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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졸다가 깨다가 자다가 하다가---북한산에서(2)

햄릿.데미안.조르바 2018. 11. 10. 23:05
2003.11.16.일.북한산을 다녀와서(2)

구파발 전철역에서 남부터미널역까지, 졸다가 깨다가 자다가 하다가 내려야할 교대역을 지나쳐서 남부터미널역에서 내렸다.

애들 둘이 삐약거릴때, 인천 주안에서 서울로 출퇴근할 때가 있었는데, 남들은 우산을 전철에 놓고 내렸다, 졸다가 내려야할 역을 지나쳐 종점까지 갔다고들 하는데, 난 그런 일들이 일어날 수 있는 것인가 이해가 잘 되지 않았었다.
내가 남들하고 달라서 내가 이상한 것인가 남들이 이상한 것인가 했었다.

그런데 그런 일들이 요즈음 내게 심심찮게 일어나고 있다.
핸드폰을 차에다 놓고서는 집에서 가지고 오지 않았다고 생각하거나, 사무실 열쇠를 다른 주머니에 넣어두고 사무실에 와서야 안다거나, 분명히 노트북을 가지고 갈려고 챙겼는데 집에 와서야 사무실에 놓고 왔음을 알거나, 하는 일들이 자주 일어난다.

전철에서 졸다가 내려야할 역을 지나친다는 것은 내게 새로운 사건임에 틀림없다.
오히려 나의 정신건강에 더 유익할 것이다는 자체진단을 하면서도 이제 나도 어쩔 수 없이 나이든 사람들의 과정을 밟고 있구나 하는 서글픔도 함께 갖지 않을 수 없다.

오늘은 진도가 한 단계 더 나갔다. 교통카드를 아무리 출구 검색기에 대어도 이놈의 기계가 날 통과시켜주지 않는 거였다. 몇 번을 다시 해도 ‘노’‘노’하는 것이었다. 역무원에게 카드를 주고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확인시켰더니, 몇 번 검색을 하더니 무표정하게 다시 해보라는 것이었다. 또 해보았더니 이제는 기계가 돈은 읽었는데 문은 열어주지 않는 것이었다.
다시 확인하니, 이런 일이라니. 글쎄 입구쪽 기계에 카드를 들이대었으니 이놈의 기계가 ‘노,노’할 수 밖에. 여태 나가는 쪽이 아닌 들어오는 쪽의 기계에 들이대었다니, 정신을 어디에 두었단 말인가.

그래도 교통카드는 돈 계산은 제대로 하였겠지요? 여러번 들이대었다고 여러번 돈을 내라고 하면 아니되는 것이지요? 글쎄, 교통카드 누적계산이 어떻게 되었는지 관심 없지만, 나의 새로운 면모에 씁쓸해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정신건강’에 좋은 거야 하며 애써 자위를 하였다.

파고다 공원에 가면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많이 나와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보통 며느리나 아들에게서 그날그날의 용돈을 타서 하루를 보낸다.
한 할머니가 손주에게 예쁜 장난감을 사주고 싶은데 마땅한 돈이 없다. 한 할아버지는 돈에 여유가 있어서 연애를 하고 싶은데 상대가 마땅치 않다. 우연인지 필연인지 둘이 의사가 통해서 돈을 주고 받으며 몸을 통하기로 하였다.
문제는 할아버지 몸이 옛날의 그것이 아니어서 할머니 몸을 통하지 못하고 아무리 다시 해봐도 결과는 통하지 못하였다.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서로 대금결제 조건에 대하여 싸우기 시작하였고 급기야는 파출소에까지 가게 되었다.
할아버지 왈,통하지 않았으니 돈을 줄 수가 없다. 할머니 왈, 통하지 못한 것은 그쪽 사정이고 난 해줄 일은 다 했으니 돈을 계산해야 한다.
누구 말이 맞는 건가요? 우리의 현명한 파출소장은 반반씩 타협시켜 이 어려운 문제를 해결해주었다고 합니다.

나의 교통카드는 어떻게 계산될까요? 대기는 하였지만 통하지는 안했으니 논리적으로는 계산이 되면 안되는 거지요. 사람의 몸과 기계의 몸은 다르니까요.
나는 가끔 엉뚱한 생각을 하곤 하는데 내가 정말 엉뚱한 건가요?

전철역에서 내려 집까지 걸어가는 10여 분은 또다른 즐거움과 자유로움이었다. 발 끝에 걸쳐지는 포도위의 잎넓은 낙엽들, 떨어져 특이한 냄새를 풍기는 은행들, 오후 4시경의 약한 햇살과 함께 멀어져가는 가을을 보내고 있었다.
유난히 이번 가을은 어디 단풍이 좋다, 어디 가을산이 끝내준다 하며 소리내면서 시작되었는데, 내 마음 속에서 또 큰 소리내면서 멀어져 간다. 내가 소리나는 나이 오십이 넘었으니, 5학년 3반이어서 그 교실이 시끄러워서일 것이다.





출처 : 68 기러기
글쓴이 : 박동희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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