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에는 정확하게 12시 31분에 도착하였다.
서울에서 3시간이 조금 덜 걸린 셈이었다.
비행기보다도, 고속버스보다도, 편안하고 쾌적하였다.
내게는 물론 승용차로 오는 것보다 훨씬 더 좋았다.
여행일정이 미리 짜여지고 시간적 여유가 있는 경우는 KTX를 이용하는 것이 좋을 듯 싶었다.
보성의 아버님 산소에 들르고 다시 처가가 있는 영광으로 가야하니 서둘러야 했다.
광주에 계시는 어머님을 광주역으로 나오시라 하고,
점심을 광주역 근처에서 간단히 하고,
차를 렌트하여 어머님과 함께 보성으로 달렸다.
보성까지 내 운전실력으로 1시간 30분여.
성묘를 하고 생가를 둘러보고 나니 늦가을의 해는 벌써 넘어가려 하고 있었다.
어머님은 고향의 친척들 집에서 며칠 묵으신다하여 모셔다 드리고,
가까운 보성녹차밭을 들릴까 하다가 후일로 미루고 다시 서둘러 영광으로 향했다.
영광을 가는 이정표 도중에 나주,남평이 보였다.
'김제평'이 생각이 났다.
예정에 없던 일이었으나 제평이네 볼링장에 들러 저녁을 먹고 영광으로 가는 것으로 일정을 조정하였다.
물어 물어 찾아갔더니, 늦가을 토요일 6시경의 볼링장은 조용하였다.
아직 손님이 들기는 이른 시각, 저녁식사를 하고나서야 모여든다고 하였다.
그러나 볼링장의 분위기는 밝고 활기차 보였다.
지난 어느 여름에 왔을 때와는 냄새가 달랐다.
이제야 긴 겨울잠을 털고 기지개를 켜는 모양이었다.
한번 기지개를 켜고 일어서면 금방 어두운 밤이 언제였던가 싶게 날이 밝아오는 게 우리의 일상.
볼링장의 다가오는 내일도 그러할 것이었다.
나주에서 맛있는 것이 뭐 있을까
나주곰탕과 대구볼때기찜이라 하였다.
나주곰탕은 이제 그 옛맛이 나오지 않더라는 지난번 정선생 이야기도 있고,
날씨가 꾸물거리고 장거리 운전으로 속이 조금 메스꺼워 얼큰한 '볼때기찜'이 제격이었다.
정선생에게 연락하여 나오라 할까 하다가 그의 황금주말을 해칠까 싶어 참았다.
밖은 가을비가 추적추적 소리까지 내고 내리고 있었다.
제평부부와 함께 먹는 볼때기찜은 일품이었다.
몇 년전의 무안골프장에서 바람많고 추워서 덜덜 떨며 홍식수남부부와 같이 4쌍이 함께 막대기놀이하던 이야기, 무안에서 산낙지에 연포탕 먹던 이야기, 내년 언제 부부대항 골푸는 내기 한번 하자는 이야기, 하였더니 뽈때기찜이 벌써 바닥이 났다.
우리 세식구는 맛있게 먹었는데 제평부부는 볼때기찜에 볼때기는 없고 살만 있다고 주인장을 못마땅해 하였다.
서울촌놈에게 더 맛있는 부위를 더 많이 먹게 해주고 싶은 마음이었다.
늦가을 비가 제법 많이 내리는 것은, 우리를 보내는 제평의 마음을 대신 해주는지 모를일이었다.
제평은 '나주배즙' 한상자를 '꾸격꾸격' 차에 싣고 가라 하였다.
(서울 기러기들에게 하나씩 안겨야 하는데 내가 지금 혼자 먹어치워버릴까 고민중이다.)
나는 빗속에 나주에서 영광을 찾아가느라 고생 또 고생하였다.
길눈이 유난히 어두운데다가 비까지 내리지, 주위는 깜깜하지 운전실력은 바닥이지 정말 깜깜한 밤이었다.
나의 처갓집은 언제나 나에게는 쉽지 않은 길이었다.
그러나 우리집은 친정집, 형민에게는 정겨운 외가집 가는 길이었다.
1 시간여를 더 헤맨 끝에 '영광'이 있었다.
고생 끝에 영광이었다.
나는 드디어 밀리고 밀렸던 숙제 하나를 풀고났더니 보성도 영광도 이제야 편하게 다가왔다.
서울에서 3시간이 조금 덜 걸린 셈이었다.
비행기보다도, 고속버스보다도, 편안하고 쾌적하였다.
내게는 물론 승용차로 오는 것보다 훨씬 더 좋았다.
여행일정이 미리 짜여지고 시간적 여유가 있는 경우는 KTX를 이용하는 것이 좋을 듯 싶었다.
보성의 아버님 산소에 들르고 다시 처가가 있는 영광으로 가야하니 서둘러야 했다.
광주에 계시는 어머님을 광주역으로 나오시라 하고,
점심을 광주역 근처에서 간단히 하고,
차를 렌트하여 어머님과 함께 보성으로 달렸다.
보성까지 내 운전실력으로 1시간 30분여.
성묘를 하고 생가를 둘러보고 나니 늦가을의 해는 벌써 넘어가려 하고 있었다.
어머님은 고향의 친척들 집에서 며칠 묵으신다하여 모셔다 드리고,
가까운 보성녹차밭을 들릴까 하다가 후일로 미루고 다시 서둘러 영광으로 향했다.
영광을 가는 이정표 도중에 나주,남평이 보였다.
'김제평'이 생각이 났다.
예정에 없던 일이었으나 제평이네 볼링장에 들러 저녁을 먹고 영광으로 가는 것으로 일정을 조정하였다.
물어 물어 찾아갔더니, 늦가을 토요일 6시경의 볼링장은 조용하였다.
아직 손님이 들기는 이른 시각, 저녁식사를 하고나서야 모여든다고 하였다.
그러나 볼링장의 분위기는 밝고 활기차 보였다.
지난 어느 여름에 왔을 때와는 냄새가 달랐다.
이제야 긴 겨울잠을 털고 기지개를 켜는 모양이었다.
한번 기지개를 켜고 일어서면 금방 어두운 밤이 언제였던가 싶게 날이 밝아오는 게 우리의 일상.
볼링장의 다가오는 내일도 그러할 것이었다.
나주에서 맛있는 것이 뭐 있을까
나주곰탕과 대구볼때기찜이라 하였다.
나주곰탕은 이제 그 옛맛이 나오지 않더라는 지난번 정선생 이야기도 있고,
날씨가 꾸물거리고 장거리 운전으로 속이 조금 메스꺼워 얼큰한 '볼때기찜'이 제격이었다.
정선생에게 연락하여 나오라 할까 하다가 그의 황금주말을 해칠까 싶어 참았다.
밖은 가을비가 추적추적 소리까지 내고 내리고 있었다.
제평부부와 함께 먹는 볼때기찜은 일품이었다.
몇 년전의 무안골프장에서 바람많고 추워서 덜덜 떨며 홍식수남부부와 같이 4쌍이 함께 막대기놀이하던 이야기, 무안에서 산낙지에 연포탕 먹던 이야기, 내년 언제 부부대항 골푸는 내기 한번 하자는 이야기, 하였더니 뽈때기찜이 벌써 바닥이 났다.
우리 세식구는 맛있게 먹었는데 제평부부는 볼때기찜에 볼때기는 없고 살만 있다고 주인장을 못마땅해 하였다.
서울촌놈에게 더 맛있는 부위를 더 많이 먹게 해주고 싶은 마음이었다.
늦가을 비가 제법 많이 내리는 것은, 우리를 보내는 제평의 마음을 대신 해주는지 모를일이었다.
제평은 '나주배즙' 한상자를 '꾸격꾸격' 차에 싣고 가라 하였다.
(서울 기러기들에게 하나씩 안겨야 하는데 내가 지금 혼자 먹어치워버릴까 고민중이다.)
나는 빗속에 나주에서 영광을 찾아가느라 고생 또 고생하였다.
길눈이 유난히 어두운데다가 비까지 내리지, 주위는 깜깜하지 운전실력은 바닥이지 정말 깜깜한 밤이었다.
나의 처갓집은 언제나 나에게는 쉽지 않은 길이었다.
그러나 우리집은 친정집, 형민에게는 정겨운 외가집 가는 길이었다.
1 시간여를 더 헤맨 끝에 '영광'이 있었다.
고생 끝에 영광이었다.
나는 드디어 밀리고 밀렸던 숙제 하나를 풀고났더니 보성도 영광도 이제야 편하게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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