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노트; 내 생각은 정말 내 생각이었을까/하인리히 뵐, ‘카나리나 블룸의 잃어버린 명예’
13.내 생각은 정말 내 생각이었을까/하인리히 뵐, ‘카나리나 블룸의 잃어버린 명예’
-우리는 정보의 바다에서 살고 있다. 그런데 신문.방송이 시시각각 전하는 뉴스와 인터넷에서 만나는 정보들은 과연 얼마만큼의 진실을 함유하고 있을까? 누구도 알지 못한다.
그래서 웬만한 것은 다. 누가 특별히 허위라는 문제를 제기하고 분명하게 입증하지 않는 한, 대충 어느 정도는 사실이려니 여기게 된다. 이ㅓㄳ이 평범한 사람들이 언론 보도를 대하는 기본자세이며, 우리네 삶의 어쩔수 없느 ㄴ한계다. 우리는 진실인지 알 ㅜㅅ 없는 정보를 숨 쉬고, 왜곡과 거짓을 마시며 살아가여한다.
그러니 의심해 볼 수밖에 없다. 내가 가진 생각은 정말 내 생각일까? (만약 어느 힘센 신문이 자기나름의 목적의식에 입각해 특정한 종류의 사건에 대해 고의적으로 진실을 왜곡하고 거짓 정보를 지속적으로 내보낸다면, 나는 그렇다는 것을 인지할 수 있을까? 그렇지않을 것이다..
ㅁ.보이는 것과 진실의 거리;
이론적으로 보면 누구나 왜곡 보도와 허위 보도의 피해자가 될 수 있다. 그러나 피해자가 되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그래서 사람들은 그 위험에 대해 별로 깊게 생각하거나 고민하지 않는다.
어떤 신문사가 언론 자유라는 아름다운 이름 뒤에서 고의적인 왜곡 보도와 허위 보도를 자행함으로써 누군가의 인권을 유린하고 범죄를 유발했다고 하자…
누가 어떻게 이 불의를 바로 잡을 수 있을까? 바로 잡는 것은 고사하고, 사람들이 이런 사실을 인지할 수나 있을ㄲㅏ? 오히려 그 보도를 진실이라고 믿고 인권을 유린당한 피해자를 욕하게 되지 않을까?
뵐은 ‘카타리나 블룸의 잃어버린 명예’라는 소설에서 바로 이 문제를 다룬다.
-한번 이혼한 경력이 있는 그러나 평범하고 착실한 전문 가사관리인인, 카타리나 블룸의 비극은 그날 댄스파티에서 처음 본 루트비히 괴텐이라는 남자한테 ‘필이 꽂힌’데서 시작되었다.
(그로부터 나흘이 지난 일요일 저녁, 블룸이 경찰관의 집 초인종을 누른다..그녀는 경찰관에게, 자기 아파트에서 ‘차이퉁’기자를 총으로 쏴 죽였다고 말하나다. 그리고 후회의 감정을 느끼기 위해 몇시간 동안 시내를 배회하고 교회에도 갔지만 조금도 후회하는 바를 찾지못해ㅆ다면서 자신을 체포해달라고 요청한다..소설은 이 나흘동안 카타리나 블룸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이야기한다.)
-‘차이퉁’=신문이라는 뜻을 가진 독일어 일반명사, 카타리나가 쾨텐이라는 남자를 도피시킨 그 다음날, 그녀의 아파트에 경찰이 들이닥쳐 카타리나 블룸을 체포하였다..그 현장에 ‘차이퉁’이라는 신문의 사진기자가 곧바로 등장한다.
-차이퉁 지면에 보도된 카타리나 블룸과 그 주변 인물들은 실로 심각한 범죄 의혹의 주인공들이다..그녀을 돌봐주는 사람들의 안온해ㅆ던 일상은 한 순간에 파괴되었다..
(국가기관과 언론기관이 한통속이 되어 저지르는 이러한 불법행위는 누구도 막을 수 없다.)
(차이퉁’이 카타리나 블룸의 명예를 짓밟은 또 하나의 수법은 그녀를 아는 사람들이 하느 ㄴ말을 교 묘하게 왜곡하는 ㅓㄳ이었다..)
ㅁ.명예살인;
-카타리나 불룸은 경찰에 쫓기는 범죄자를 도망하게 했지만 실제로 수사에 장애를 조성하지은 않았다..범죄로 처벌받을 만한 일을 저지르지도 않앗다..그렇지만 그녀의 명예는 진흙 밭에 짓이겨졌고 삶은 막다른 골목에 봉착했다..그녀가 진실을 알리고 짓밟힌 명예를 되찾을 수 있는 길은 아무 데;도 없었다.
그런 절망적인 상황에서, 관련기사를 도맡아 쓴 담당기자를 아파트에서 단독인터뷰 하자고 말한다..그녀을 찾아온 기자는 ‘색스나 한탕 하자’ 하엿고 그녀는 그를 총으로 쐬 죽였다.
ㅁ.68혁명과 극우언론;
-이 소설은, 뚜렷한 진보 성향을 지닌 지식인 뵐과 극우 황색신문 ‘빌트’가 벌였던 기나긴 전쟁의 산물이다.
뵐은 1917년 독일 쾰른에서 태어났다. 뵐은 지식인으로서 현실에 적극 참여하였다..1956년에는 소련의 항가리 민중봉기 무력진압을 규탄하고, 수에즈운하 개방에 반대해 이집트를 공격한 프랑스와 영국을 비판한 ‘세계 지식인 105인 선언’ㅔ 참여했다.
유럽 68혁명이 일어났을 때는 독일정부의 비상계엄선포에 반대하면 수도 본에 결집한 7만 시위대를 앞에 두고 연설하였다…1974년 소련에서 추방당한 솔제니친을 자기집으로 피신시켰으며..1978년에는 박정희대통령에게 김지하 시인의 석방을 청원하기도 하였다…
-뵐과 ‘빌트’의 전쟁은 결코 우연히 벌어진 일이 아니다…뚜렷한 역사적 배경과 확실한 계기가 있었다..1968년 서독에서는 대규모 베트남 전쟁 반대시위가 일어났다…그런데 4월11일 그 유명한 루디 두취게 저격사건이 터졌다..요제프 바흐만이라는 청년이 반전 학생운동 지도자 두취게를 죽이려고 총 세방을 ㅆhkTek. 체포된 바흐만은 이렇게 말하였다…’나는 매일 신문을 읽으면서 이 더러운 ㅃkfrod이를 처치할 생각만 하였다..그는 사회에 해악을 끼치는 국가의 적 1호다.’ 그가 읽은 신문은 바로 독일 최대 출판 자본 출판사가 간행하는 타블로이드 일간지 ‘빌트’였다.
-68혁명은 전후 독일의 기성세대가 이룩한 모든 것을 부정하는 운동으로 치달았다…청년학생들은 나치 잔재를 제대로 청산하지 않은 전후 독일사회와 기성세대르 ㄹ 도덕저긍로 비난했으며, ‘라인강의 기적’이라는 경제부흥에 대한 자부심을 속물적 물신숭배로 간주했다…그들은 폭력에 대한 기존의 도덕률에도 도전하였다..일부 청년들의 공공연한 폭력행사는 목적의 정당성이 수단의 폭력성을 정당화하느냐를 둘러싼 격렬한 논쟁을 불러일으켰다..사회주의 혁명을 지향하는 한 분파는 그렇다고 ghkrtlsgkdujTek…적군파.
ㅁ.언론의 자유는 누구를 위한 것인가.
-‘빌트’는 독일의 발행부수 일등 신문이다. 무려 400만부를 찍는다.. 밣행부수가 많다고 해서1등 신문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우리도 이제 국가와 언론 그 자체가 아니라, 특정한 정부와 특정한 언론이 문제인 시대에 살고 있다..우리도 드디어 40년 전 독일 수준에 도달한 셈인가? 그렇지가 않다..독일에는 ‘빌트’가 하나밖에 djqtg지만 우리나라에는 여러 개의 ‘빌트’가 있다..
신문사와 대기업이 지상파와 종합편성 채널 편성권을 장악하고, 대기업이 광고주의 위력으로 다른 미디어까지 간접적으로 조종하면 종국적으로는 인터넷 포털까지 남김없이 그들의 통제 아래 들어가게 될 것이다..
(그들은 자기네가 중요하다고 판단한 정보를 자기네가 옳다고 여기는 방식으로 가공해 자기에게 이익이 되는 형식으로 국민에게 제공할 것이다..)
(그 모든 것들이 ‘어느 정도’ 진실이라고 여길 수 밖에 없는 우리들은 남의 머리가 생각한 것을 내 머리로 생각한 것으로 착각하며 살아가게 될지도 모른다…)
-카타리나 블룸은 잃어버린 명예르 영원히 되찾을 수 없게 될 것이다…카타리나 블룸은 되묻는다..’그대는 신문 헤드라인을 진실이라고 믿습니까?’ 나는 대답한다..’아니오, 믿지 않습니다..헤드라인을 진실로 믿어도 되는, 그런 좋은 신문을 집에서 구독해보는 것이 내 간절한, 언제 이루어질지 모르는 소망입니다.’2024.3.18.월.오후5;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