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혼과 저녁별;
‘이제 마지막으로 부드럽게,
단단한 요새 같은 집의 벽과
꽉 물린 자물쇠와 걸쇠,
굳게 닫힌 문의 보호에서
나을 놓여나게 해주십시오.
소리없이 미끄러져 나가게 해주십시오.
부드러움의 열쇠로 자물쇠를 열고
속삭임으로 영혼의 문을 열어주십시오.
상냥하게 초조해하지않고
(당신의 힘으로 죽음을 거두시고,
사랑을 지키십니다.)/월트 휘트먼, ‘마지막 기도’
오랫동안 스코트와 나는 죽은 뒤의 세계에 대하여 관심을 가져왔다. 우리는 죽음에 대해 알고 싶은 호기심이 있었고 죽음이 어떤 것일지 큰 기대를 가져왓는데, 이제 스코트가 삶의 마지막에 점점 가까이 다가감에 따라 우리는 이 문제에 관해 많은 시간을 들여 이야기하고 책을 읽었다.
우리집 서재에는 죽음과 죽어가는 과정에 관한 책이 수십권 있는데 그 가운데 희귀본으로 유명한 프랑스 천문학자 카미유 클라마리응이 쓴 세 권짜리 책, ‘죽기 전’‘죽음’‘죽은 뒤’가 있다.
우리는 어떤 형태로든 삶의 연속성과 의식이 이어짐을 믿었다.
우리앞에 기다리고 있으리라고 믿는 더 많은 만남과 더 많은 기회를 간절히 바랐다.
우리는 죽음이라는 종말이 아니라 옮겨감이라고 느꼈다. 그것은 삶의 두 영역 사이에 있는 출입구였다.
이 문제에 관해, 오랫동안 친구로 지내온 불가지론자 로저 볼드윈에게 보낸 편지에서 스코트는 이렇게 썼다.
‘많은 사람들은 죽음을 끝으로 생각하지만 우리 같은 사람들에게 죽음은 변화지. 낮에서 밤으로 바뀌는 것과 비슷하게, 언제나 다시 또 다른 날로 이어지지. 두 번 다시 같은 날이 오지 않지만 오늘이 가면 또 내일이 오네.
사람의 몸뚱이는 생명력이 빠져나가면서 먼지로 바뀌지만, 다른 모습을 띤 삶이 그 생명력을 받아 이어진다네. 우리가 죽음이라 부르는 변화는 우리 몸으로 보아서는 끝이지만, 같은 생명력이 더 높은 단계에 접어드는 시작이라고 볼 수 있지.
나는 어떤 식으로든 되살아남 또는 이어짐을 믿네. 우리 삶은 그렇게 계속되는 것이네‘
스코트는 오랫동안 스스로 의도하고 목적이 있는 죽음에 대해 얘기해왔다. 그이는 자신이 완전히 무능력자가 되어 자신과 다른 사람들에게 짐이 될 때까지 기다리지 않으려고 했다.
요양소에서 두려움에 떨며 오랜 시간에 걸쳐 죽어가는 것을 결코 바라지 않앗다.
‘왜 우리의 마지막 날과 죽음을 그렇게 소란스럽게 만들어야 할까?’하는 의문을 가졌다.
쾌적하고 낯익은 환경속에서 조용하고 조화롭게 사라지는 대신에, 우리는 비싼 돈을 들여 우리가 사랑해온 이들을 병원이나 요양소로 보내어, 그 과정을 편안하게 돕기 보다는 자연스럽지못한 수단으로 막으려는 낯선 사람들에게 맡긴다.
우리는 불편함 속에서 울음으로 인생을 시작하지만, 떠날 때는 적어도 어느 만큼 우리의 목표를 이룬 가운데 위엄과 완전함을 지닌 채 갈 수 있다.
죽음은 언제나 우리가 지향해서 일해온 우리 삶의 일부인 것처럼 느껴졌다. 우리가 언제 어디서 죽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우리가 죽음을 맞이한다는 사실과 어떻게 맞이하느냐가 중요한 것이다.
우리는 죽음이 오리라는 것을 알았고 기다리고 있었다.
스코트는, ‘하루 일을 마치고 집안이 잘 정돈된 문간에 서서 그 앞에 펼쳐진 넓은 들판을 바라보며 저녁을 맞이하는 남자의 면모’를 지니고 있었다.
스코트는 자기 힘이 아주 사라지기 전에 가고 싶어했다. 그이는 자신의 자유의지에 따라 가기를 원했고, 의식을 갖고 또 의도한 대로, 죽음을 선택하고 그 과정에 협조하면서 죽음과 조화를 이루고자 했다.
그이는 죽음의 경험을 피하려고 하지 않았으며 스스로 기꺼이 그리고 편안하게 몸을 버리는 기술을 배우고 실천하기를 기대했다. 죽음으로서 그 자신을 완성할 것이다. 그동안 어떻게 사는지 배워왓는데 이제 어떻게 죽는지 배우고자 했다.
노자는 ‘생명이 열매를 맺고, 떨어지게 하라’고 말했다. 스코트의 삶은 완전한 열매을 맺게 되었으니, 이제 가도록 놓아둘 준비가 되었다.
다일런 토마스는 ‘이렇게 좋은 밤에 점잔을 떨수는 없잖은가’하고 노래했지만, 스코트는 자신의 죽음이 점잖고 목적이 있으며 아울러 평온하게 이루어지길 바랐다. 그이는 궁극적인 경험을 놓치고 싶어하지 않았다. 몽롱하거나 의식이 없는 채로 가는 대신 죽음을 음미하고 심지어 즐기고자 하였다.
죽음에 맞닥뜨리고 죽음을 맞이하는 데 얼마나 많은 방법들이 있는가? 죽는 사람 수만큼이나 많다. 죽음이 실제로 어떨지는 우리 자신이 갈 때까지 모르지만, 우리는 그것을 뒤틀린 떠남 또는 꽝 닫힌 문처럼 만들 수도 있고 또는 조화로운 정점, 절정으로 만들 수도 있다.
우리가 어떤 태도, 어떤 행동으로 죽음을 맞는가 하는 열쇠는 우리 손에 달려있다. 바람직하기로는 열린 눈과 감각을 가지고 떠나며, 옮겨감을 환영하는 것이다. 우리가 잘 준비하면 우리는 분별있고 평온한 마음으로 뜰을 걸어내려가, 문을 열고 그 길의 모든 과정을 눈여겨 보면서 갈 수 있다.
우리 모두는 훨씬 더 위험하고 혼돈스러운 과정인 탄생의 과정을 겪었으며 그것을 넘어 살아왔다. 이제 우리 앞에 무엇이 놓여 있는지 보아야 할 때다.
스코트가 아흔여섯이 되자, 나는 그이의 에너지가 얼마 남지 않았음을 느끼고 받아들이게 되었다. 그이의 건장한 체격은 마침내 쇠약해지고 육체는 다해가고 있었다. 그 몸은 다 닳은 연장이었고, 그이는 물러서서 자기가 바라는 새롭고 더 생산적이기조차 한 경험의 세계로 갈 준비가 되었다.
메인으로 이사온 1,2년 뒤부터 우리는 장의사에 돈을 주고서 미리 우리 자신의 화장에 대비했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은 스코트가 ‘주위 여러분께 드리는 말씀’이라는 제목으로 내게 남긴 지침을 따르는 것인데, 이 지침은 1963년에 처음 쓰고 1968년에 그이의 이름 머리글자를 써 넣었으며 1982년에 다시 그렇게 했다.
1.마지막 죽을 병이 오면 나는 죽음의 과정이 다음과 같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지기를 바란다.
-나는 병원이 아니고 집에 있기를 바란다.
-나는 어떤 의사도 곁에 없기를 바란다. 의학은 삶에 대해 거의 아는 것이 없는 것처럼 보이며, 죽음에 대해서도 무지한 것처럼 보인다.
-그럴 수 있다면 나는 죽음이 가까이 왔을 무렵에 지붕이 없는 열린 곳에 있기를 바란다.
-나는 단식을 하고 죽고싶다. 그러므로 죽음이 다가오면 나는 음식을 끊고, 할 수 있으면 마찬가지로 마시는 것도 끊기를 바란다.
2.나는 죽음의 과정을 예민하게 느끼고 싶다. 그러므로 어떤 진정제, 진통제, 마취제도 필요없다.
3.나는 되도록 빠르고 조용하게 가고 싶다. 따라서,
-주사, 심장충격, 강제급식, 산소주입 또는 수혈을 바라지 않는다.
-회한에 젖거나 슬픔에 잠길 필요는 없다. 오히려 자리를 함께할지 모르는 사람들은 마음과 행동에 조용함, 위엄, 이해, 기쁨과 평화로움을 갖춰 죽음의 경험을 나누기 바란다.
-죽음은 광대한 영역의 경험이다. 나는 힘이 닿는 한 열심히, 충만하게 살아왔으므로 기쁘고 희망에 차서 간다. 죽음은 옮겨감이거나 깨어남이다. 모든 삶의 다른 국면에서처럼 어느 경우든 환영해야 한다.
4.장례 절차와 부수적인 일들.
-법이 요구하지 않는 한, 어떤 장의업자나 그 밖에 직업으로 시체를 다루는 사람의 조언을 받거나 불러들여서는 안 되며, 어떤 식으로든 이들이 내 몸을 처리하는 데 관여하여서는 안 된다.
-내가 죽은 뒤 되도록 빨리 내 친구들이 내 몸에 작업복을 입혀 침낭 속에 넣은 다음, 스프루스 나무나 소나무 판자로 만든 보통의 나무 상자에 뉘기를 바란다. 상자 안이나 위에 어떤 장식도 치장도 해서는 안 된다.
-그렇게 옷을 입힌 몸은 내가 요금을 내고 회원이 된 메인 주 오번의 화장터로 보내어 조용히 화장되기를 바란다.
-어떤 장례식도 열려서는 안 된다. 어떤 상황에서든 죽음과 재의 처분사이에 언제, 어떤 식으로든 설교사나 목사, 그 밖에 직업 종교인이 주관해서는 안 된다.
-화장이 끝난 뒤 되도록 빨리 나의 아내 헬렌 니어링이, 만약 헬렌이 나보다 먼저 가거나 그렇게 할 수 없을 때는 누군가 다른 친구가 재를 거두어 스피릿 만을 바라보는 우리 땅의 나무 아래 뿌려주기 바란다.
5.나는 맑은 의식으로 이 모든 요청을 하는 바이며, 이러한 요청들이 내 뒤에 계속 살아가는 가장 가까운 사람들에게 존중되기를 바란다.
나는 죽음에 관해 말한 30가지쯤 되는 인용구를 담은 쪽지를 만들어, 그이가 죽는 마지막날의 부고용으로 친구들에게 보낼 준비를 했다. 여기 그 몇 편을 옮긴다.
-당신은 배에 탔습니다.
당신은 항해를 했습니다.
당신은 해변에 도착했습니다.
이제 내리십시오./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명상록. 160
-씨앗이 터질 때가 되면, 식물은 갑자기 낱낱으로 흩어진다.
그 순간 씨앗은 껍질 속에 갇혀 그렇게 오랫동안 좁게 누워 있던 상태가 파괴되는 것처럼 느낀다.
그러나, 사실은 새 세상을 얻는다......
새로 태어나는 아이와 탄생의 관계는, 우리와 죽음의 관계와 같은 것처럼 보인다.
어머니의 자궁 속에서 지금까지 삶을 가능하게 했던 모든 조건들이 사라짐은 더 넓은 세계로 나아감이었던 것이다./구스타브 페이너, 죽은 뒤의 삶. 1836
-죽음이 개인의 발전을 지속시킨다는 것을 아무도 모른다.
멀리 떨어져 있을 때나, 자리에 없을 때나, 잠잘 때와 마찬가지로 죽음은 우리의 지각을 보존한다.
탄생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가져다 주었다.
죽음은 감각을 더 예민하게 함으로써 우리가 여기서 볼 수 없는 색깔을 보게 하고, 지금 들을 수 없는 소리를 듣게 하며, 우리 눈 앞에 있어도 만져볼 수 없는 신체와 대상물들을 알 수 있게 함으로써 더 많은 것을 줄 수 있다./에드윈 아놀드 경, 죽음과 그 너머.1901.
-죽음을 슬퍼하고 그럴 듯한 위로의 말을 던지는 사람이 불멸이라는 생생한 사실에 눈을 돌릴 수 있겠는가?
육체가 영혼을 가졌는가? 아니다. 영혼이 육체를 가진 것이다. 영혼은 육체가 제 할 일을 다 했음을 알고, 아주 엄격하게 그것을 한쪽으로 비껴놓은 뒤 얼룩이 묻은 옷처럼 벗어버린다./루시엔 프라이스, 영혼의 기도.1924
-우리는 죽음이 육체의 끝이라는 것 말고 모든 모험의 종말이라고 상상할 수 없다....아직 해야 할 일이 있는데, 너무나 익숙하고 여전히 수수께끼이며 흥분을 가져다주는 우리 자신들이 바로 우리가 일하는 일감이다./메어리 오스틴, 죽음의 체험.1931...(4-3)/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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