간의 생을 결정하는 것은 관심이라 할 수 있다.
연간 20조원의 사교육비...서울대 법대..서울대 의대..경쟁또 경쟁..20조원이 복지와 암연구와 건설과 생산에 쓰이면 국가적으로 얼마나 이익일까?
아ㅓ이들의 재능과 소질, 관심을 뽑아내 최대화시켜 주어야할 대학이 잘 가르치는 경쟁은 하지않고 뽑기 경쟁만 계속하면 나라가 망하지않고 버틸 수 있게는가?
대학은 뽑기경쟁에서 가르치기 경쟁으로 경쟁의 틀을 바궈ㅏ야한다.
묻는 사람에게 대답이 주어진다. 그 대답은 정답이 아니라 해답일 뿐이다. 한 질문에 대한 해답이다. 특히 삶과 신앙, 신념에 있어서는 정답이 없다. 고민하는 사람의 진지한 고민에 대한 해답이 있을 뿐이다. 고민하나에 대한 해답을 얻고 나면, 다음 단계의 고민이 오는 법이다. 다음 단계의 고민으로 이어지지않는 고민은 고정관념일뿐 고민이 아니다.
(고정관념은 삶의 다양한 단계의 경험중 어느 시점에 머물러버리는 병이다)
할 수도 있고 하지않을 수도 있는 결정권이 주어졌을때, 스스로 판단,결정하고 그 결정에 대해 책임을 지는 힘이 생긴다. 선택하고 그 결과를 받아들이는 힘이 인격을 결정한다...옷이나 머리모양보다 더 중요한, 자신의 가치관을 스스로 결정하는 일은 인격형성의 핵심이라 할 수 있다.
무엇이 될 것인가 보다 어떤 가치관을 가지고 살 것인가가 더 중요하다. 인격은 이런 것을 결정하는 힘이다.
미래에 어떤 삶을 살 것인가를 결정할 학생 시기에 자율적인 생활을 하는 것은 절대적이다.
/거창고등학교를 세운 전영창(필자 전성은의 아버지) 교정선생님은 미국에서 신학을 공부하고 1956년에 한국으로 돌아오셨다. 고국에 돌아와 배우고 싶어도 배우지못하는 가난한 농촌 아이들을 가르치고 싶다는 것이었다.
(원경선 이사장..원혜영의 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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