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즈음 해가 많이 짧아졌다.
전철에서 내려 집까지 걸어가는 길은 벌써 어둠이 깔리고
이제 본격적으로 겨울 냄새가 나기 시작한다.
나는 이 어둠과 살짝 차가운 이 날씨가 좋고, 또 이런 분위기의 우리집가는 골목길이 좋다.
전철역에서 10여 분 걸어가는 거리와 시간이 이 초겨울에 딱 좋다.
더 추워지면 춥다 하면서 내가 어리광을 부리지 않아야 할 터인데, 설마 머리가 하얗게 된 사람이 꾀를 부리고 엄살을 떨 것인가.
‘어떻게 해요?’
순전히 단순 수공업식 붕어빵 1인 생산공장 앞에서 내가 물어본다.
‘3 마리에 천 원입니다.’
전혀 장사꾼 같지 않은 총각사장님께서 덤덤하게 대답한다.
천 원 한 장을 주니 붕어빵 4 개를 준다.
하나를 더 넣어 주면서 ‘매 번 헛탕을 치셨잖아요’ 한다.
퇴근길에 맞춰 어둑어둑해질 무렵에 이 붕어빵 공장을 지나가노라면
은근한 냄새가 날 옛날로 끌어올리고, 또 덩달아 군침까지 돌고, 또 집에 있는 집사람도 생각나고, 해서 ‘붕어빵 있어요?’ 하면,
‘어쩌나요, 오늘도 다 떨어졌는데요......’ 했었던 것이다.
어제는 드디어 붕어빵 4 개를 낚아 털래털래 신나게 우리집으로 달려갔다.
지아비가 집에 들어가면서 뭣인가 손에 들고 들어가는 날이면 이렇게 신이 나는 것일까.
그동안 가끔 우리집사람이 툴툴 거렸던 사실을 난 기억해 낸다.
‘사람이 그렇게 멋없어 가지고서는 어따가 쓴다요?’
‘아무리 남자라고 퇴근할 때 뭣 좀 사가지고 오면 덧나나 뭐?’
나는 이제껏 퇴근하면서 무엇 하나 사들고 들어간 기억이 없다.
차를 타고 출퇴근을 하니 어디 구멍가게에 들릴 짬이 나지 않은 탓을 해대면서 벼텨냈지만,
실은 그 동안 뭔가에 쫓기고 괜스레 바쁜 생활에 풋풋한 꺼리들을 잃고 또 잊고 살아왔다는 것 아닐까?
한낱 기계에 불과한 자동차의 편리함과 속도에 인간인 나를 너무 홀대하지 않았는가?
그리하야 나는 영원한 마이너스 만점 짜리 남편네.
아직은 돈 벌어주는 기계이니 아직까지는 밥 주고 잠 재워 준다는 수준.
어제는 붕어빵 4 개로 10 점은 족히 딴 것 같다.
전혀 하지 않던 짓을 했으니 후하게 주어, 나라면, 한 1000점을 주고 싶은데 우리집은 어떨까?
그러나 우리집 그 사람은 오히려 ‘어, 왠 일이예요?’ 하며 이상한 눈으로 나의 위 아래를 훑어 본다.
갑자기 하던 짓을 안하고 아니 하던 짓을 하면 걱정된다는 속설이 생각나는 모양이었다.
‘내가 이래봬도 이제는 늦게나마, 조금은 정신 좀 차리고, 그래도 좀 변해 가지고서는, 뭐 인간답게 살아보려고 한단 말이여, 시방’
속으로 뇌까리는 나의 말이 들리지는 않을 것이었다.
다음 어느 어둑어둑한 날에는 먹음직스러운 순대를, 모듬 순대를 사서는 우리집까지 신나게 한번 뛰어가 보려고 한다.
‘저 놈 왜 저러지? 미쳤나 봐’, 그럴까? 또 그러면 어때?
그 날은 몹시 추운 날이었으면 더 좋겠다.
추우면 얼마나 춥고, 얼마나 춥지 않은지 한 번 따져 보게.
손수 운전을 하고 다녔다면 결코 만나지 못했을 붕어빵, 그리고 못 만날 순대가 있으니 좋지 않은가.
그리고 마이너스 만점짜리를 최소한 빵점까지는 언젠가 만회할 수 있을 것이니 또 얼마나 좋은가.
차 없이 살아가는 불편함보다는, 오히려 좋은 것들이 더 많이 생겨서 나는 더 좋기만 하다.
'차없이 살아보니' 카테고리의 다른 글
=차 없는 사람 상팔자.= (2) | 2023.10.05 |
---|---|
'차 없는 사람, 상팔자' (0) | 2004.12.27 |
차 없이 살아보니(4)---'사는 대로 생각할까, 생각하는 대로 살까' (0) | 2004.11.23 |
차 없이 살아보니(3)---회춘하는 방법을 알려드립니다. (0) | 2004.11.18 |
차 없이 살아보니(2)---'차를 팔아버리셔요,네?' (0) | 2004.11.1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