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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팔불출 6---`허어 그놈 참......`(끝)

햄릿.데미안.조르바 2018. 11. 14. 22:42
2004.9.28.화.니이카타발 비행기안에서

김밥, 센드위치, 요구르트, 오렌지쥬스, 치즈, 크레카 그리고 캔맥주.
아들과 함께 나란히 앉아 기내에서 아침상을 받으니,
언뜻 추석 차례를 드렸으면 하는 생각이 들어왔다.

마누라님께서 한 말씀 하신다,
‘날라리 셋째, 엉터리 아들의 추석 차례상으로는 그럴 듯 하네요.’

하늘에 계신 아버님도 힘들게 땅까지 내려가실 필요 없이 이 엉터리 땡땡이 셋째 아들의 차례상, 하늘 위에서 올리는 차례상을 한번 받아보시는 것도 좋으실 것이었다.
‘허어, 고 놈 참, 엉뚱하기는 여전하구나, 어허 참’ 하실 것 같기도 하였다.

어젯밤 9시 뉴스를 방송한다고 기내에서 알려왔다.
아들녀석이 어느새 이어폰을 꺼내어 내 귀와 엄마 귀에 하나씩 갈라서 끼워준다.
각 자 한 쪽 귀는 살아있어서 다른 사람들의 말도 들을 수 있고 다른 쪽으로는 뉴스를 들을 수 있으니, 하나씩 귀에 대고 음악을 들으면서 하는, 그들의 데이트 방식이었다.

그리고 생각지 않은 ‘한겨레 21’ 잡지를 건네주지 않는가.
'어, 너 어떻게 가져왔어?'
기내에 들어오면서 눈에 띄어 보고 싶었지만 비즈니스석 비치용이라 지나쳐왔던 것.
‘아빠가 좋아하실 거 같아서, 여승무원에게 좀 보겠다고 했더니 그러라고 했어요’

애비가 뭘 좋아하는지 이미 알고 있었단 말인가.
나는 속으로 ‘어쭈’ 하였다.
팔불출 애비에 아들은 팔불출이 아닐지도 모른다고 생각이 되었다.

녀석이 이제는 캔맥주를 따서 한모금 하라고 건네준다.
에미한테도 권하고 나서 저도 한 모금 꼴딱꼴딱 마시고 있었다.
신깐선에서는 하나로 셋이서 번갈아 하였는데 기내에서는 각자가 각각 마셔서인지 그 ‘행복의 맛’하고는 멀었지만 그래도 평소와는 맛이 크게 달랐다.

나는 주류 속에 낀 비주류.
처가 쪽을 많이 닮은 녀석은 술이 술술술 넘어가는 왕주류.
나와 둘째는 술이 술술술 넘어가지 않는 안주류.
그래도 오늘 추석날 아침, 비행기안에서 아들이 따서 넘겨준 캔맥주는 술술술 잘 넘어갔다.
마음속은 벌써 한가위의 보름달이 되어 훤하게 밝아졌다.
어둠을 살라내는 ‘만월’에 대한 축제가 한가위, 내 마음속 어둠이 한가위가 되어 밝아졌다.

우리부부는 큰아들이 끼워준 이어폰으로 추석전야 ‘송편’뉴스를 듣고,
캔맥주를 마시면서 추석 아침상을 하늘에서 받게 되었다.
동시에 추석 차례상도 겸하기로 하였으니, 살다보니 이런 호사도 누리는구나 싶었다.
추석날 고향에 가지 않고 하늘 위에서 차례를 엉뚱하게 치르는 것을, ‘허어, 이놈 참’ 하며 받으실 것 같았다.

내친김에 위스키 한잔을 더 시켰다.
영롱하게 빛을 내는 위스키가 오늘 따라 더 멋있고 더 맛있어 보였다.
어쩐 일인지 오늘 그 유혹에 그냥 허망하게 넘어가고 싶어졌다.
‘언더록으로 해주세요’ 하였더니, 아들녀석이 ‘그게 뭐 예요? 저도요’ 하였다.
땅 위에서는 잘 못하던 술이 오늘 하늘에서는 잘하는 술이 되었으니,
하늘이 좋긴 좋은가, 나는 붕붕 떠서 날아다니는 하늘 체질인가.
나는 벌써 공중에 붕붕 떠다니고 있었다.

‘코히, 코히’하며 여승무원들이 왔다 갔다 하였다.
우리집‘그냥’이 물어왔다.
‘코히, 코히’하는데 뭐예요?
‘으응, 커피. 일본사람들은 ‘커피’란 발음을 못해’
‘아이고, 커피를 못 알아먹다니............’
‘헬로우, 엑스큐스미, 코히, 플리스’
우리집 ‘그냥’은 호기있게 커피 한잔을 시켰다.
‘나도요’
‘저도요’

우리 세 식구는 모처럼 특별한 커피 파티를 하고 있었다.
하늘 위에서, 나란히 앉아서, 추석 차례를 다 치르고 나서 하는 ‘코히’파티, 특별하지 않은가.

인천공항 도착을 알리는 기내방송이 들리자 나는 보고있던 ‘한겨레 21’를 가방에 넣으려 하였다.
‘아빠, 그러시면 안돼요.’
‘안되긴, 그냥 가져가도 괜찮아. 다 읽지 못한 기사가 있어서............’
‘안됩니더, 아빠’ '기내용'이라고 씌어있잖아요?'

원칙을 지켜야 한다는 녀석의 항변에 흐뭇해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걱정이 더 많아졌다.
앞으로 그가 만나야할 수많은 반칙과 변칙의 사회를 어떻게 극복해 이겨나갈지,
결코 만만하고 간단한 일이 아니지 않은가.

나는 할 수 없이 이 ‘팔불출’ 아들놈 때문에 다음 기사를 집에 와서 읽지 못하게 되었다.
명닥의 ‘지오’녀석이 생각나서 읽어보려고 했는데 무참히 방해받고 말았다.

‘’영재들, 노벨상 동산에 서다‘’
---초일류 과학자를 위해 뛰는 부산의 과학영재학교,
창의적 교육, 진로, 교수진 문제 해결할까?

또 다른 특집기사, ‘소년의 눈물’/서경식
‘인간은 희망이 있어서 걸어가는 것이 아니라, 걷는 가운데 희망을 찾게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걷는다.’
‘희망은 있는 거라고도, 없는 거라고도 할 수 없다.’ 루쉰.
‘걷지 않으면 희망이 없다’

‘나의 서양미술 순례’/서경식
미켈란젤로의 ‘반항하는 노예’/ 루브르 박물관

반난민, 조국 고국 모국, 모어 모국어.
5천년 역사, 침략, 식민지 시대, 전쟁, 분단, 군사독재, 이념갈등/노벨 문학상--번역의 문제?

국가보안법,
진보와 보수, 지역과 지역, 조선인과 재일 조선인, 국내와 국외, 남과 북/장벽

('한겨레 21' 528호, http://h21.hani.co.kr 로 들어가시면 특집기사 '부산 과학영재학교'와 '소년의 눈물'을 만날 수 있습니다.)
출처 : 68 기러기
글쓴이 : 박동희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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