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옛친구들과 비가 올 듯 말듯한, 늦가을의 청계산을 만났었는데, 발에 밟히는 낙엽들이 마음에 자꾸 또 밟혀서, 오늘은 북한산의 늦가을 냄새를 맡기로 하였다.
지난주 만났던 정릉계곡의 나뭇잎들이 다시 보고 싶었다.
4.19 묘지-진달래 능선-대동문-보국문-정릉계곡
쌀쌀하긴 하였지만 오히려 산은 더 좋았다. 산에 오는 사람들이 완연히 줄어들어 걸치적거리지 않아 좋았고, 단풍잎이 낙엽되어 나딩구는, 새롭게 변해있는 산의 다른 모습을 보는 것도 좋았다.
엊그제 버얼겋게 달아올라 있더니 어느 사이 잎을 덜어내고 앙상하게 날씬한 몸을 하고 있다니, 자연의 변화무쌍함에 새삼 신기하였다.
더울 때 산을 오르는 것보다 오늘처럼 쌀쌀한 날씨에 산을 오르면 난 더 좋은데, 거기에 돌 계단위의 낙엽들을 보며 밟으며 오르는 길은, 내게 더 즐거움을 주었다.
오늘 운가사 쪽 돌계단 길, 떨어진 낙엽들은 그냥 친근하였고, 하나하나 옛날 이야기하듯 가깝게 느껴졌다.
오르막길인데도 전혀 힘들지 않았고, 벌써 대동문이 나타났다 싶었다.
산행객들은 성벽밑 여기저기 햇볕을 찾아 점심들을 하고 있었다. 옹기종기 모여서 벌써 햇볕을 찾다니, 인간들의 변덕스러움인가 자연스러움인가.
올라올 때는 대동문-보국문을 거쳐 정릉계곡의 낙엽과 그 주변 풍경을 다시 한번 보려니 했었는데, 더 쌀쌀해진 날씨가 날 옛날로 불러내고 말았다.
추위를 떨어내려고 뛰어달렸던, 70년 대학 1년 시절, 그 북한산 계곡길이 눈 앞에 어른거리며 유혹하였다.
완만한 하산길을 톡톡치며 내려가면 추위는 감히 따라오지 못하고, 늘씬하고 풍만한 바위들이 이곳저곳에서 그 몸매를 뽐내고 있었다.
여름이 아니어도 계곡물은 시원하고 깨끗하게 그대로 있었고, 내 마음도 편안하고 시원해졌다.
‘떳떳한 사람은 두려워하지 않고, 부드러운 사람은 싸우지 않는다.’ 법구경 구절들이 노적사 가는 길에 여기저기 정성스레 걸려 있었다. 주지스님이 누구일까 궁금해졌다. 나를 정리해주면서 받쳐주고, 동시에 앞으로의 나에게 던져주는 길잡이 같아서 새기고 또 새겼다.
노적사 가까이에서, 계곡이 완전히 끝나기전에, 햇볕을 받을 수 있는 넓적한 바위 하나 위에 점심상을 차렸다.
깔판을 깔고, 보온도시락에서 출석을 불렀다. 토란국, 조도젓, 볶은 멸치, 김, 김치 그리고 계란말이에, 따뜻한 밥을 햇볕과 함께 허기진 입안으로 넣었다. 갑자기 함께 오지 않은 가족들이 생각났다.
산에서 맞이하는 점심은 언제나 꿀맛. 쌀쌀함 속에서 따뜻한 토란국은 별미였다.
사과와 감 그리고 마지막은 나의 ‘막커피’. 부러운 것이 어디 있을까. 난 왕이로소이다.
계곡이 거의 끝나는 곳에 야외공연장, 펑퍼짐한 자유와 인간들의 소란스러움이 마련되어 있었다. 산속에서는 보이지 않던 산행객들이 이곳에 다 모여있었다. 푸짐한 파전이며 돼지고기 막걸리, 고소한 냄새까지. 쌀쌀한 날씨 속에서도 오가는 막걸리잔과 오가는 이야기들을 다정하여 따뜻할 것이다.
혼자가 아니라면 파전에 막걸리 한 잔 했으면 싶었다. 눈으로만 즐기고 나의 하산길은 계속되었다.
계곡탐방길은 인간들이 이미 수영장으로, 음식점으로 탐방을 끝내놓고 있었다. 자연적 계곡탐방은 없었다. 시간가는 줄 모르게 하산이 끝나고 있었다. 오후 2시 30분. 점심시간 30여분을 빼면, 대동문에서 2시간여, 이정표가 말하는 5 키로미터 거리가 맞는지 내 걸음이 빨라졌는지 쌀쌀함이 발걸음을 더 빨리 띄웠는지, 모르겠지만 금방 하산길이 끝나버려 서운하였다.
점심먹은지가 얼마 지나지 않았는데도 호떡이 왜 또 맛있게 다가오느냐. 700원이면 하나를 준다고 하여 염치없이 받아먹었다. 빈 커피잔 속에 넣어서 호떡을 먹어보았는지요? 그거 별미던데요.
구파발 전철역에서 남부터미널역까지, 졸다가 깨다가 자다가 하다가 내려야할 교대역을 지나쳐서 남부터미널역에서 내렸다.
인천 주안에서 서울로 출퇴근할 때가 있었는데, 남들은 우산을 전철에 놓고 내렸다, 졸다가 내려야할 역을 지나쳐 종점까지 갔다고들 하는데, 난 그런 일들이 일어날 수 있는 것인가 이해가 잘 되지 않았었다.
내가 남들하고 달라서 내가 이상한 것인가 남들이 이상한 것인가 했었다.
그런데 그런 일들이 요즈음 내게 심심찮게 일어나고 있다.
핸드폰을 차에다 놓고서는 집에서 가지고 오지 않았다고 생각하거나, 사무실 열쇠를 다른 주머니에 넣어두고 사무실에 와서야 안다거나, 분명히 노트북을 가지고 갈려고 챙겼는데 집에 와서야 사무실에 놓고 왔음을 알거나, 하는 일들이 자주 일어난다.
전철에서 졸다가 내려야할 역을 지나친다는 것은 내게 새로운 사건임에 틀림없다.
오히려 나의 정신건강에 더 유익할 것이다는 자체진단을 하면서도 이제 나도 어쩔 수 없이 나이든 사람들의 과정을 밟고 있구나 하는 서글픔도 함께 갖지 않을 수 없다.
오늘은 진도가 한 단계 더 나갔다. 교통카드를 아무리 출구 검색기에 대어도 이놈의 기계가 날 통과시켜주지 않는 거였다. 몇 번을 다시 해도 ‘노’‘노’하는 것이었다. 역무원에게 카드를 주고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확인시켰더니, 몇 번 검색을 하더니 무표정하게 다시 해보라는 것이었다. 또 해보았더니 이제는 기계가 돈은 읽었는데 문은 열어주지 않는 것이었다.
다시 확인하니, 이런 일이라니. 글쎄 입구쪽 기계에 카드를 들이대었으니 이놈의 기계가 ‘노,노’할 수 밖에. 여태 나가는 쪽이 아닌 들어오는 쪽의 기계에 들이대었다니, 정신을 어디에 두었단 말인가.
그래도 교통카드는 돈 계산은 제대로 하였겠지요? 여러번 들이대었다고 여러번 돈을 내라고 하면 아니되는 것이지요? 글쎄, 교통카드 누적계산이 어떻게 되었는지 관심 없지만, 나의 새로운 면모에 씁쓸해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정신건강’에 좋은 거야 하며 애써 자위를 하였다.
파고다 공원에 가면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많이 나와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보통 며느리나 아들에게서 그날그날의 용돈을 타서 하루를 보낸다.
한 할머니가 손주에게 예쁜 장난감을 사주고 싶은데 마땅한 돈이 없다. 한 할아버지는 돈에 여유가 있어서 연애를 하고 싶은데 상대가 마땅치 않다. 우연인지 필연인지 둘이 의사가 통해서 돈을 주고 받으며 몸을 통하기로 하였다.
문제는 할아버지 몸이 옛날의 그것이 아니어서 할머니 몸을 통하지 못하고 아무리 다시 해봐도 결과는 통하지 못하였다.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서로 대금결제 조건에 대하여 싸우기 시작하였고 급기야는 파출소에까지 가게 되었다.
할아버지 왈,통하지 않았으니 돈을 줄 수가 없다. 할머니 왈, 통하지 못한 것은 그쪽 사정이고 난 해줄 일은 다 했으니 돈을 계산해야 한다.
누구 말이 맞는 건가요? 우리의 현명한 파출소장은 반반씩 타협시켜 이 어려운 문제를 해결해주었다고 합니다.
나의 교통카드는 어떻게 계산될까요? 대기는 하였지만 통하지는 안했으니 논리적으로는 계산이 되면 안되는 거지요. 사람의 몸과 기계의 몸은 다르니까요.
나는 가끔 엉뚱한 생각을 하곤 하는데 내가 정말 엉뚱한 건가요?
집까지 걸어가는 10여 분은 또다른 즐거움과 자유로움이었다. 발 끝에 걸쳐지는 포도위의 잎넓은 낙엽들, 떨어져 특이한 냄새를 풍기는 은행들, 오후 4시경의 약한 햇살과 함께 멀어져가는 가을을 보내고 있었다.
유난히 이번 가을은 소리내면서 왔었고 또 소리내면서 멀어져 간다. 내가 소리나는 나이 오십이 넘었으니, 5학년 3반이어서 그 교실이 시끄러워서일 것이다.
ⓒ 2007 OhmyNews
지난주 만났던 정릉계곡의 나뭇잎들이 다시 보고 싶었다.
4.19 묘지-진달래 능선-대동문-보국문-정릉계곡
쌀쌀하긴 하였지만 오히려 산은 더 좋았다. 산에 오는 사람들이 완연히 줄어들어 걸치적거리지 않아 좋았고, 단풍잎이 낙엽되어 나딩구는, 새롭게 변해있는 산의 다른 모습을 보는 것도 좋았다.
엊그제 버얼겋게 달아올라 있더니 어느 사이 잎을 덜어내고 앙상하게 날씬한 몸을 하고 있다니, 자연의 변화무쌍함에 새삼 신기하였다.
더울 때 산을 오르는 것보다 오늘처럼 쌀쌀한 날씨에 산을 오르면 난 더 좋은데, 거기에 돌 계단위의 낙엽들을 보며 밟으며 오르는 길은, 내게 더 즐거움을 주었다.
오늘 운가사 쪽 돌계단 길, 떨어진 낙엽들은 그냥 친근하였고, 하나하나 옛날 이야기하듯 가깝게 느껴졌다.
오르막길인데도 전혀 힘들지 않았고, 벌써 대동문이 나타났다 싶었다.
산행객들은 성벽밑 여기저기 햇볕을 찾아 점심들을 하고 있었다. 옹기종기 모여서 벌써 햇볕을 찾다니, 인간들의 변덕스러움인가 자연스러움인가.
올라올 때는 대동문-보국문을 거쳐 정릉계곡의 낙엽과 그 주변 풍경을 다시 한번 보려니 했었는데, 더 쌀쌀해진 날씨가 날 옛날로 불러내고 말았다.
추위를 떨어내려고 뛰어달렸던, 70년 대학 1년 시절, 그 북한산 계곡길이 눈 앞에 어른거리며 유혹하였다.
완만한 하산길을 톡톡치며 내려가면 추위는 감히 따라오지 못하고, 늘씬하고 풍만한 바위들이 이곳저곳에서 그 몸매를 뽐내고 있었다.
여름이 아니어도 계곡물은 시원하고 깨끗하게 그대로 있었고, 내 마음도 편안하고 시원해졌다.
‘떳떳한 사람은 두려워하지 않고, 부드러운 사람은 싸우지 않는다.’ 법구경 구절들이 노적사 가는 길에 여기저기 정성스레 걸려 있었다. 주지스님이 누구일까 궁금해졌다. 나를 정리해주면서 받쳐주고, 동시에 앞으로의 나에게 던져주는 길잡이 같아서 새기고 또 새겼다.
노적사 가까이에서, 계곡이 완전히 끝나기전에, 햇볕을 받을 수 있는 넓적한 바위 하나 위에 점심상을 차렸다.
깔판을 깔고, 보온도시락에서 출석을 불렀다. 토란국, 조도젓, 볶은 멸치, 김, 김치 그리고 계란말이에, 따뜻한 밥을 햇볕과 함께 허기진 입안으로 넣었다. 갑자기 함께 오지 않은 가족들이 생각났다.
산에서 맞이하는 점심은 언제나 꿀맛. 쌀쌀함 속에서 따뜻한 토란국은 별미였다.
사과와 감 그리고 마지막은 나의 ‘막커피’. 부러운 것이 어디 있을까. 난 왕이로소이다.
계곡이 거의 끝나는 곳에 야외공연장, 펑퍼짐한 자유와 인간들의 소란스러움이 마련되어 있었다. 산속에서는 보이지 않던 산행객들이 이곳에 다 모여있었다. 푸짐한 파전이며 돼지고기 막걸리, 고소한 냄새까지. 쌀쌀한 날씨 속에서도 오가는 막걸리잔과 오가는 이야기들을 다정하여 따뜻할 것이다.
혼자가 아니라면 파전에 막걸리 한 잔 했으면 싶었다. 눈으로만 즐기고 나의 하산길은 계속되었다.
계곡탐방길은 인간들이 이미 수영장으로, 음식점으로 탐방을 끝내놓고 있었다. 자연적 계곡탐방은 없었다. 시간가는 줄 모르게 하산이 끝나고 있었다. 오후 2시 30분. 점심시간 30여분을 빼면, 대동문에서 2시간여, 이정표가 말하는 5 키로미터 거리가 맞는지 내 걸음이 빨라졌는지 쌀쌀함이 발걸음을 더 빨리 띄웠는지, 모르겠지만 금방 하산길이 끝나버려 서운하였다.
점심먹은지가 얼마 지나지 않았는데도 호떡이 왜 또 맛있게 다가오느냐. 700원이면 하나를 준다고 하여 염치없이 받아먹었다. 빈 커피잔 속에 넣어서 호떡을 먹어보았는지요? 그거 별미던데요.
구파발 전철역에서 남부터미널역까지, 졸다가 깨다가 자다가 하다가 내려야할 교대역을 지나쳐서 남부터미널역에서 내렸다.
인천 주안에서 서울로 출퇴근할 때가 있었는데, 남들은 우산을 전철에 놓고 내렸다, 졸다가 내려야할 역을 지나쳐 종점까지 갔다고들 하는데, 난 그런 일들이 일어날 수 있는 것인가 이해가 잘 되지 않았었다.
내가 남들하고 달라서 내가 이상한 것인가 남들이 이상한 것인가 했었다.
그런데 그런 일들이 요즈음 내게 심심찮게 일어나고 있다.
핸드폰을 차에다 놓고서는 집에서 가지고 오지 않았다고 생각하거나, 사무실 열쇠를 다른 주머니에 넣어두고 사무실에 와서야 안다거나, 분명히 노트북을 가지고 갈려고 챙겼는데 집에 와서야 사무실에 놓고 왔음을 알거나, 하는 일들이 자주 일어난다.
전철에서 졸다가 내려야할 역을 지나친다는 것은 내게 새로운 사건임에 틀림없다.
오히려 나의 정신건강에 더 유익할 것이다는 자체진단을 하면서도 이제 나도 어쩔 수 없이 나이든 사람들의 과정을 밟고 있구나 하는 서글픔도 함께 갖지 않을 수 없다.
오늘은 진도가 한 단계 더 나갔다. 교통카드를 아무리 출구 검색기에 대어도 이놈의 기계가 날 통과시켜주지 않는 거였다. 몇 번을 다시 해도 ‘노’‘노’하는 것이었다. 역무원에게 카드를 주고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확인시켰더니, 몇 번 검색을 하더니 무표정하게 다시 해보라는 것이었다. 또 해보았더니 이제는 기계가 돈은 읽었는데 문은 열어주지 않는 것이었다.
다시 확인하니, 이런 일이라니. 글쎄 입구쪽 기계에 카드를 들이대었으니 이놈의 기계가 ‘노,노’할 수 밖에. 여태 나가는 쪽이 아닌 들어오는 쪽의 기계에 들이대었다니, 정신을 어디에 두었단 말인가.
그래도 교통카드는 돈 계산은 제대로 하였겠지요? 여러번 들이대었다고 여러번 돈을 내라고 하면 아니되는 것이지요? 글쎄, 교통카드 누적계산이 어떻게 되었는지 관심 없지만, 나의 새로운 면모에 씁쓸해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정신건강’에 좋은 거야 하며 애써 자위를 하였다.
파고다 공원에 가면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많이 나와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보통 며느리나 아들에게서 그날그날의 용돈을 타서 하루를 보낸다.
한 할머니가 손주에게 예쁜 장난감을 사주고 싶은데 마땅한 돈이 없다. 한 할아버지는 돈에 여유가 있어서 연애를 하고 싶은데 상대가 마땅치 않다. 우연인지 필연인지 둘이 의사가 통해서 돈을 주고 받으며 몸을 통하기로 하였다.
문제는 할아버지 몸이 옛날의 그것이 아니어서 할머니 몸을 통하지 못하고 아무리 다시 해봐도 결과는 통하지 못하였다.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서로 대금결제 조건에 대하여 싸우기 시작하였고 급기야는 파출소에까지 가게 되었다.
할아버지 왈,통하지 않았으니 돈을 줄 수가 없다. 할머니 왈, 통하지 못한 것은 그쪽 사정이고 난 해줄 일은 다 했으니 돈을 계산해야 한다.
누구 말이 맞는 건가요? 우리의 현명한 파출소장은 반반씩 타협시켜 이 어려운 문제를 해결해주었다고 합니다.
나의 교통카드는 어떻게 계산될까요? 대기는 하였지만 통하지는 안했으니 논리적으로는 계산이 되면 안되는 거지요. 사람의 몸과 기계의 몸은 다르니까요.
나는 가끔 엉뚱한 생각을 하곤 하는데 내가 정말 엉뚱한 건가요?
집까지 걸어가는 10여 분은 또다른 즐거움과 자유로움이었다. 발 끝에 걸쳐지는 포도위의 잎넓은 낙엽들, 떨어져 특이한 냄새를 풍기는 은행들, 오후 4시경의 약한 햇살과 함께 멀어져가는 가을을 보내고 있었다.
유난히 이번 가을은 소리내면서 왔었고 또 소리내면서 멀어져 간다. 내가 소리나는 나이 오십이 넘었으니, 5학년 3반이어서 그 교실이 시끄러워서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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