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의 노래'(2); 김훈..2004.6.18
칼의 노래 2(김 훈)
無題--이순신
바다 두고 맹세하매
용과 고기 감동하고
산 가리켜 맹세하매
초목이 안다.
서해어용동 맹산초목지
‘필사즉생 필생즉사’
반드시 죽으려는 자는 살고, 반드시 살려는 자는 죽는다.
명량으로 나아가기 직전에 쓴 이순신의 휘호, 명량에서 이순신은 죽음을 거슬러서 삶에 닿는다.
‘한 번 휘둘러 쓸어버리니,
피가 강산을 물들이도다.
일휘소탕 혈염산하.
시경 ‘눈비 내릴 때 떠나왔으되 어느덧 버들꽃 흩날린다’
세월의 덧없음을 견디지 못할지니라.
말은 비에 젖고 청춘은 피에 젖는구나.
-청춘의 날들은 흩어져가고 널린 백골 위에 사쿠라 꽃잎 날리네,
젊은 왜놈 군사들의 글이었다.
시간은 풀어져서 몽롱했다.
새벽 같기도 했고 저녁 같기도 했다.
---죽음과 대면하고 있는 사람의 소심함과 대담함이 이웃이 되어 공존하는 모습을 묘사하는데 저자는 혼신의 정성을 다하고 있다.
싸움터에 있는 사람에게는 싸움이 나날의 삶이다.
사소하고 지저분한 일상의 사건 속에서 전쟁을 함몰시킴으로써 임진왜란을 예외적인 사건이 아니라 우리들 자신의 삶의 일부로 포섭하고 있는 것이다.
‘스페인 1937년’이라는 시(오든)
스페인 내전에 참여하기 위하여 꽃씨처럼 열차에 달라붙어 온 이역의 사내들이 한 일을 ‘나눠 피우는 담배꽁초와 애욕없는 애무’로 묘사하였다.
일제시대에 상해에 모인 지사들이 매일 한 일도 화투치기였다.
독립운동을 한다고 해서 매일 적을 죽일 수는 없는 노릇.
그분들이 집을 떠나 온 몸의 방황을 견뎌내고 있는가라는 근본 문제를 외면하고 혁혁한 업적에만 주의를 돌리는 것은 소아병적 역사의식이라고 아니할 수 없다.
백성들 앞에서 무력감을 느끼는 이순신 앞에서는 저자의 중립적 시선도 많이 흔들린다. 이 무력함이야말로 리얼리즘의 핵심이다.
겁 많고 눈물이 많고 의심이 많아 사람 죽이기를 서슴치 않는 용렬한 임금 선조의 묘사는 임꺽정에 나오는 명종의 묘사에 견줄만 하다.
선조는 살아있는 전쟁영웅이 나오는 것을 싫어 하였다.
선조와 히데요시의 칼날 사이에 있는 이순신의 입장을 절절히 묘사하고 있다.
‘실록’에서도 이순신은 병약하고 소심한 사람으로 기록되어 있다.
잠시도 가만히 있지 않고 움직이는 균형감각이란 오늘의 우리에게 얼마나 필요한 존재이며 아쉬운 정신인가?
왜군의 칼날과 조정의 칼날에 맞서 자기 자신의 칼노래를 부를 수 있는 자리를 찾는 이순신의 절망은 아름답다.
절망을 회피하는 지혜보다 절망에 직면해서도 위축되지 않는 용기가 더 고귀하다는 것을 잘 묘사하고 있다.
백성의 곤경을 구원하지 못하는 관리,
자식의 죽음을 막지 못한 아비,
불의의 전쟁과 정의의 전쟁이 한결같이 무의미와 무내용으로 전락하는 국제질서를 속수무책으로 방관하는 장수,
고문을 가해 충성을 반역으로 몰아치는 정권의 음모를 겪고도 이순신의 내면은 동요하지 않았을까?
이순신은 죽음을 선택한 것은 아니지만, 적의 퇴로를 계획적으로 차단함으로써 피할 수도 있었을 죽음을 완성하였다.
이순신의 죽음은 자신의 선택이라기보다 하늘의 선물일 것이다.
릴케의 말대로, 과일처럼 성숙하여 저절로 떨어지는 죽음보다 더 아름다운 것은 없다.
내가 경멸하는 자들, 나를 경멸하는 자들보다 내가 형편없는 자가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하여 나도 한편의 아름다운 글을 쓰고 싶다.(나는 칼의 노래를 이렇게 읽었다. ‘역사를 초월한 절망의 깊이’---김인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