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52호/2009.3.23.
1.박노자의 거꾸로 본 고대사/신라에선 승려가 무당?
-초자연적 힘을 신앙하려는 욕망은 종교의 본질과 직결돼 있다. 사회현상으로서 대부분 종교들의 본질이란 공포, 즉 겁이다.
-그리하여 인간에게 그 공포를 잠재울 초자연적 힘에 대한 신앙, 그리고 그 힘과의 소통을 담당할 성직자가 필요하게 된다. 즉 아무리 ‘근대적’인 종교라해도 초자연적 현상을 무시하는 ‘합리적 종교’가 되기에는 한계가 있다.
-근대가 되든 탈근대가 되든 마음속의 ‘본원적 공포심’을 달래기 위하여 ‘기적의 힘’을 찾으려는 심리에 하등의 변화도 없다.
-석가모니의 근본적 가르침인 空과 緣起야 어떤 신비로운 힘도 필요로 하지 않지만, 윤회의 늪을 떠나기 위한 방편인 八正道의 가장 핵심적 부분인 正定 삼매 또는 참선은 고대 인도에서 자못 신비화돼 있었다. 삼매에 잘 드는 수행자가 신들보다 더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는 것은 고대 인도인들의 상식이엇는데, 바로 그 상식은 초기 불교에도 적용됐다.
-언제까지 기복에 매달릴 것인가?/고통의 기원과 고통을 지양해 안락의 열반 세계와 하나가 될 수 있는 자비와 선행, 자리이타의 길을 보여줘야 할 공포 극복의 위해한 교리인 석감보니의 가르침은, 과연 오늘날에 와서도 각종 ‘대입기도’에 의존하고 ‘영험’에 대한 이야기로 보살님들의 마음을 잡는 등, ‘공포를 잠깐 잠재우는 진통제’ 역할만을 계속하는가?
-개인적으로 공포의 기원 중 하나인 탐욕을 극복하고, 사회적으로 탐욕과 공포를 부추기는 자본주의를 극복해 경쟁이 아닌 상생의 사회를 건설하게끔 도움을 줘야 할, 원리원칙상 초자연적 요소를 꼭 필요로 하지 않는 가르침이 불교가 아닌가?
-공포심이란 인간의 영원한 한계지만, 불교 등 한국종교가 이 한계를 극복하려는 노력을 제대로 하지 않으면서 대중의 공포 심리를 상업적으로 이용하는 것은 석가모니와 예수에 대한 모독이자 배신이다. 언제까지 고대의 ‘신이 신앙’과 다를 게 없는 기복 행위에 반성 없이 매달릴 것인가?/노트정리2009.4.2.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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