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유산행기

덕유평전에서...'덕유산을 내 품안에!'(5)

햄릿.데미안.조르바 2008. 10. 6. 20:33
---덕유평전에서

향적봉대피소에서는
향적봉거쳐 설천봉에서 곤돌라를 타고 무주리조트가는 길
중봉에서 삿갓봉을 거쳐 남덕유산 종주하는 길
오던길로 다시 백련사로 내려가는 길
그리고
중봉을 거쳐 오수자굴쪽으로 내려가는 길이 있는데...
우리는 올라오던 길로 다시 내려가는 것보다는 시간이 더 걸려도 조금 완만하다는 오수자굴 쪽으로 우회하는 길로 방향을 잡았다.

물을 보고도 물을 마시지못한 우리마님의 발걸음은 일단 힘이 없었다.
터벅타박 투벅토박!
학교가기 싫은 발걸음과 닮아있었다.
백련사에서 그냥 바로 돌아갈 걸 후회하고 있을까?

향적봉대피소에서 중봉까지는 1.3키로
중봉에서 오수자굴까지 1.4키로
다시 백련사까지 2.8키로

이제는
오르막길이 아니고 내리막길이어서
주변경관 구경하기는 더 좋았다.
녹축자 불견산!
사슴을 쫓지 않을 것이니 산속 여기저기 좋은 것 어디 없나 좀 들여다보자꾸나.

온사방으로 펼쳐지는 산이 바로 발아래 놓인듯
눈아래 떠있는듯
저산들이 바로 우리네 앞마당 우리네 앞뜰인 듯
살아서 천년 죽어서 천년 산다는 주목군락이 저 옆산에 서있고
철지난 철쭉군락이 바로 발아래에 뭉쳐있었다.
우리마님왈; 내년 봄 5월 철쭉필 때 또한번 와야겠다!
나;(흐미@@@)

눈을 들어 내려다보는 저산 곳곳에
나무들이 몽글몽글 뭉쳐서
덩이덩이 모여있는 모양이
마치 여인네들의 퍼머머리
자연산 푸른색 퍼머머리가 천연의 아름다움을 내앞에서 한껏 뽐내고 있었다.

우리마님왈;(갑자기) ‘아이조아! 아이 너무 조타!!!’
무엇에 그리 좋은지 탄성이 연발로 절로 터져나오고 있었다.
배고픔도
고달픔도
지루함도
이제는 환희로 탈바꿈.
이렇게 돌변하는 우리들 인간 마음의 변덕이라면
천번만번이라도 좋았다.
‘일망무제’라 할까?
망망대해는 아니고 망망산산!!!

바람많고
비많고
그러나 온도가 낮고 일조량이 많지 않아
키큰나무는 자라지못하고 대신에 키작은 나무들 꽃들의 천지
일컬어 지상낙원
철쭉 진달래 조릿대 원추리 산오이풀들이
바람과 추위견디며 자연과 싸우며 도우며 함께 살면서 자라는 곳.
우리는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아고산대’에 와있었다.

확트인 전망이 정말로 ‘일망무제’라 하여도 좋았다.
써늘한 기후가 알맞아 자리를 잡고 자라나는 갖가지 야생초의 천국
백두산의 정상에도
지리산의 노고단 세석평전에도
소백산의 비로봉에도
설악산의 중청대청주변에도
해발 1500에서 2500고지수준에서야
지상의 낙원이 펼쳐질 수 있다고 하는데..
덕유산의 아고산대도 그중 하나.
그곳을 사람들은 ‘덕유평전’이라 하였다.

덧붙여
원추리 군락과
주목군락까지 덤으로 보게 되었으니
기쁨은 넘치고 넘쳐 우리는 더없는 호사를 누리게 되었다.

어제도 곤도라를 타고 향적봉까지 올랐지만 그때는 아무것도 없었다.
아니,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날씨가 흐리고 구름이 잔뜩 끼여 시야가 트이지못해 아무것도 보일 리가 없었던 것.
귀하고 소중한 것이 어디 어느 지나는 길에 그냥 아무렇게나 쉽게 보여지는 것이 아니었다.

오늘은
맑고 밝은 햇살이 가득하고
바람은 알맞게 산들산들 불어대고
구름들은 하늘따라 떠돌다가 잠시 가끔 산위에 자리를 깔아 흔적을 남겼다.
하늘을 자유롭게 떠다니다 문득 맑고 밝은 햇살을 만나니
잠시 쉬었다 가는 것일까
어제는 운해덩어리 조각이거나 구름부스러기만 흩어져 돌아다닐 뿐이고
온통 흐리기만 하였는데
오늘과 어제가 이렇게 다를 수가 있다니....
자연의 영역과 인간의 영역은 분명 이렇게 다르고 구분되는 것인가 싶었다.

하늘은 아직도 높아 하이얀 구름덩어리가 여기저기 둥둥 뭉쳐서 떠다니는가 싶더니
저멀리 저높이 있던 구름이 저앞 산위에 그림자를 드리우고 사뿐히 내려앉았다.
또 저멀리 넉넉한 평야가 누릿누릿하게 눈앞으로 선명하게 들어오는가 싶었다.
이윽고 또 내 품 속까지 펼쳐져 들어왔다.
누가 보거나 말거나 나는 덕유산을 그냥 끌어안고 말았으니
이제 내마음은 한결 더 덕성스러워지고 더 여유만만해진 것일까?
덕유평전에서 내려다보는 추석 가까운 들판은 보는 것만으로도 풍요였으며 축복이었으니
덕유산이 내가 되고 내가 덕유산이 되었다고 나는 크게 뻥을 치고 말았다.
그동안 우리의 삶에 대한 갸륵한 열정 때문이었을지
그에 대한 보이지 않는 손의 보답이었을지
우리는 정말 좋은 곳이란 어떤 곳인지
우리는 무엇을 정말 좋다고 말할 수 있는지
비로소 오늘 조금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만일 우리가 백련사에서 그냥 내려갔더라면 어찌되었을까
시간이 충분하지 않다고
물도 없고 배도 고프니 올라간들 무슨 재미가 있을 것이냐?하며
그냥 생각 짧게 고무신을 거꾸로 신었다면
이 환희를 만날 수, 맛볼 수 있었을까
아무래도 우리에게는 보이지 않는 손이 언제나 함께하는 셈이었다.
우리마님왈; 겨울에 또 와야겠다!!!
나;(....????>>>>>@@@......흐흐흣)

역사에는 가정법이 없다고 하였지만
까짓껏
나는 또 한번 지나가버린 헛꿈을 꾸어보기로 하였다.
만일 이성계가 위화도회군을 하지 않고 그대로 명나라를 치고들어갔다면?
한번 해볼만한 싸움 아니었을까?
그 도전에서 또 다른 세계가 열릴수도 있지 않았을까?
그 누가 알리오?
어쩜 오늘 나처럼
망외의 소득을 얻지 않았을지?
‘역사의 발전은 도전과 응전!에서’
도전하는 자에게는 반드시 발전이 있다고 한 아놀드 토인비는 이곳 '덕유평전'에서도 맞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