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홍규칼럼]소박한 자율의 삶

이런 소위 ‘IT공화국’ 한국에서 21세기 최첨단의 새로운 현대 인류가 출현했다. 버스나 지하철이나 열차에서는 물론 움직이거나 밥을 먹으면서도 고개를 숙이고 휴대폰만을 쳐다보는 새로운 사이버 인간이다. 그들은 매일 자가용을 타고 회사나 학교를 오가면서 컴퓨터, 휴대폰, 텔레비전으로 하루를 보내는 생활을 되풀이한다.
내가 대학에서 함께 사는 학생들이나 교수들 대부분도 그렇다. 좌·우익 모두 그렇다. 그들은 이 아름다운 5월의 자연도, 옆사람도, 거리도 보지 않는다. 오로지 내 차, 내 아파트, 내 방, 내 사무실, 내 학교, 내 교실, 내 컴퓨터, 내 텔레비전, 내 휴대폰 등 모두 내것 속에서만 산다. 그러나 그 모두는 누구나 다 갖고 있는 똑같은 기계들이다. 모두 다 나 자신과는 무관한 기계들이다. 아니 이제 나 자신도 그 기계 속에 완벽하게 포함됐다. 그리고 더욱 더 완벽하게 포함되기를 바라고 있다. 기계와의 혼연일체다.
인터넷 종교에 빠진 21세기 한국
그래서 스스로 느끼고 사랑하며, 생각하고 읽으며, 노래하고 그리며, 걷거나 자전거로 이동하며, 큰 욕심 없이 자급자족하면서 살다가, 병이 들면 스스로 치유하다 집에서 조용히 혼자 죽는 소박한 자율의 삶을 살고 있지 못하다.
인간이면 본래 그렇게 살 몸과 마음을 가지고 있고, 그처럼 자연에 따라 소박한 자율의 능력을 자유롭게 펴고 자치할 수 있는 범위를 넓히면 넓힐수록 더 인간답게 살 수 있을 텐데 전혀 그렇지 못하다. 아니 그런 삶이 가능한지도, 필요한지도 모르고 무조건 기계 속에서 살아간다.
문제가 있다면 그것은 기계의 기능 문제일 뿐이고 기계 자체의 문제는 아니라고들 생각한다. 그래서 가령 항상 학교 교육에 문제가 많다고 비판하지만, 학교라는 기계 자체를 의심하고 공부란 학교에서가 아니라 스스로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다. 병원 치료에 문제가 많다고들 비판하면서도, 병원이라는 기계 자체를 의심하고 병은 스스로 치료하는 것이며 나이가 들면 누구나 죽게 마련이고 죽음은 집에서 조용히 맞는 것이라고 생각지도 않는다.
그러나 사실 인류의 탄생 이후 얼마 전까지 대부분의 사람들은 기계적인 삶이 아니라 소박한 자율의 삶을 살았다. 종교도 학문도 예술도 그렇다고 했다. 특히 오랫동안 우리의 토대가 된 유·불·선은 모두 소박한 자율의 삶을 중시했다.
반면 최근 급격하게 등장한 현대의 온갖 기계적인 관념·제도·기술은 기껏 지난 반세기의 변태, 그것도 서양에서 온 변태에 불과한데도 우리는 그것을 문명이니 문화니, 발전이니 성장이니 하며 미쳐 살고 있다. 그 중 하나가 자연 파괴지만 그보다 더 무서운 것은 소박한 자율의 삶을 파괴해 인간의 자유와 자치를 박탈하고 기계적인 국가주의·전체주의, 물질주의·산업주의, 거대주의·집단주의, 편리주의·표준주의 등을 초래한 점이다. 정치적 파시즘만이 아니라 경제·생활·사회적 파시즘이, 아니 기계가 정신을 지배하는 정신적 파시즘이 지배한다. 이 점은 좌·우익 모두 마찬가지다.
기계적 타율의 지배 벗어나야
이런 생활·정신의 파시즘에서 벗어나지 않는 한 민주화나 인간화를 비롯한 어떤 가치도 불가능하다. 이런 생활·정신 파시즘은 자연과 생명에 대한 예찬이나 채식과 귀농만으로 극복될 수 없다.
대부분의 가난한 사람들은 설령 그렇게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현실에서 그런 짓은 사치나 엘리트주의에 불과하다. 무지나 무식, 본능과 원시만을 찬양하는 것도 웃기는 짓이다. 특히 문학이나 예술이랍시고 그러는 것은 아예 코미디다. 인문정신이나 종교로 해결하자는 것도 획일주의적 전공주의나 분파주의에 불과하다.
그 모든 기계적 타율의 지배가 아니라 소박한 자율의 삶을 제 몸으로 실천하는 새로운 인간이 필요하다. 이는 너무나도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인간상인데 지금 여기서는 왜 볼 수 없는가?/경향신문2010.5.20.
출처 : 68 기러기
글쓴이 : 박동희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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