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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아름다운 삶, 사랑 그리고 마무리(4-4.끝)/헬렌 니어링

햄릿.데미안.조르바 2018. 12. 21. 16:16

스코트는 훌륭한 일생을 살았으며 훌륭한 죽음을 맞았다.

그이는 순간 순간 최선을 다해 살았으며, 평온하게 죽었다.

그이는 바라던 대로 집에서, 약물이나 의사 없이, 병원에서처럼 제한을 받지 않고 헬렌이 함께한 가운데 갔다. 헬렌은 그이가 잘 해온 것에 기쁜 느낌을 가졌다.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1,500년에 ‘잘 보낸 하루가 행복한 잠을 가져오듯이, 잘 보낸 삶은 행복한 죽음을 가져온다.’고 말했다.

어떠한 장애도 없었다. 그이는 헐떡이지 않앗고, 경련을 일으키거나 떨지도 않았다. 더 이상 숨이 남아있지 않고 더 이상 육체에 매여 있지 않을 때까지 단지 부드럽게 숨을 쉬었다. 그럴 수 없을 만치 순조로웠다. 아름답고 편안한 임종이었으며, 다만 생명의 숨을 멀리 보냇을 뿐이었다.

 

 

계획했던 떠남을 곁에서 도우면서, 헬렌은 슬픔없이 그이의 마지막을 지켜 보았다. 헬렌은 손실이 아니라 그이가 해방됨을 느꼈다. 헬렌은 그이가 그렇게 가서 행복하게 느꼈으며, 자기 차례가 되면 자기 또한 그렇게 하기로 작정했다.

헬렌은 삶을 마무리하고 자신의 출발을 시작하기에 앞서 자기가 기여할 수 있는 시간이 몇 해 더 남아 있었다.

스코트의 죽음은 자신의 시간이 다가왔을 때 어떻게 맞이해야 할지를 보여주었다.

중요한 것은 사라지는 인격체가 아니라 사랑이라고 느꼈다. 그이라는 존재의 정수, 실재는 죽지 않고 남아 있다. 덮개와 껍질은 어쩔 수 없이 단명할 수밖에 없다.

(스코트의 100세 생일인 8월 6일과 그이가 죽은 8월24일은 간격이 3주일이 채 안되었다.)

 

스코트가 죽은지 6년이 지나 내가 여든다섯이 되었을 때, 나는 갑자기 내가 나이먹었음을 알았다.(헬렌은 스코트보다 스물한살이 어렸다....53년동안 함께 살았다.)

나는 오랫동안 빠르게 페달을 밟아왔다. 나는 이제 분명히 비탈길을 내려가고 있으며, 더 이상 예전에 쉽게 그랬듯이 힘있게 오를 수 없음을 깨달았다.

이제 가야 할 때, 천천히 내릴 때가 왔음을 느끼고 있다. 그동안 해왔던 일은 거의 마무리되었다. 나는 걱정없는 행복한 여행객이었으며, 이제 출발점으로 되돌아가는 중이다. 모퉁이를 돌면 끝이다.

 

죽음 없는 삶은 견딜 수 없을 것이다. 영원한 육체적 삶? 죽음과 소멸은 모두 하나로 만든다. 관계들은 뒤얽힌다. 저마다의 아들의 아들의 아들들과 할아버지의 할아버지의 할아버지의 할아버지들은 모두 영속하는 것이며, 할아버지의 할아버지들과 할아버지의 할아버지의 할아버지들과 섞이는 것이다.

 

죽음은 몇십년의 적당한 간격을 두고 우리를 느슨하게 한다. 죽음은 삶의 마감이다. 삶이라는 학교를 떠나 이제 그만 일하라는 통지를 건네주며 쉬라고 말한다. 이제 그만 끝이다.

죽음은 육체를 갖고 사는 삶의 휴가이자 새로운 전환점이다. 우리는 그것을 환영해야 한다.

하루 일이 끝나면 밤이 잠의 축복을 가져다 주듯이, 죽음은 더 큰 날의 시작일 수 있다.

 

아직 앞에 남아있는 가능성있는 날들을 내다보면서 일정표를 만드는 것이 내게 흥미로운 일이 되었다. 나는 마침내 노년을 경험하고 있으며 보상이 없지 않음을 발견하고 있다. 사람이 실제로 나이를 먹으면 더 깊이 보고 들을 수 있다. 당신이 저녁노을, 나무, 눈 또는 겨울을 아는 것은 마지막 순간에 이르렀을 때일지 모른다.

바다, 호수, 모든 것이 어린 시절처럼 마법이 되고 놀라움이 된다. 그리고 나서 처음으로, 그리고 아마도 마지막으로 본다. 더 깊은 열락과 이해을 가지고 음악, 새의 노래, 바람과 파도 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세익스피어의 73번 소네트 한 구절을 빌려 말하자면, ‘내가 머지않아 떠날 것을 더할 나위없이 사랑하게’된다.

모든 것은 덧 없으며, 사라진다. 내일도 그 자리에서 언덕 뒤로 지는 해를 보고, 이른 아침에 새소리를 들으며, 깊은 밤 하늘의 깊은 침묵을 느낄 수 있을 것인가? 그럴 수 없다면, 지금 그것을 깊이 맛보도록 하자. 그것을 우리 존재 안으로 끌어들여 잘 맛보고 소화하도록 하자.

 

 

스코트는 이상주의자였으나, 강인하고 실천하는 일꾼, 곧 실천하는 이상주의자였다.

또 타고난 종교인이었으나, 어떤 교회의 구성원도 아니었고 어떤 종교 집단에도 소속되지 않았다. 학식있는 사람이었으나 땅벌레같은 농사꾼이었고, 공적인 인물이었으나 운둔자로서 행복했고, 명망있고 우렁찬 웅변가였으나 보통 대화에서는 말수가 적었다. 학문적인 주제에 관해 간결하고 사실에 바탕을 둔 글을 썼으나, 일상 생활에서는 웃음을 머금게 하는 유머 감각을 가지고 있었다.

 

모든 것이 끝없이 변화하지만, 어떤 것도 이 우주에서 사라지는 것이 없다. 모든 것은 인과율의 흔들리지 않는 법칙속에서 다른 모든 것과 이어진다.

나는 삶이 하나의 통일체로서, 일단 한 번 생겨난 사랑은 여전히 존재한다고 느낀다.

내가 스코트에게 주고, 또 그이에게 받은 사랑, 그리고 내가 아는 수많은 여성, 남성들과 주고 받은 사랑은 이 세상에서 여전히 진동을 멈추지 않고 있다.

 

‘나는 사랑한다.’고 느끼는 모든 사람은 하늘의 영광을 더하는 것이다. 모든 나이, 장소, 시간에서 느껴온 사랑이 빛나고 있지 않은가! 영원히 진행되고 존재하고 있지 않은가! 사랑은 원천이자 목표이고, 완성의 도구이다.

사랑의 그물이 지구를 가로지른다. 미묘하게 빛나는 선들이 세상의 한쪽 끝에서 다른 쪽 끝까지 가는 망을 만든다. 세상에는 너무나 많은 사랑의 끈들이 있고, 너무나 많은 사람들 사이에 사랑이 진행되고 있다. 사랑에 참여하고 사랑을 주는 것은 인생의 가장 위대한 보답이다. 사랑에는 끝이 없으며 영원히 언제까지나 계속되는 것처럼 보인다.

사랑과 떠남은 삶의 일부이다.끝.2011.11.15.화./독서노트2012.3.15.목)

*헬렌 니어링 1904년 미국에서 태어나서 1995년 죽었다.(스코트 니어링은 1883년 태어나...1983년 세상을 떠났다...21살 차이...53년 함께 살았다.) 끝.

출처 : 68 기러기
글쓴이 : 박동희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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