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농장의 자유글(모두모음)

11월의 첫 토요일(1)--특급호텔 '북한산'에서

햄릿.데미안.조르바 2004. 11. 7. 21:38
11월의 첫 토요일,
나도 드디어 주 5일제 근무 시작,
이번 주부터 나의 토요일 놀이터는 사무실에서 산으로,
그 기념으로 북한산을 찾았다.

자연돌이 많은 구기동 오르막길, 대남문에서 동장대로 가는 가냘픈 산비탈 길,
그리고 용암문에서 도선사로 내려가는 낙엽 수북한 돌길,
모두가 꿈길이었다.

비가 온 뒤여서인지, 늦가을의 북한산은 더욱 청명하고 더 삽상하였다.
어젯밤 내린 비로 온갖 오염을 씻어냈던지 더없이 맑고 밝게 아름답게 자랑하고 있었다.
불그스름하면서 누르스름하고 또 파르스름하다가도 어느새 짙거나 엷은 갈색의 나뭇잎들,
총천연색 물감이 풀어진 듯 울긋불긋 뽐내면서도 알록달록 수줍음을 타고 있었다.

누가 그림을 그려도 저리 천연스럽게 물감을 풀어놓을 수 있을까.
천의무봉이라 하더니 이를 두고 하는 말이런가,
붉고 발갛고 노랗고 누렇고 푸르고 파랗기까지,
조금 짙은 것 같으면 엷은 것이 또 있고, 어두어지는가 싶으면 다시 밝아지는 빛깔들,
여러 비슷하면서 또 다른 색깔들이 하나도 흠잡을 데 없으니 어우러져 있으니,
한 번 그냥 속세의 일 같지 않다고 해보는 것이다.

요염하다고 하기는 좀 그렇고, 화려하다고만 하기는 표현이 너무 단조롭다.
가을비로 씻어낸 북한산의 단풍은 인간속세의 것이 아닌 꿈속의 것인 양 느껴졌다.

'아, 좋다'
'아, 좋다'
우리집의 어휘 수준은 단순하고 간단하였다.
좋으니 좋다고 할 수밖에, 무슨 다른 말이 더 필요하겠는가.
내가 비싼 것을 사주지 않아도, 그냥 자연 있는 그대로를 가지고도 좋아해 주니
나는 정말 남는 장사하고 있구나 싶었다.
사는 것이 뭐 대단한 것이냐
굳이 비싸게 돈을 들여야만 좋은 것이더냐 싶었다.

우리는 꿈길 도중에, 동장대 밑 어느 곳에 깔판을 깔고,
별이 못되어도 다섯 개 짜리는 되고도 남는, 특급호텔 '북한산'을 만들었다.
그 호텔의 점심식사는 상추와 쌈장에 김치만 있어도 진수성찬, 산중진미였다.

점심을 하고 마시는 나의 '막커피'
가을산의 단풍 색깔이 커피냄새와 함께 어우러져 물들었으리라,
고소하고 꼬소하였다.
끝내주었다.

해가 뉘엿뉘엿하는 도선사,
마침내 그 아스팔트길,
오늘도 우리의 발걸음을 무겁게 짓누르고 있었다.

그래도 도선사 입구의 석물은 '아스팔트'공해를 아는지 모르는지,
'慈悲無敵'
'萬物同根'

'百年貪物 一朝塵'
'三日修心 千載寶'라 알리고 있었다.

알 것도 같고 모를 것도 같은데, 손에 잡힐 듯 말 듯 한데, 나의 한문실력이 좀 길었으면, 나의 불심이 좀 있었으면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