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태상사에서, 두 번째 일본출장 , 도꾜에서 만난 ‘귀인’
(후꾸오까의 ‘마메쇼’는 아프라톡신 클레임후, 거래가 끊겼다...해태제과 땅콩납품업자 소개로 이루어진, 최초 일본바이어가 떨어져나갔다.)
(재일교포 하라누마 박도0 사장과도, 더 이상 거래가 이어지지 못했다. 애국아가씨와의 해프닝도 문제였지만, 그보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그와 나의 불협화음이었다. 양주등을 가지고 직원들을 부하직원처럼 다루려한다든가, 과도한 코미션을 챙기려해서 나와는 전혀 맞지 않았다.)
새로운 일본바이어가 있었다. 나의 대학선배중 수의학전공하고서는 일반기계수입업을 하였는데 나에게 도꾜의 일반상품바이어를 소개해 주었다.
그는 일반상품을 취급하는 무역상이지만, 그의 거래선이 볶음피땅콩수입을 의뢰하니, 우리 해태상사와 연결된 것.
(거래 커미션은 해태상사와는 무관하고, 그와 그의 거래선 사이 또는 그와 나의 선배사이에서 어떻게 상호약정하였는지, 나는 상관할 일이 아니었다.)
그를 만나러 나는 일본을 두 번째로 방문하게 되었다.
(그의 거래선은 일본최대 땅콩업자인 찌바현 소재 다바타...오사카에도 큰지점이 있었다.)
벚꽃 흐드러지게 피던 4월초?
만나보니, 그는 60대 초반 초로의 신사. 일반무역에 잔뼈가 굵은 생선수입전문 무역상.
와이프가 경리.총무를 조고 아들이 영업을 총괄하고, 베테량 영업사원이 둘(요시다상 그리고 구시비끼상)이 더 있었다. 전형적인 일보소기업 무역상.
한국에서는 수산물을 수입하기도 하지만 전주제지로부터 특수한지를 수입하여 일본내 판매하고 있었다.
지난해 후꾸오까 방문때에는 아프라톡신 클레임 문제로, 일본을 감상할 시간도 준비도 전혀 되지 않았었는데, 이번 두 번째 방문은 특별한 현안이 걸린 것도 아니고, 소개된 바이어와의 첫만남이었으므로 그다지 큰부담은 없었다.
아니나다를까 그는 노련하였고, 약관30세 새파란 한국의 종합상사맨에게 무엇이 필요할지, 무슨 이야기를 하는 것이 좋을지, 이미 정리된 듯하였다.
말하는 것도 시원시원. 영어또한 능통.
내가 일어에 약하니 영어를 그때그때 상황에 맞게 함께 써주니 첫대면이지만 의사소통에는 무리가 없었다.
대뜸 오늘밤은 그의 집에서 머무는 것이 좋을 것이라며 생각지않게 나를 그의 집에 초대해주었다.
한국의 젊은이가 일본에서 민박을 해보는 것이 향후 비즈니스하는데 결코 나쁘지 않을 것이다...다다미방에서 하룻밤을 자고 나면 일본에 대해서 이해가 더 빨리 올 것이다.
대도시 상류 일본인들이 어떻게 사는지 직접 눈으로 보아 두라.
저녁식사까지 대접해주었다.
평범한 식사에 평범한 다다미방에서 하룻밤이었지만, 식사도중 또는 머무는 동안 그와의 대화는 나에게 매우 유익하게 들어왔다.
‘국민소득 2천불이 넘어가면 한국도 수출보다는 수입에 더 신경써야 할 것. 특히 농산물.식품취급하는 박상. 미스터 박에게는 이에 대한 준비를 반드시 해야할 것. 이것은 일본이 그러한 발전과정을 밟아왔고, 그는 그 중심에 있었기 때문에 자신있게 조언한다 하였다.
그리고 그는 나를 동네 슈퍼마켓을 보여주며, 소비자들에게 국내외 농수산.식품들이 어떻게 전시되고 있는지 내 눈으로 직접 보라는 것이었다.
땅콩 바이어를 만나러 왔는데, 2천불 이후의 한국시장변화에 대비하라는 조언을 듣게 되다니, 나에게는 행운이었다. 이것도 나의 운명? 이것은 나의 자유의지가 전혀 반영되지않았던 순수 운명의 끈이었다.
내가 모르는 ‘운명의 여신’이 존재하는 것 아닐까? 나의 자유의지가 갈망하지 않아도 이런 ‘귀인’을 일본땅에서 만나다니 과연 누가 이런 ‘연출’을 하는가?
물론, 나의 자유의지가 아니라도..이런 말은 할 수 있을 것...내가 평소 열심히 일하며 절실하게 무언가를 절실하게 원했으니 저멀리 ‘우주’에서 기운이 발생하여 일본의 그를 나에게 보내주었다? 그러니 결국은 나의 자유의지가 작용한 것이다?
어찌되었든 그는 나에게 ‘귀인’이었다. 내가 앞으로 종합상사맨으로서 어떻게 처신해야하는지 무엇을 준비해야하는지, 시험문제 출제하는 선생님처럼 이것저것 소상하게 알려주고 설명해주는 것이었다. 고맙고 고마운일이었다. 아링아도우.
또 있다. 그에게 배운 것은....
그와의 첫만남 이후, 그와는 몇몇 볶음피땅콩 거래가 있었는데, 소소한 클레임이 생겼다.
정말 사소한 클레임이어서 나라면 클레임보다는 다음계약으로 넘겨 처리해도 좋을듯하였는데, 그의 입장은 보다더 분명하고 확실하였다.
아무리 사소하여도 거래는 거래이므로, 반듯하게 반드시 집고 넘어가고 또 이해득실을 정산해야 한다는 것. 과연 일본인다운 철저함이고 일은 일로써 풀어나가야 한다는 것이었다.
정산하면서 1원 한 장까지 정확하게 계산하였다.
그의 회사이름은 ‘미야가와 엔터프라이즈’, Mr. Miyakawa...그는 나에게 ‘귀인’이었다.
(또하나 더, 볼펜을 쓰지않고 연필을 쓰면서 잘못된 초안은 다시 지우고 썼다. 쓰는 종이는 이면지를 사용하였다. 내가 군대에 있을 때 물자가 귀하던 때, 육군본부에서는 예하부대에 이면지 사용할 것을 지시하였는데, 잘사는 일본땅 일본무역상에게서 다시 보게 될줄이야 신기하였다.
또하나더, 땅콩사업과는 상관없는 것. 앞서 잠깐 언급한 바 있는, 특수한지비즈니스와 관련하여 클레임이 발생한 모양이었다. 다른 일을 보러 한국에 오면, 꼭 나를 만나고 인사동에 있는 그 특수한지거래선 사무실을 발품팔아 방문하는 것. 올때마다 외상값을 못받아 헛걸음을 치지만 헛걸음을 해도 꼭 그집에 들러서 왔다갔다는, 그집에 나의 관심이 아직도 크다는, 증빙을 남긴다는 것. 그의 직원들로 그가 하는 것처럼 똑같이 열심히 지성을 다하여 비즈니스를 하였다. 사업은 그렇게 해야 한다는 것이라고 나에게 말없이 가르쳐주었다.
그를 만난 것은 행운이었다. 내가 본격적인 상사맨이 되기전 그의 조언은 후일 큰도움으로 내게 들어왔다. 일본에 대한 잘못 입력된 많은 부분이 그로인하여 많이 해소되었다. 감사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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