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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6. 빨간바지

햄릿.데미안.조르바 2018. 11. 25. 20:44

에티오피아를 다시 또 가면서 이왕이면 이번에는 두바이경유하는 에미레이트 항공을 이용하기로 하고...

이 기회에 두눈 딱 감고 두바이 일정을 넣어보자, 언제 두바이를 찾을 날이 올 것인가 하였었다.

에티오피아에서 서울로 귀국길에 두바이에서 하룻밤 묵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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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 새벽 3시 서울행 비행기를 타면 되는 것이니

하루종일 남는 것은 시간뿐,  반나절 시티투어로 두바이시내를 대충 훑어보기로 하였다.

 

내가 묵는 호텔에서 오후 2시 40분 출발,

6시간여 투어

나만 빼고 모두 서양코쟁이들.

28명.

가이드는 훤칠한 키 175? 30대후반? 

빨간바지에 흰브라우스 그리고 썬글래스,

너무나 반듯하여 아무나 범접하기 어렵게 철철무장된 독일병정같은 여성.

 

왕궁, 이슬람모스크 그리고 옛도시 발상지등 구경.

한낱 사막황무지가 지금은 중동땅의 오아시스가 되었다니...

중동의 꽃, 중동의  홍콩!

하늘을 찌를듯 솟아날고 또 벌써 찌르고도 남을 건물들이 한둘이 아니었다.

인간의 탐욕이라더니

제발 바벨탑까지는  아니쌓아야할 터인데....

 

바야흐로 

시티투어의 마지막 코스.

두바이 박물관견학을 마치니 오후 6시가 넘었고..날은 벌써 어둠이 가득하였다. 

 ''이스람세계에서는 금요일이 일요일, 오늘은 특히 사람들이 너무나 많으니...''

가이드의 말은 어찌나 빠른지 도통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영어와 독일어로 두 번 설명을 해주는데.. 설명을 제대로 이해하고 따라잡기가 쉽지 않았다. 

 

''...배를 타고 건너서 ‘금시장’가는데...사람이 많으니..나를 잘 따라와야한다등....''

 그러나 대행히도 Follow me!!는 뚜렷이 귀에 잡혀들어왔다. 

 

나는 순간 버스속에 놓고온 사진기가 생각되었다. 

얼른 버스로 달려가 사진기를 갖고 다시와보니..일행의 흔적이 묘연하였다. 

불이야불이야 하면서 따라 쫒아갔지만...보이는 것은 사람들머리뿐 그야말로 인산인해, 

사람들천지 모두들 줄줄이 줄을 서있었는데 아무리 찾아봐도 우리일행은 보이지 않았다.

영낙없이 미아가 되었구나, 직감적으로 큰일이 났구나 싶었다.

이를 어찌한단 말인가?

 

에라이썅! 

이왕지사 이렇게 된 거, 버스로 돌아가서 기다리고 있다가 구경마치고 돌아오는 일행을 맞이하면 되지  싶어서 버스로 돌아가려는데....

이놈의 버스는 이 급하고 답답한 심정을 알 바 아니라는 듯 차차 움직이기 시작하더니 곧장 속도를 내며 떠나가버렸다. 

야속도 그런 야속함이 없었다.

이제는 사라져버린 일행, 잃어버린 꽁무니를 무조건 찾아내야 하는 일밖에 다른 일이 없었다.

막막하고 또 막막한 것이 바로 사막모래밭에서 바늘찾기 하는 것이나 다름 없었다. 

 

날은 더 어두워져가고 있었다.

이리 뛰고 저리 뛰어보았지만 특별히 마땅한 수가 없었다.

체면차릴 것없이 어느 줄의 중간으로 '살짝' 들어갔더니 붙어서자마자 뒷쪽에서 무슨 소리가 들리는데....

‘거기 거 눈큰 한국사람..새치기 하지 마쇼’하는 것 같았다. 

어찌나 민망한지 얼굴을 붉으락푸르락하면서 숨도 쉬지못하고 줄에서 나와야했다. 

이 일을 어찌 수습해야 한단 말인가?

날은 점점 어두워져가지요 온통 머릿속은 시커멓게 먹칠되기도하고 하얗게 비어가기도 하고...정말 제정신이 아닐 정도까지 되가고 있었다. 

 

세상일이란 것이 죽으란 법은 없다던가?

저멀리 그러나 크게 소리치면 들릴만한 거리에 익숙한 '빨간바지'가 까만 어둠속에 뚜렷하게 서서 그 아름다움을 뽐내고 있었다.

흰브라우스입은 키큰 미모의 우리 가이드님이었다. 

아마도 그 가이드도 눈큰 한국동양넘이 어찌 보이지않으니 여기저기 두런두런 찾고 있었던 모양, 

나룻배는 떠나야하는데..와야할 녀석이 보이지 않으니 그 가이드 마음 또한 얼마나 답답하였을꼬? 짐작컨대 내마음과 엇비슷하지 않았을지>>. 

''엑스큐즈미!!!''

어찌나 반가운지 손을 번쩍 쳐들고 소리를 냅다 질러댔다.

그러나, 내 처절한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지 '빨간바지'는  아무런 움직임이 없었다.

''엑스큐즈미,플리즈!!!''

다시 한번, 더 크게 소리를 질렀더니...그제야 그쪽에서도 손을 번쩍들어 주었다.

이제는 살았다싶었다.얏호!! 

 

가이드는 손수건을 흔들 듯이 손을 휘저으며 어느 쪽을 가리키며 빨리 들어오라고 하였다.

서둘러 아무줄이나 어느 가까운 줄에 서서 기다리고 있는데 이놈의 줄이 줄어들어야지...언제나 줄어드나 조바심내고 있는데... 

기다리던 가이드가 아직도 내가 나타나지않으니..속이 타는지 이번에는 표관리직원과 함께 나를 찾아와서는 안타깝다는 표정을 지었다.

아까 손을 휘저으며 한쪽을 가리킨 것은, 서있던 줄에서 빠져나와 표받는곳으로 바로 들어오라는 신호였는데 어찌 내가 알 수 있었으리오!

 

우리는 단체관광객이니 처음부터 줄을 서서 입장하지않고 특별창구를 통하여 바로 입장하는 것인데 나는 그것을 알리가 없으니...

멍청하고 순진하게 맹하니 줄을 서서 기다릴 수밖에....그 투어가이드는 얼마나 답답속상하고 한심해했을지..

눈치하나 없는 한국범생의 원칙적 진면목만 끝없이 보여주고 왔으니 국위선양하였을까 국위몰락시키고 말았을까?? 

날아가듯 달려가니 표받는직원이 손수 마중나와 vip로 대접받아 마침내 지옥같던 아수라장탈출에 성공하였다.

 

뒤둥뒤뚱거리며 기다리고 있던 모터통통나룻배에 타니 이제는 안심되었다싶었다. 

내 화끈거리는 얼굴을 가이드가 보았을까? 

다행히 어둠이 이미 짙게 깔려있기망정이지 벌겋게 달아오른 내얼굴이 보였다면....??

못말리는 한국범생답답이의 전형을 기억하는 행운을 얻었을 터였는데 그녀는 아까운 기회를 놓친 셈이었다. 

 

조금 숨을 몰아쉬고 나서 주위을 둘러보니 이제 완연한 어둠이 출렁거리는 바닷물과 함께 잘 어우러져있었다. 

투어가이드를 다시보니 어찌나 아름다운지 빨간바지가 그렇게 색쉬하고 흰브라우즈가 그렇게 순결해보이고 그렇게 큰키가 이제는 믿음직한

심볼이 되어 내게 다가왔다. 

초저녁 어둠에 쌓여가는 두바이의 하늘이 가이드의 빨간바지와 어우러져 그렇게 아름다울 수가 없었다. 

앞으로 다시 사람많은 곳에 시티투어 할때는 투어가이드는 빨간바지에 흰브라우즈 입고 거기에 키가 커야할 것이니 반드시 참고할 것이로다. 

 

아라비안 어드벤쳐!

어젯밤 한밤중 공항에 내리니 날씨는 후덥지근 아무 도움없이 물어물어 호텔을 찾아가면서 내가 왜 사서 이 고생을 하고 있나 싶었는데...

오늘 '빨간바지'를 만나고 나서는 생각이 확 바뀌었다.

두바이에서 하룻밤 묵고 '아라비안 어드벤처'를 하기로 한 것은 잘한 선택이었다.

(나처럼 두바이에서 짧게 특히 하룻밤 묵어가는 여행객들을 위하여 공항픽업,호텔/시티투어예약등 대행해주는 써비스회사이름이 '아라비안 어드벤쳐'인데...예약할 때도 그랬지만 실제 해보니 '아라비안 어드벤처' 이름 한번 잘 지었구나 싶었지요.)

언제 다시 또 '빨간바지'를 만나는 행운을 잡을 것인가?

두바이에서의 풋하룻밤, 

아라비안 어드벤쳐!는 일상으로부터의 탈출 대성공이었다. 

  

 
 
 
출처 : 68 기러기
글쓴이 : 박동희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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