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8 기러기 카페 글모음)

[스크랩] `팔불출, 다시 일상으로`(1)

햄릿.데미안.조르바 2018. 11. 15. 15:34
2005.7.13.수.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다.

내 앞에 차려진 소박하나 무척 화려한 아침상,
토마토 쥐어짠 것, 누룽지, 구운빵에 울릉도호박쨈, 과일 그리고 막커피까지,
배가 터지기 직전까지 꽉꽉 아침배를 채웠다.(이거 너무 남수 약올리는 것 아닌가? 내 자랑 마누라 자랑까지 해대니 ‘나, 팔불출!’ 또 광고하고 있잖아? 정말 그러네)
아무리 늦게 출근해도 더 이상 늦을 수 없을 만큼 때가 된, 아홉시하고도 반이 조금 지나,
예의 할랑슬렁 느리적거리며 골목길을 한가하게 걸은 다음,
서울에서 제일 크고 길고 또 싼, 나의 자가용 전철을 탔다.

여름에다가 그것도 한여름인지라 골목길을 10여분 걸어왔더니 아침시간인데도 땀이 조금은 스믈스물 배어나왔으나 곧 전철의 냉방 속에서 밀려나고 말았다. 그 상황 그 느낌, 기분도 나쁘지 않다. 우리의 서울이니까 만나지고 맛보는 것 아닌가. 이것이 행복이고 자유이고 우리 민초들의 삶일 것이다.

‘기진맥진’
12박 14일 동안의 에티오피아 출장일정을 마치고 돌아온 지난 일요일 늦은 아침 10시경,
집에 떨어진 나는 ‘기진맥진’이라는 말의 쓰임새를 찾았다.
아, 이러할 때 이런 말을 쓰면 적확한 표현일 수 있겠다 싶었다. 일물일가라더니 일물일어라더니, 바로 그랬다.

동남아출장은 보통 3박 5일 또는 길어야 5박 7일. 시차도 2시간여이고 비행시간도 6시간 정도여서, 시차극복이나 여독을 풀어내는데 크게 어려움이 없었다.
그러던 것이 조금씩 나이가 더해지고 이젠 어엿한 5학년 중반을 치달으니 최근에는 전혀 아니었다.
3학년때는 바로 다음 날, 4학년때도 하루 이틀이 지나면 금방 옛 일상이었다.
그러던 것이 요즈음은 바로 일상으로의 복귀가 차일피일 늘어지고 길어지더니,
지난 5월의 에티오피아 5박 7일은 무리였고 함부로 몸을 놀리지 말라는 경고였다.
회복하는데 어찌나 힘들었던지.

이번에는 14일인데도 더 쉽게 빨리 풀렸다.
아마도 시차를 극복하는데 족히 10여일은 각오해야 하지 않을까 했었는데 3일만에 풀렸으니 얼마나 좋은가.
그런데 한쪽 구석, 어딘가 옆구리가 허전하고 휑하니 비어있는 것 같은 것은 왜이냐? 내가 지금 영치킨타령을 하는 것이더냐, 혹시 기러기방 카페에 들어가지 못해서 꼬리말을 달지 못해서 아닐까? 그러니까 꼬리로 머리를 흔들면서 아는 체, 잘난 체 ‘팔불출’ 짓을 못해서 안달이 난 거야, 그렇구나 싶었다.

출처 : 68 기러기
글쓴이 : 박동희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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