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눈오는 날 백운대를 다녀오면서/836.5미터의 자유와 행복;
2002.1.20.일.
'야, 짱이다. 끝내준다. 이건 축복이야. 하늘이 우리들에게만 주는 축복!'
옆의 젊은 친구들의 조금 흥분된 감정표현이 전혀 틀리지 않을 정도로 하늘의 축복이라면 이런건가 싶다.
백운대 836.5m. 넓지않은 정상바위는 사위가 떡가루닮은 하얀 눈발로 뒤덥혀간다.그 한가운데 연못이 있다.2002.01.20.13;38. 뿌듯함. '자유'와 '행복'은 이렇게 잠깐 만나지는건가 싶다. 힘들었던 암벽 철책 등산로는 매우 가파르고 눈은 미끄러움을 더하고 있었다. 그만 두자. 다음에 올라가면 어때. 멈칫거리고 망설였다가, 어디 눈발과 함께하는 경우가 흔하겠어 하며 고집하였더니 이렇게 뿌듯할 줄이야. 자유와 행복은 이런 맛임에 틀림없다.
여느 일요일 보다 이른 9시경, 게으름을 떨치고 간단한 아침. 모처럼 겨울 북한산을 만나는게 어떨까. 하루종일 뒤척이며 남는 시간들을 주체못해 씩씩대는 것보다 천만배 더좋은 탁월한 선택. 집 가까운 버스 정류장. 우이동행. 10시경. 오랜만의 버스안 풍경이 낯서나 곧 옛날 학창시절 편안함이 다가선다. 오후들어 비가 올 수 있다는 일기 뉴스를 들으며 조금 걱정이 되었다.
한남대교 장충공원 동대문운동장 고대앞. 지난 과거가 주마등 속에서 숨가쁘게 지나간다. 70년 한남대교 저편은 목장. 발동기를 돌려 전기를 만들었었는데. 어느집에서 연못은 입주 가정교사를 하였고,남산은 가난한 학생의 데이트길 쉼터. 고대앞은 옛날의 포근함은 없고 딱딱한 철문이 무섭다. 가난했던 연못하고는 인연이 없던 곳. 차창밖으로 빗발이 뚝뚝. 우산을 받쳐든 사람들이 늘어간다. 아이쿠야 어쩌지? 버스 종점 도선사 입구.11시경.
빗발은 더 거세지고 망설임 또한 거세다. 돌아갈까 포기하고? 그럼 남는 이 '자유시간'은? 1500원짜리 비닐비옷을 걸치니 제법 우중겨울산행도 별미일거같아 무거운 걸음을 가볍게 채근하였다.
버스종점은 도선사 입구이나 실제 도선사 입구는 아스팔트길을 1시간여 짜증내고서야 나타났다. 누구야 이렇게 몰자연스럽게 아스팔트길을 친게? 그냥 콱 찢었으면 두다리를. 괜한 화풀이를 속으로만 혼자만 하고 버렸다. 천지동근 만물일체, 자비무적 방생도량. 이렇게 쓰여 있고, 三日修心千載寶 百年貪物一朝塵 '삼일수심 천재보,만년탐물 일조진'이라고 또 쓰여 있었다.
12시경. 백운대 등산로 초입. 3.8Km. 왔다갔다 왕복 3시간여. 안내원은 무심하게 내뱉는다. 다시 갈드잉 생긴다. 점심은 언제 어디서? 먹고 살자고 하는 일인디. 이놈의 비는? 오늘따라 비도 연못에게는 별로다. 망설임 머뭇거림 속에서 갈등 갈등하다가 그래 이런 경우의 수가 또 언제 있을소냐. 우중겨울산행의 맛이 어떤가. 트라이. 나씽 어드벤처드 나씽 게인드(Nothing adventured, nothing gained)
자연돌로 만들었을 숲속 산길이 매우 반걉고 나무들은 크지않으나 죽죽 시원하게 서서 연못의 결심을 박수치는 듯하다. 왠지 아스팔트에 숨막힌 마음구멍이 쑤우욱 타아악 트인 것이다. 이런 자연인데....
어, 눈앞에 왠 눈! 싸래기 눈이 눈앞에 나래짓을 시작한다. 하나 둘 셋, 점점 많아진다. 이제 셀 수 없다. 아. 혼자인 것이 이럴땐 좋은가 아니 좋은가. 아깝다.
맨처음 대피소에서는 사람들이 웅성웅성 각각 예상치못한 손님,눈을 이야기하는 모양이다. 연못은 아이젠을 주문하고 컵라면으로 손님을 맞이하였다. 아무래도 눈과 함께해야하는 산길이니 또,얼마나 걸릴지 모르니.
갑자기 변해버린 숲속 환경에 새롭게 '전의'를 다지며 즐거워하는 연못이 시샘난다.
발자국이 하나둘 늘어갈수록 숲속 풍경은 더욱더 동화속 꿈길이 되고 누구도 한번 그리지 못하였을 자연의 한폭 그림이 되어간다. 눈발은 싸래기에서 떡가루닮은 눈으로 벌써 바뀌었다.'하늘에서 눈이 옵니다. 펑펑 눈이 옵니다. 하늘나라 천사님들이...."
한폭의 그림, 자유와 행복. 뚜벅뚜벅 연못은 그 속으로 들어가 자연과 대화하는 시간을 갖고 즐거뤄한다. 마음껏.
호사다마. 제2대피소를 지나 가까스로 위문에 다다르니 더이상 등산은 무리. 암벽의 철책을 따라 엉금기어올라야 하는데 결코 만만치않을걸. 노약자 여성분들은 다음 기회로. 여기저기 웅성떠들어댄다. 연못은 어느쪽인가. '노' 오아 '약'. 어느쪽도 아닌것같은데, 0.8Km만 남았는데. 또 갈등갈등. 망설이고 머뭇거리고. 자꾸 '볼 것 다 본거야. 해볼 것 다 해본거라구. 비겁하게 남아있는거 절대로 없어'하며 자위하려 했다.
앳띤 여대생들이 제주 감귤을 프리로 맛보게 하고 있다. 추위 무서움없이 프리하게 농민을 위하여 프리로 자원봉사하는거란다. 프리하게. 자연스러워서 보기에 느낌에 매우 아름다웠다.
아름다운 감귤을 프리로 프리하게 먹고나서, 새로운 기운이 생겼나. 한번 천천히 엉금엉금 끝까지 가보기로 하였다. 두려움을 추위속에 묻어버리고, 무서움을 눈발속에 날려보내고서.
한참을 갔는데도 아직 반밖에 오지않았다. 또 한참이 지났는데도 아직 많이 더 남았다고 한다. 내려오는 사람들은 웃으며 조금 더 가세요 한다. 그래, 어디 더 가보자. 여기까지 왔는데 뭘 망설일게 있어. 아이젠을 한 발등이 아프고 손바닥이 철줄을 못이겨 뻐얼겋다. 손등이 가락이 추위와 힘겹게 싸우고 있다. 바람은 더욱 거세지고 눈발은 더 굵어져 함박눈이 되었으나 강해진 바람에 쓸쓸히 사라진다.
씩씩대는 사이, 아, 여기다. 산끝과 하늘끝이 드디어 만났다. 넓지않은 바위덩어리. 고도 836.5미터. 백운대 정상. 십여명의 인간들이 하늘을 보고 눈을 본다. 서울을 보지만 눈으로 눈앞이 막혀 보이지 않는다. 누군가 '에이 서울시내가 보이지 않네'하니 또 누군가 '거 안보이는게 좋아. 보면 뻔하지이. 정돈되지않은 시멘트 숲속. 욽퉁불퉁. 보면 속상하지아마아. 이건 하늘이 우리에게 준 축복이야. 저 산밑은 아직 겨울비일텐데 이곳은 하느ㅡㄹ이 눈으로 바꾸어 선물한거야 알아?' 하였다.
연못은 지나온 짜증 분노 욕심 망설임 머뭇거림 두려움 무서움 어려움 등을 뒤보면서, 자유를 만날 수 있었고 거기에서 행복을 잡을 수 있었다고 한다. 하늘이 보낸 선물을 보면서. 하늘의 축복을 겸허히 받으면서.
연못은 하산을 비우는 것이라 하였다. 지나온 아름다움을 되새기면서 혹시나 지워져버리지않았나 소심하게 내려갔다.
천지동근 만물일체/자비무적 방생도량/삼일수심 천재보 만년탐물 일조진.
다시 맞이하는 아스팔트길 위를 걸으면서 짜증대신에 오늘 읽은 글귀들을 떠올려 혀끝에 굴려본다. 하산하는 길에. 삼라먄상이 한 뿌리로 네가 살아야 내가 산다 하였다.
15;40경,현실의 끝은 사랑. 하산의 끝은 허기짐. 보아둔 감자탕집에서 허술해진 비옷을 벗고 순대술국에 참이슬 몇방울, 백주홍인면. 쏘주 한잔에 얼굴은 또 붉어졌으나 마음은 아직 홍조를 띠지 않는다. 산 위에 자유를 놓고 왔으니?
그러면 항상 마음속 묻어둔 숙제하나 풀기. 길을 잃어버린 아이를 찾으러 삼거리로 가는거야. 그 삼거리는 길음이라는데 정말 맞는거야? 지명은 이름값을 한다고 하잖아?
다방커피같잖은 일회용커피는 겨울비를 비웃고 다섯마리 붕어빵은 천원이었다. 삼거리 길음을 찾는데요. 저기 저기입니다. 하지만 우리네 저기 저기 몇분 몇미터는 고무줄 계산 뻥튀김이기 십상. 도심속 빗줄기는 얌전치않은데 목적지는 쉽지않다.
마음넓어보이는 반할아버지는 반가이 설명하여 보내준다. 바로 가까이에 있네그랴.
편하게 앉아서 그림을 그리고 감상하라지만 어디 박사되고 싶지는 않으니 삼십분에 칠만하지요 했다.누군가 칠만하고 문전을 더럽히는 녀석이 제일 밉다는데, 칠만하지말고 멋드러진 그림을 그려봐여.
낯을 무척이나 가리는 녀석은 좀처럼 일어설줄을 몰라 연못의 애간장을 태우더라. 모자를 씌워달라는 녀석에게 모자를 씌우면 잘 보이지않는다고 하여 한참 실갱이하는 촌극도 있었는데,
어렵게 어렵게 십수년 묵은 숙제를 드디어 풀었다. 풀어야 보이지 않겠는가. 보이는만큼 느껴질터이고, 느껴지는만큼 얻어지는거니까.
길음역 충무롤역 교대역. 비오느날 해질녘 일요 지하철 풍경은 또 색다르다. 얼큰해진 중암닭들이 꼬꼬,꼬꼬하며 존재를 알리고 어째 젊은 언니들은 화냥 화장한것처럼 오해하게 보인다. 연못도 참이슬 몇방울에 맛이 붉어졌나아? 얼굴은 붉어있으나 마음은 아직 덜 홍조를 띠워 덜 자유롭다. 지나간 신문은 지하시간을 빨리 지나가게 한다. 지난 한 대통령의 딸이 금남의 집을 열었는데 어쩌구 저쩌구 하다가 '계영배'를 화제 삼았다 하여 화제. 네가 계영배를 아느뇨?
오늘의 시점이자 종점. 상서로운 풀밭 위를 걷는다. 구기야는 우동집. 그냥 건너지나가기가 허전하여 점을 살짝 찍었다.19;00. 저녁뉴스는 오늘 하루가 자유롭게 행복하게 마감되고 있음을 모두에게 알리고 있었다. 북악스카이웨이 주변에는 쌓인 눈때문에 차량통행을 제한하였다고 알린다. 이곳 상서로운 풀밭은 진눈깨비 비슷하게 겨울비가 내리고 있다. 다시 접어둔 허술한 비옷을 꺼내야겠다. 집까지 가려면. 겨울연못의 일요이야기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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