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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미국의 얼굴-----더불어숲에서 21.(끝).

햄릿.데미안.조르바 2018. 11. 15. 01:47
---보이지 않는 힘, 보이지 않는 철학(미국의 얼굴)

서부는 진짜 미국이 아니다. 환상이고 바람이다.
진짜는 동부에 있다.

미국의 얼굴은 슈퍼 엘리트 집단에서 찾아야 한다.
5만명정도?
숫자는 중요하지 않다.
보스톤, 하바드 MIT에 있나요?
그렇다고 할 수 있으나 집단으로 있는 것이 아니고 시스템으로 있다.
다양한 엘리트가 민주적으로 조직되고 부단히 편입 가능한 합리적인 시스템이 미국의 저력이고 숨은 얼굴이다.

그렇게 단순하지만은 않다.
하버드, MIT는 미국의 브레인이 아니며, 보이지 않는 얼굴이 못된다.
단순한 월가의 보정기구일 수 있다.
사회적 파워로서는 WASP(White Anglo-Saxon Puritan)의 관점이 중요하다.
군산복합체와 학문까지 복합체를 구성하고 있다.
백악관과 워싱톤은 대외용이고 대민용이며 매우 작다.

필그림파더스가 네델란드에서 건너온 칼비니스트인 것도 사실이고,
미국이 건국이념을 여기서 끌어낸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청교도 주의는 미국을 이해하는데 매우 중요하다.
최초의 정착마을 ‘플리머스 농장’ 그 옆의 인디언 마을.
그러나 기본적으로는 인디언을 사탄의 보병으로 본다.
인디언을 아메리카 원주민으로 고쳐야 한다.
原住民이 아니라 原主民.

나침반은 과학이 아니고 신학이었다.
과학도 신학도 아닌 경제학이었다.
퓨리터니즘은 오히려 네델란드의 상인자본의 논리,
필그림파더스가 찾아나선 자유는 봉건적 규제로부터의 탈출이었다.
독립전쟁도 자본의 탈출이었고 자본의 독립이었다.
미국의 역사는 완전한 자본주의의 역사.
미국에서의 관점은 제 1이 돈이다. 자본운동에 초점을 맞추어 미국의 역사를 이해해야 실수를 줄일 수 있다.

독립전쟁의 첫 총성이 울린 렉싱톤과, 최초의 접전지였던 콩코드.
그리고 콩코드 박물관, 에머슨, 호손, 소로 그리고 엘코트가 살았던 집.
호손의 주홍글씨는 결과적으로 청교도주의에 봉사하였다?
멜빌Melville이 白鯨에서 보여주는 시각이 더 미국의 본질을 예리하게 꿰뚫고 있다.
고래사냥의 전초기지 낸트키트 섬, 포경산업이 미국의 산업혁명을 이끌었다.

모비 딕 Moby Dick이라는 흰고래를 향한 에이햅 선장의 이유없는 집착과 증오를 퓨리터니즘과 연결시키는 비판적 시각도 있다.
모비딕은 무엇을 상징하는 것인가? 에이햅 선장과 결국 공멸하는데..........
신대륙 그 자체이기도 하고 아메리카 원주민의 건강한 가능성이기도 하다.
스타인벡의 ‘분노의 포도’에 나오는 개척농민을 예상한 것일 수도 있다.
아메리카 대륙일 수도 있다.

문제는 미국은 역사적으로 계속 모비딕과 같은 악마를 가지고 있다.
항상 마녀가 있고 마녀사냥이 있다.
최근에는 문명충돌이라는 도식으로 21세기를 본다.
이슬람이 모비딕이 될 수도 있다.

월가가 있는 뉴욕이 미국에 더 가깝다.
돈이 아니라 월가가 가리키는 손가락! 에이햅 선장의 손가락이다.
어느 것이든 언제든지 모비딕이 될 수 있다.

미국적이란 과연 무엇인가?
다양성, 멀티컬쳐럴? 내부에서조차 멀티컬쳐럴하지 않다는 것이 자기모순에 빠져 있다.
외부적으로도 마찬가지다. 아마도 유럽으로 회귀하자는 주장도 나온다. 그런 의미에서 미국은 없다.

민주주의?
유럽의 계몽사상이 그곳에서는 꽃피우지 못하고 신대륙인 미국에서 개화했다?
역설적이게도 노예제와 플랜테이손이라는 대농장은 봉건제의 부활 아닌가?

마가릿 미첼의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Gone with the Wind의 주어가 무엇일까?
문명Civilization 이다. 유럽의 봉건문명이다.

애틀랜타에는 마가릿 미첼의 생가와 마르틴 루터 킹 목사의 기념관이 있다.
노예 옹호론과 노예 해방론은 같은 토대에서 나오는 것.
미국은 그런 점에서 북부나 남부나 별로 다를 것이 없다.
뉴 잉글랜드일 뿐, 미국의 아킬레스 건이자 고질적인 콤플렉스.
오히려 더 철저한 봉건적 구조를 내장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인종의 용광로 Melting Pot는 오히려 라틴 아메리카이지 미국은 단지 모자이크, 아니면 셀러드 볼 Salad Bowl 아닐까.

교훈은 미국의 역사에서 이끌어내야 한다.
역사란 과거와 부단히 싸우고 교감하면서 지속적으로 발전하여야 한다는 것.
미국의 역사는 무인지경에다 관념적인 것을 거침없이 심어나가는 무모함의 극치 그리고 위험성.
힘이 수반하는 위험성과 역설의 안전성,
패권주의적 역사,
미국의 역사는 한마디로 역설적인 교훈이다.

미국의 얼굴을 어떻게 찾을 것인가?
17세기의 과거나 20세기의 현재라는 시점에서 찾기는 쉽지 않다.
산속에서 산을 바라보는 것과 같다.
21세기로부터 미국을 바라보는 귀납적 논리는 어떤가?
귀납적 시각도 어렵기는 마찬가지다.
전성기는 전성기 이후의 어떤 미래시점에서 현재를 반성하는 시각을 갖기 어렵게 한다.
물론 과거시점에서 교훈을 끌어내기도 어렵기는 마찬가지. 그것도 현재를 미화하기 위하여 동원되는 과거이기 쉽기 때문.
과거와 미래라는 시간적 兩岸 이외에 공간적으로 멀리 떨어져 있는 양안이 필요하다.
동양적 시각과 서양적 시각을 동시에 동원하는 방법, 원래 그것을 視角이라 하며, 光角과 구별된다.

출처 : 68 기러기
글쓴이 : 박동희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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