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무소속)
'나물 먹고 물마시고', '밥줄?'
햄릿.데미안.조르바
2024. 1. 27. 17:18
2004.5.30. 관악산에서
‘당신 요즈음 조금 이상해요.’
‘틈만 나면 산에 가니 혹 애인 생긴 것 아녀요?’
오늘 아침 일어나자마자 배낭을 챙기는 날 보고 아내가 툭 던진다.
뭔가 허전하여 어디론가 돌아다녀야 풀렸던, 그러나 결국은 풀리지 않았던, 한창 젊던 어느 날들처럼, 요즘 난 뭔가 부족하여 아니면 너무 넘쳐나서 산으로라도 내달려야 하는 것일까.
정말 틈만 나면 산으로 가고야 만다. 가고 싶다. 그것도 가능하다면 혼자서.
부처님 오신 날과 어제는 청계산을 갔으니, 오늘은 모처럼 관악산은 어떨까, 5월의 관악도 정말 푸를까, 청계산만큼 편안하고 북한산만큼 넉넉할까.
북한산을 또 보고싶었지만, 지난주 토요일 그 삼삼하게 푸르른 숨소리를 친구들과 함께 일부라도 들었으니, 오늘은 그래, 관악의 껄끄러움을 한번 넘어 보자 싶었다.
관악은 평소 어쩐지 딱딱한 느낌이 들어 쉽게 접근이 방해받던 곳.
숨차는 곳에선 어김없이 나타나는 그 바위들이 왠지 거북살스러웠다.
조심스레 지나치고 나면 ‘순한 바위도 있구나’ 하면서도, 실상은 언제나 관악의 바위들은 내게 편하게 곁을 주지 않았다.
지난 겨울 눈이 펑펑 오던 날, 연주대를 앞에 두고 더 이상 올라가지 못하게 막아선 것도 그 바위들이었고, 내내 부담으로 남아 있었다.
관악이 왠지 부담스러운 것은 또 있다.
서울대 옆의 거만스러운 만남의 광장과 무지막지하게 긴 아스팔트길이 난 싫다.
산행을 위한 친구들과의 만남은 조금 오붓하게 옹기종기한 맛이 있어야 하는 것인데 이 놈의 광장은 도통 조이는 맛은 없고 온통 소란스러움뿐 아니던가.
더 싫은 것은 이 놈의 우라질 아스팔트를 최소 20여분 타고 걸어야 산자락에 닿을 수 있다는 것.
난 죽어도 아스팔트가 싫고 또 싫은데, 누가 일갈하며 내뱉었듯이 아스팔트는 도시의 암, 흙을 숨 못 쉬게 하고, 종국에는 인간과의 만남을 끊어내어 모두를 죽음으로 내모는 마귀 아닌가. 우리 몸의 암과 같다고 하였지 않은가.
누가 누구를 위하여 산자락으로 가는 길에 아스팔트를 덧칠하였는가.
숨 막혀하는 저 흙의 소리가 들리지 않는단 말인가.
백운대 가는 도선사 길도 전혀 남 생각함 없이 방자하여 싫었는데, 관악의 길 또한 마찬가지로 싫었다.
그 부담스럽던 관악을 오늘, 초록빛 5월을 보내면서 한번 만나서 새롭게 사귀어 보리라 마음 잡았다.
나의 일요일 시각으로는 이른, 한참 이른 9시.
서울대 입구는 그야말로 인산인해, 산이 좋아 산으로 오시는 산행객들, 하나라도 더 팔아보려는 노점상들, 그 속의 나는 철없는 아이가 되어 둘레둘레 어디 재미난 일들이 없나 찾고 있었다.
속 하나 없이 모처럼 찾은 관악에서 오늘 뭐 좋은 일 없을까, 자연공부 잘 될 거야 하며 소풍가는 아이가 되어 김칫국을 마시고 있었다.
연주암으로 갈까 삼막사로 갈까,
잠시 망설이다가 많이들 가지 않은 길 삼막사 쪽으로 길을 틀었다.
‘자연 관찰로’는 벌써 찾아온 유치원 병아리들로 가득, 숲들도 재잘재잘 소리내는 듯 하였다.
요즈음 자연공부는 저렇게 시키는지 마뜩치 않았지만, 자연 속에서 자연과 같이 배워야지 억지로 틀 속에 집어넣으려 하고 있어서, 나무이름을 말하라 삼행시를 지어보셔요 하는 것이 여간 거슬리지 않았지만, 어찌하랴 우리 사는 세상에는 ‘팻숀’이라는 것이 있어 제때 따르지 않으면 큰 병이 나는 줄 알지 않던가.
남의 일에 시비하는 못된 버릇이 다시 살아날 겨를도 없이 난 어느 사이 황홀한 숲길에 폭 빠지고 말았다.
‘꿈길밖에 길이 없어 꿈길로 가니....’ 하는 그 꿈길 같은 길이 내 앞에 펼쳐져 있지 않은가.
내가 너무 호들갑을 떠는가 내가 너무 헤픈 것인가, 늦은 5월의 푸르른 관악이 햇볕과 어우러져 나의 혼을 흔들어대는 것이리라.
때죽나무를 아시는가요? 그 꽃을 보셨는지요? 다섯 꽃잎이 너무 수줍어 하고 있대요. 촉촉 솟아있는 꽃술은 곧 지고 말 것을 아는지라 보란 듯이 의젓하더이다.
난 어릴 적 이 때죽나무를 끊어 잘라서 윷놀이를 하였더니 하는 생각이 들자 그 꽃은 더 아름답게 옛날로 돌아가는 듯 하더이다.
미음완보.
옛 시인의 노래를 읊조리지는 못하였지만 그래도 느리게는 걸으면서 꿈속만 같은 이 숲길이 더디게 끝나기를 바랐지만,
숲길도 길이었지요, 아무리 느리게 걸어도 길은 끝나게 되어 있는 것, 곧 끝이 나고 말았으니까요.
가파른 길이 없으면 어디 산이라 하겠는가,
황홀하기만 하던 숲길이 이제 멀어지더니 숨을 몰아붙이는 가파른 오르막길이 나왔다.
낑낑대며 나를 다스리고 있노라니 누군가 내 손목을 확 잡아채는 것이 아닌가.
나도 놀라고 누군가 상대방도 놀라더라. 누군가는 수줍은 아줌마, 숨을 몰아쉬다 발을 헛디뎌 아무거나 잡다보니 옆의 내 손목을 만지게 되었더라.
산에 오니 이런 일도 일어나는구나, 재미있지 않은가.
어디 여염집 아낙네가 낯선 외간 남정네의 손목을 잡다니............
역사는 움직여 봐야 하느니, 방안에 쳐 박혀 있지 말고 밖으로 산으로 쏘다니거라들, 어떤 역사를 원한다면, 동즉득 ‘움직여야 얻을 것이니라’
그러나 준비되지 않은 나에게 어떤 역사는 오지 않았더라.
더 이상 직진을 하면 낭떠러지, 우회전이 강요되는 갈림길에서 난 잠시 숨을 골랐다.
저 멀리 보이는 반대편이 사당동에서 올라오는 바윗길이려니, 그 위로 더 위로 오르면 연주대, 그 능선과 내가 서있는 곳 사이를 연결하는 직선 상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오직 늦은 5월의 푸르름만이 따가운 햇볕아래 가득할 뿐.
시야가 시쳇말로 죽이도록 끝내주었다. 난 잠시 멍하니 죽어 있다가 가던 길을 가기 위해 우회전하였다.
이크, 드디어 예의 바윗길.
맨손으로 그냥 오르고 싶지는 않았지만 어찌하리, 장갑을 꺼내기는 싫고.........
사람은 왜 이리 그렇게 많이 오셨는지, 기다리며 올라야하는 바윗덩어리들은 계속 날 시험들게 하였다.
꽤나 어려운 문제들도 나오기도 하여서 자칫 건방떨어 방심하면 앗뿔싸.
난 실족하지 않도록 비겁한 사람이 되어 맹조심하여야 했다.
얼핏 방심하는 사이 머리를 들어서는 안 되는 곳에서 ‘거두’하고 말았으니, 바윗덩어리를 들어올리려 하였으니, ‘아이고, 아파’ 였다.
내 머리가 이미 돌이 되어 굳어 있었기 망정이지 잘 돌아가는 청춘이었다면 정말 박살이 날 뻔하였다.
거북바위 근처에는 인간들의 세상, 시장바닥이 따로 없었다.
죽어도 먹고는 살아가야 하는 상인들과 먹고 더 잘 살고자하는 산행객들과의 만남이었다. 소란스러웠지만 살아 움직이고 있었다.
우리 세상에 먹는 것 보다 우선하는 가치가 있을까.
‘먹기 위하여 사느냐, 살기 위하여 먹느냐’
최소한 한낮이 지난 이곳 산에서는 ‘먹기 위하여 산다’ 가 정답일 것이었다.
가파른 고갯길을 지나 바윗덩어리 타고 넘어온 사람들에게는 ‘뵈는 게 없다’
오로지 뵈는 것은, 갈증을 풀어줄 막걸리와 허기짐을 채워줄 한 주먹의 밥, 이 때는 아름다운 여인도 다음 다음으로 밀린다.
아니나 다를까 눈에 확 들어오는 것들은 편안한 막걸리와 먹음직스런 비빔밥 그리고 펑퍼짐하게 널려있는 갖가지 나물들 안주들.
평평하고 좋아 보이는 곳에는 어김없이 돗자리가 있었고 그 곳에는 이미 인간들의 세상, 먹고 마시고 떠들고 또 몇몇은 잠도 자고, 천국이 따로 없었다.
허기진 참새가 어찌 방앗간을 그냥 지나칠 수 있으리.
막걸리 한 사발 그리고 비빔밥!
비주류인 내게도 산 위에 올라 마시는 막걸리는 왕켚, 세상이 모두 오늘 내 것이 되었다.
서로 다른 것들을 비벼서 곧 새로운 하나로 만들어내는 예술, 숲속의 비빔밥은 꿀, 세상의 달콤함이 오늘 그 속에 있었다.
산중진미가 따로 없었다.
돗자리에 누워 하늘을 보니 푸른 나뭇잎들 사이로 푸르다 하얀 구름들이 한가롭고, 5월의 하늘도 높기만 하였다.
‘나물 먹고 물 마시고 팔 베고 누웠으니, 대장부 살림살이 이만하면 어떠리’
오늘따라 옛 시인의 노래가 ‘딱’이었다.
주섬주섬 배낭을 다시 챙기고 얼마 남지 않은 하산길을 재촉하였는데 길은 다시 갈림길.
서울대로 회군하느냐, 안양 쪽으로 넘어가느냐.
동화 속에 나옴직한 할머니가 갈림길에서 산 속의 햇볕을 모두 받아내고 있었다.
한 손으로는 호박엿을 묻히면서 오물오물 연신 입운동을 하고 계셨다. 아마도 우리 할머니처럼 없는 이 때문에 합죽거리는 것이려니.
나를 보고 무엇인가를 물어보아야 한다는 시늉이었다.
‘삼막사는 어느 쪽이나요?‘
‘..........’
듣는 둥 마는 둥 턱만 방향을 전하고 호박엿을 내게 들어올린다.
주머니에 있는 동전을 모두 내놓으니 호박엿 네 조각을 주면서 ‘그냥 많이 주는 거여’ 하신다.
드디어 삼막사, 오후 1시경.
긴 줄이 눈앞에 보였다.
한 100미터는 족히 되고도 남았다.
‘무슨 줄이야?’
‘밥줄’
‘밥줄’이라는 표현이 발랄하면서도 너무나 현실적인 신랄함에 난 그 친구를 다시 보았다.
우리말이란 것이 쓰임새에 따라 얼마나 맛이 다른가.
나도 그 줄 ‘밥줄’에 섰다. 실은 알고 보니 밥줄이 아니고 그것은 절에서 점심 공양으로 국수를 주는 줄이었다.
거북바위 근처에서 비빔밥 한 그릇을 해치웠지만 조금 섭섭하던 차, 잘 되었다 싶었다.
그냥 사람 속에 서있으면서, 그것도 밥을 타먹기 위하여 줄을 서본다는 것은, 나의 지금 일상에서는 좀처럼 만날 수 없는 파격.
오래 전 비인간적 군대생활의 줄이 떠오르기도 하고, 조금 가까이는 예비군 훈련의 강제적 줄도 있었고, 철이 들어 사회생활 곳곳에서 만나는 많고 많은 줄, 줄, 줄들이 오늘의 줄과 줄줄이 겹쳐서 떠올랐다.
가끔 절의 점심 공양을 먹어보면 나름의 독특한 분위기가 있다.
우선 줄을 서서 상당기간 기다려야 하는데도 그것은 다른 줄과 달리 기다린다는 것이 전혀 싫지 않다.
먼 산을 쳐다보기도 하고 가까운 산 주변을 주욱 훑어보기도 하면서, 이것저것 편하게 생각할 수가 있어 좋다. 구속감을 주기는커녕 오히려 해방감을 느끼니 이 역설이 또 좋다.
밥을 먹고 나서 스스로 깨끗하게 그릇을 씻어야 하는 것도 재미있다. 일상적으로 하지 않은 일을 하니, 더욱이 스스로 하는 것이니, 다른 사람들도 모두 하는 것이니, 나이 들었다고 체면부릴 일 없어 좋고, 전혀 쑥스럽지 않아 좋다.
또 빼놓을 수 없는 것은 공짜로 밥을 먹는다는 것.
공짜 싫어하는 사람 없다고 절의 점심공양을 먹으면 왠지 크게 무엇을 얻었다 싶고 그냥 기분이 좋다.
나도 이런 기분을 다른 사람들에게 똑같이 경험하게 할 수는 없을까.
전혀 비굴하지 않으면서, 아니 오히려 기분 좋게 밥을 얻어먹고, 똑같은 기분을 다른 사람들에게 만나게 할 수는 없을까,
부처님의 점심공양이 그냥 공짜가 아니었구나, 깨닫게 되었다.
불심이란 것이 저 멀리 있는 것이 아니었다.
‘한쪽에서 채워진 것을 베풀면서 비우면, 다른 쪽은 받으면서 채우고 그리고 베푸는 것을 배우는 것.‘, 아닐까.
중생을 구제한다는 것이 저 멀리 저 깊은 불경 속에 있는 것이 아니고, 공짜 점심 ‘밥줄’에 있었으니, 나는 오늘 점심 잘 먹은 것이었다.
하산길을 어느 쪽으로 할까.
익숙한 곳이야 서울대 방향이겠으나, 오랜만에 가보지 않은 길, 안양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관악역이라는 이정표가 보이긴 하였지만 초행이라 어디가 어딘지 방향을 잡을 수가 없었다.
아스팔트가 알기 쉽게 틀림없을 방향을 안내하고 있었지만 왠지 선뜻 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오후의 햇볕이 아스팔트와 만나 숨을 틀어막는 것 같기도 하였지만, 5월의 푸르른 기분이 아스팔트 위에서는 금방 숨넘어갈 것 같아서였을 것이다.
정말 또다시 산에서 아스팔트길을 우리는 만나야 하는 것인가.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는 것인지, 멈칫거리는 나에게 샛길 같은 것이 보였다.
이런 곳에 이런 길이 있다니, 올라오면서 만났던 길과는 또다른, 꿈길 같은 길이었다.
‘꿈길밖에 길이 없어 꿈길로 가니......’가 저절로 다시 읊어지는 길이었다. 늦은 5월의 오후 햇볕과 숲 속의 푸르름이 알맞게 조화를 부리면 이런 경치가 연출되는 것일까.
무지 황홀하였다. ‘무릉도원’이라고 뻥을 쎄게 쳐도 좋을까 싶었다.
발바닥 밑에 밟히는 느낌이라니, 촉촉하면서 살갑게 달라붙는 즐거움이었다. 시루떡, 막 구어낸 시루떡 위의 고물을 만지는 감촉이랄까 따끈따끈하면서 고실고실하면서 손 끝에 달라붙는, 입 속에 들어가면 살살 녹아내는 그 느낌, 같은 산 속 숲길이었다.
엊그제 비가 온 뒤여서일까, 산길이 알맞게 물기를 머금어 오늘 오신 산행객들에게 귀한 맛, 귀한 느낌을 선물하는 것이리라.
더 이상 걸어가지 않고 그냥 아무데나 나는 주저앉았다. 거기에 또 계곡물이 좔좔 아니 촐졸촐졸 흐르지 않는가. 이곳저곳 더 예쁜 돌이 없는지 따졌을 것이지만 오늘은 아니었다. 돌이 좀 매끄럽지 않으면 어떠리. 어서 빨리 계곡물에 발을 담궈 이 꿈길 산 속을 더 맛보아야지 조바심내며 밋밋한 바위 위에 털썩 자리를 깔았다.
5월이지만 아직 계곡물은 차갑다. 물속으로 들어간 나의 두발은 깜짝 놀라 소리친다.
‘어, 차가우나 시원하다.‘
3 시간여의 피로와 땀이 단번에 날라갔다.
물기를 말리느나 자리잡은 바위를 난 야전침대로 만들고 배낭을 베개로 삼으니 곧 산속의 낮잠이 되었다. 누가 이보다 더 폼 잡을 수 있으리오.
재벌들의 할아버님이든, 우리 속세에서 잘 나가는 삼관왕이든, 빳빳거리는 우리들의 사.사.사.사님들이든 부러워할 일 하나도 없을 것이며, 오히려 그들이 날 시새움하고 남을 것이리.
얼핏 소란스러움 있어 짧은 잠에서 깼다. 젊은 부부들이었는데, 막걸리병을 흔들다 너무 흔들어 거품이 난리를 낸 것이었다. 수도관이 터지듯 솟구치는 막걸리를 어찌 손으로 감당하리.
어,어,어, 하는 사이에 병 속의 막걸리는 한 컵 수준으로 떨어지고, 한쌍은 날라가버린 막걸리에 아쉬워 어쩔 줄 모르고, 또 다른 한쌍은 막걸리를 날려보낸 갑작스런 미안함에 또 어쩔줄 모르더라. 이를 어쩌나, 그래도 한 사람은 못내 미련이 남는지 남아있는 막걸리를 컵에 딸고 또 딸아 입맛을 다시고 또 다시더라.
주섬주섬 배낭을 다시 챙기고 얼마 남지않은 하산길을 재촉하였는데 길은 여전히 꿈 속같은 그 산길이었으며, 발바닥에 닿는 감촉은 더 달고 뽀송뽀송하였다
젖은 기저귀를 갈아 낀 다음의 갓난아기 느낌이 그러할까.
신선놀음에 도끼자루 썩는 줄 모른다더니, 어느새 꿈길 같던 숲길은 사라지고 갑작스레 황량하기만 한 공사판이 소란스럽게 나타났다.
천당과 지옥의 차이라더니, 이렇게 다를 수가 있는가. 꿈길 같던 숲길은 어디 가고 삭막한 속세가 떡 버티고 서 있단 말인가.
어디서 이 많은 자동차들은 모였으며, 저 괴물 같은 공사판은 무엇인가. 산을 깎았는지 들판을 뒤집었는지 사방이 온통 난장판 아닌가.
공사판의 안내문에서 이곳이 행정구역으로 안양시 만안구인데, 그러면 관악 전철역은 어디에 있는 것인가.
좋기만 하던 꿈 속 같던 숲길이 마지막에 와서 속세의 심란한 난장판으로 변하여 난감해졌다.
‘빨리 더 빨리’
‘많이 더 많이’
아직도 우리에겐 인간과 자연을 조화롭게 만나게 하는 여유가 없는가.
꿈길이 현실과 만나서 우리 인간들을 더 활기차게 만들어내는 지혜는 없는 것인가.
조금만 여유를 가지고 제대로 일을 꾸며 나가면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인데, 얼마나 더 기다려야 한단 말인가.
다음에 이곳을 찾을 때는 꿈속 같던 숲길과 시끄러운 속세가 함께, 더 자연스럽게 어우러져 전혀 다른 새로운 세상이 만들어져 있기를 기대해본다. 오늘 맛본 거북바위에서의 비빔밥 같은 전혀 새로운 예술작품이 태어나기를 기대해본다.
그 날이 멀지 않으리라 믿으면서.
‘당신 요즈음 조금 이상해요.’
‘틈만 나면 산에 가니 혹 애인 생긴 것 아녀요?’
오늘 아침 일어나자마자 배낭을 챙기는 날 보고 아내가 툭 던진다.
뭔가 허전하여 어디론가 돌아다녀야 풀렸던, 그러나 결국은 풀리지 않았던, 한창 젊던 어느 날들처럼, 요즘 난 뭔가 부족하여 아니면 너무 넘쳐나서 산으로라도 내달려야 하는 것일까.
정말 틈만 나면 산으로 가고야 만다. 가고 싶다. 그것도 가능하다면 혼자서.
부처님 오신 날과 어제는 청계산을 갔으니, 오늘은 모처럼 관악산은 어떨까, 5월의 관악도 정말 푸를까, 청계산만큼 편안하고 북한산만큼 넉넉할까.
북한산을 또 보고싶었지만, 지난주 토요일 그 삼삼하게 푸르른 숨소리를 친구들과 함께 일부라도 들었으니, 오늘은 그래, 관악의 껄끄러움을 한번 넘어 보자 싶었다.
관악은 평소 어쩐지 딱딱한 느낌이 들어 쉽게 접근이 방해받던 곳.
숨차는 곳에선 어김없이 나타나는 그 바위들이 왠지 거북살스러웠다.
조심스레 지나치고 나면 ‘순한 바위도 있구나’ 하면서도, 실상은 언제나 관악의 바위들은 내게 편하게 곁을 주지 않았다.
지난 겨울 눈이 펑펑 오던 날, 연주대를 앞에 두고 더 이상 올라가지 못하게 막아선 것도 그 바위들이었고, 내내 부담으로 남아 있었다.
관악이 왠지 부담스러운 것은 또 있다.
서울대 옆의 거만스러운 만남의 광장과 무지막지하게 긴 아스팔트길이 난 싫다.
산행을 위한 친구들과의 만남은 조금 오붓하게 옹기종기한 맛이 있어야 하는 것인데 이 놈의 광장은 도통 조이는 맛은 없고 온통 소란스러움뿐 아니던가.
더 싫은 것은 이 놈의 우라질 아스팔트를 최소 20여분 타고 걸어야 산자락에 닿을 수 있다는 것.
난 죽어도 아스팔트가 싫고 또 싫은데, 누가 일갈하며 내뱉었듯이 아스팔트는 도시의 암, 흙을 숨 못 쉬게 하고, 종국에는 인간과의 만남을 끊어내어 모두를 죽음으로 내모는 마귀 아닌가. 우리 몸의 암과 같다고 하였지 않은가.
누가 누구를 위하여 산자락으로 가는 길에 아스팔트를 덧칠하였는가.
숨 막혀하는 저 흙의 소리가 들리지 않는단 말인가.
백운대 가는 도선사 길도 전혀 남 생각함 없이 방자하여 싫었는데, 관악의 길 또한 마찬가지로 싫었다.
그 부담스럽던 관악을 오늘, 초록빛 5월을 보내면서 한번 만나서 새롭게 사귀어 보리라 마음 잡았다.
나의 일요일 시각으로는 이른, 한참 이른 9시.
서울대 입구는 그야말로 인산인해, 산이 좋아 산으로 오시는 산행객들, 하나라도 더 팔아보려는 노점상들, 그 속의 나는 철없는 아이가 되어 둘레둘레 어디 재미난 일들이 없나 찾고 있었다.
속 하나 없이 모처럼 찾은 관악에서 오늘 뭐 좋은 일 없을까, 자연공부 잘 될 거야 하며 소풍가는 아이가 되어 김칫국을 마시고 있었다.
연주암으로 갈까 삼막사로 갈까,
잠시 망설이다가 많이들 가지 않은 길 삼막사 쪽으로 길을 틀었다.
‘자연 관찰로’는 벌써 찾아온 유치원 병아리들로 가득, 숲들도 재잘재잘 소리내는 듯 하였다.
요즈음 자연공부는 저렇게 시키는지 마뜩치 않았지만, 자연 속에서 자연과 같이 배워야지 억지로 틀 속에 집어넣으려 하고 있어서, 나무이름을 말하라 삼행시를 지어보셔요 하는 것이 여간 거슬리지 않았지만, 어찌하랴 우리 사는 세상에는 ‘팻숀’이라는 것이 있어 제때 따르지 않으면 큰 병이 나는 줄 알지 않던가.
남의 일에 시비하는 못된 버릇이 다시 살아날 겨를도 없이 난 어느 사이 황홀한 숲길에 폭 빠지고 말았다.
‘꿈길밖에 길이 없어 꿈길로 가니....’ 하는 그 꿈길 같은 길이 내 앞에 펼쳐져 있지 않은가.
내가 너무 호들갑을 떠는가 내가 너무 헤픈 것인가, 늦은 5월의 푸르른 관악이 햇볕과 어우러져 나의 혼을 흔들어대는 것이리라.
때죽나무를 아시는가요? 그 꽃을 보셨는지요? 다섯 꽃잎이 너무 수줍어 하고 있대요. 촉촉 솟아있는 꽃술은 곧 지고 말 것을 아는지라 보란 듯이 의젓하더이다.
난 어릴 적 이 때죽나무를 끊어 잘라서 윷놀이를 하였더니 하는 생각이 들자 그 꽃은 더 아름답게 옛날로 돌아가는 듯 하더이다.
미음완보.
옛 시인의 노래를 읊조리지는 못하였지만 그래도 느리게는 걸으면서 꿈속만 같은 이 숲길이 더디게 끝나기를 바랐지만,
숲길도 길이었지요, 아무리 느리게 걸어도 길은 끝나게 되어 있는 것, 곧 끝이 나고 말았으니까요.
가파른 길이 없으면 어디 산이라 하겠는가,
황홀하기만 하던 숲길이 이제 멀어지더니 숨을 몰아붙이는 가파른 오르막길이 나왔다.
낑낑대며 나를 다스리고 있노라니 누군가 내 손목을 확 잡아채는 것이 아닌가.
나도 놀라고 누군가 상대방도 놀라더라. 누군가는 수줍은 아줌마, 숨을 몰아쉬다 발을 헛디뎌 아무거나 잡다보니 옆의 내 손목을 만지게 되었더라.
산에 오니 이런 일도 일어나는구나, 재미있지 않은가.
어디 여염집 아낙네가 낯선 외간 남정네의 손목을 잡다니............
역사는 움직여 봐야 하느니, 방안에 쳐 박혀 있지 말고 밖으로 산으로 쏘다니거라들, 어떤 역사를 원한다면, 동즉득 ‘움직여야 얻을 것이니라’
그러나 준비되지 않은 나에게 어떤 역사는 오지 않았더라.
더 이상 직진을 하면 낭떠러지, 우회전이 강요되는 갈림길에서 난 잠시 숨을 골랐다.
저 멀리 보이는 반대편이 사당동에서 올라오는 바윗길이려니, 그 위로 더 위로 오르면 연주대, 그 능선과 내가 서있는 곳 사이를 연결하는 직선 상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오직 늦은 5월의 푸르름만이 따가운 햇볕아래 가득할 뿐.
시야가 시쳇말로 죽이도록 끝내주었다. 난 잠시 멍하니 죽어 있다가 가던 길을 가기 위해 우회전하였다.
이크, 드디어 예의 바윗길.
맨손으로 그냥 오르고 싶지는 않았지만 어찌하리, 장갑을 꺼내기는 싫고.........
사람은 왜 이리 그렇게 많이 오셨는지, 기다리며 올라야하는 바윗덩어리들은 계속 날 시험들게 하였다.
꽤나 어려운 문제들도 나오기도 하여서 자칫 건방떨어 방심하면 앗뿔싸.
난 실족하지 않도록 비겁한 사람이 되어 맹조심하여야 했다.
얼핏 방심하는 사이 머리를 들어서는 안 되는 곳에서 ‘거두’하고 말았으니, 바윗덩어리를 들어올리려 하였으니, ‘아이고, 아파’ 였다.
내 머리가 이미 돌이 되어 굳어 있었기 망정이지 잘 돌아가는 청춘이었다면 정말 박살이 날 뻔하였다.
거북바위 근처에는 인간들의 세상, 시장바닥이 따로 없었다.
죽어도 먹고는 살아가야 하는 상인들과 먹고 더 잘 살고자하는 산행객들과의 만남이었다. 소란스러웠지만 살아 움직이고 있었다.
우리 세상에 먹는 것 보다 우선하는 가치가 있을까.
‘먹기 위하여 사느냐, 살기 위하여 먹느냐’
최소한 한낮이 지난 이곳 산에서는 ‘먹기 위하여 산다’ 가 정답일 것이었다.
가파른 고갯길을 지나 바윗덩어리 타고 넘어온 사람들에게는 ‘뵈는 게 없다’
오로지 뵈는 것은, 갈증을 풀어줄 막걸리와 허기짐을 채워줄 한 주먹의 밥, 이 때는 아름다운 여인도 다음 다음으로 밀린다.
아니나 다를까 눈에 확 들어오는 것들은 편안한 막걸리와 먹음직스런 비빔밥 그리고 펑퍼짐하게 널려있는 갖가지 나물들 안주들.
평평하고 좋아 보이는 곳에는 어김없이 돗자리가 있었고 그 곳에는 이미 인간들의 세상, 먹고 마시고 떠들고 또 몇몇은 잠도 자고, 천국이 따로 없었다.
허기진 참새가 어찌 방앗간을 그냥 지나칠 수 있으리.
막걸리 한 사발 그리고 비빔밥!
비주류인 내게도 산 위에 올라 마시는 막걸리는 왕켚, 세상이 모두 오늘 내 것이 되었다.
서로 다른 것들을 비벼서 곧 새로운 하나로 만들어내는 예술, 숲속의 비빔밥은 꿀, 세상의 달콤함이 오늘 그 속에 있었다.
산중진미가 따로 없었다.
돗자리에 누워 하늘을 보니 푸른 나뭇잎들 사이로 푸르다 하얀 구름들이 한가롭고, 5월의 하늘도 높기만 하였다.
‘나물 먹고 물 마시고 팔 베고 누웠으니, 대장부 살림살이 이만하면 어떠리’
오늘따라 옛 시인의 노래가 ‘딱’이었다.
주섬주섬 배낭을 다시 챙기고 얼마 남지 않은 하산길을 재촉하였는데 길은 다시 갈림길.
서울대로 회군하느냐, 안양 쪽으로 넘어가느냐.
동화 속에 나옴직한 할머니가 갈림길에서 산 속의 햇볕을 모두 받아내고 있었다.
한 손으로는 호박엿을 묻히면서 오물오물 연신 입운동을 하고 계셨다. 아마도 우리 할머니처럼 없는 이 때문에 합죽거리는 것이려니.
나를 보고 무엇인가를 물어보아야 한다는 시늉이었다.
‘삼막사는 어느 쪽이나요?‘
‘..........’
듣는 둥 마는 둥 턱만 방향을 전하고 호박엿을 내게 들어올린다.
주머니에 있는 동전을 모두 내놓으니 호박엿 네 조각을 주면서 ‘그냥 많이 주는 거여’ 하신다.
드디어 삼막사, 오후 1시경.
긴 줄이 눈앞에 보였다.
한 100미터는 족히 되고도 남았다.
‘무슨 줄이야?’
‘밥줄’
‘밥줄’이라는 표현이 발랄하면서도 너무나 현실적인 신랄함에 난 그 친구를 다시 보았다.
우리말이란 것이 쓰임새에 따라 얼마나 맛이 다른가.
나도 그 줄 ‘밥줄’에 섰다. 실은 알고 보니 밥줄이 아니고 그것은 절에서 점심 공양으로 국수를 주는 줄이었다.
거북바위 근처에서 비빔밥 한 그릇을 해치웠지만 조금 섭섭하던 차, 잘 되었다 싶었다.
그냥 사람 속에 서있으면서, 그것도 밥을 타먹기 위하여 줄을 서본다는 것은, 나의 지금 일상에서는 좀처럼 만날 수 없는 파격.
오래 전 비인간적 군대생활의 줄이 떠오르기도 하고, 조금 가까이는 예비군 훈련의 강제적 줄도 있었고, 철이 들어 사회생활 곳곳에서 만나는 많고 많은 줄, 줄, 줄들이 오늘의 줄과 줄줄이 겹쳐서 떠올랐다.
가끔 절의 점심 공양을 먹어보면 나름의 독특한 분위기가 있다.
우선 줄을 서서 상당기간 기다려야 하는데도 그것은 다른 줄과 달리 기다린다는 것이 전혀 싫지 않다.
먼 산을 쳐다보기도 하고 가까운 산 주변을 주욱 훑어보기도 하면서, 이것저것 편하게 생각할 수가 있어 좋다. 구속감을 주기는커녕 오히려 해방감을 느끼니 이 역설이 또 좋다.
밥을 먹고 나서 스스로 깨끗하게 그릇을 씻어야 하는 것도 재미있다. 일상적으로 하지 않은 일을 하니, 더욱이 스스로 하는 것이니, 다른 사람들도 모두 하는 것이니, 나이 들었다고 체면부릴 일 없어 좋고, 전혀 쑥스럽지 않아 좋다.
또 빼놓을 수 없는 것은 공짜로 밥을 먹는다는 것.
공짜 싫어하는 사람 없다고 절의 점심공양을 먹으면 왠지 크게 무엇을 얻었다 싶고 그냥 기분이 좋다.
나도 이런 기분을 다른 사람들에게 똑같이 경험하게 할 수는 없을까.
전혀 비굴하지 않으면서, 아니 오히려 기분 좋게 밥을 얻어먹고, 똑같은 기분을 다른 사람들에게 만나게 할 수는 없을까,
부처님의 점심공양이 그냥 공짜가 아니었구나, 깨닫게 되었다.
불심이란 것이 저 멀리 있는 것이 아니었다.
‘한쪽에서 채워진 것을 베풀면서 비우면, 다른 쪽은 받으면서 채우고 그리고 베푸는 것을 배우는 것.‘, 아닐까.
중생을 구제한다는 것이 저 멀리 저 깊은 불경 속에 있는 것이 아니고, 공짜 점심 ‘밥줄’에 있었으니, 나는 오늘 점심 잘 먹은 것이었다.
하산길을 어느 쪽으로 할까.
익숙한 곳이야 서울대 방향이겠으나, 오랜만에 가보지 않은 길, 안양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관악역이라는 이정표가 보이긴 하였지만 초행이라 어디가 어딘지 방향을 잡을 수가 없었다.
아스팔트가 알기 쉽게 틀림없을 방향을 안내하고 있었지만 왠지 선뜻 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오후의 햇볕이 아스팔트와 만나 숨을 틀어막는 것 같기도 하였지만, 5월의 푸르른 기분이 아스팔트 위에서는 금방 숨넘어갈 것 같아서였을 것이다.
정말 또다시 산에서 아스팔트길을 우리는 만나야 하는 것인가.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는 것인지, 멈칫거리는 나에게 샛길 같은 것이 보였다.
이런 곳에 이런 길이 있다니, 올라오면서 만났던 길과는 또다른, 꿈길 같은 길이었다.
‘꿈길밖에 길이 없어 꿈길로 가니......’가 저절로 다시 읊어지는 길이었다. 늦은 5월의 오후 햇볕과 숲 속의 푸르름이 알맞게 조화를 부리면 이런 경치가 연출되는 것일까.
무지 황홀하였다. ‘무릉도원’이라고 뻥을 쎄게 쳐도 좋을까 싶었다.
발바닥 밑에 밟히는 느낌이라니, 촉촉하면서 살갑게 달라붙는 즐거움이었다. 시루떡, 막 구어낸 시루떡 위의 고물을 만지는 감촉이랄까 따끈따끈하면서 고실고실하면서 손 끝에 달라붙는, 입 속에 들어가면 살살 녹아내는 그 느낌, 같은 산 속 숲길이었다.
엊그제 비가 온 뒤여서일까, 산길이 알맞게 물기를 머금어 오늘 오신 산행객들에게 귀한 맛, 귀한 느낌을 선물하는 것이리라.
더 이상 걸어가지 않고 그냥 아무데나 나는 주저앉았다. 거기에 또 계곡물이 좔좔 아니 촐졸촐졸 흐르지 않는가. 이곳저곳 더 예쁜 돌이 없는지 따졌을 것이지만 오늘은 아니었다. 돌이 좀 매끄럽지 않으면 어떠리. 어서 빨리 계곡물에 발을 담궈 이 꿈길 산 속을 더 맛보아야지 조바심내며 밋밋한 바위 위에 털썩 자리를 깔았다.
5월이지만 아직 계곡물은 차갑다. 물속으로 들어간 나의 두발은 깜짝 놀라 소리친다.
‘어, 차가우나 시원하다.‘
3 시간여의 피로와 땀이 단번에 날라갔다.
물기를 말리느나 자리잡은 바위를 난 야전침대로 만들고 배낭을 베개로 삼으니 곧 산속의 낮잠이 되었다. 누가 이보다 더 폼 잡을 수 있으리오.
재벌들의 할아버님이든, 우리 속세에서 잘 나가는 삼관왕이든, 빳빳거리는 우리들의 사.사.사.사님들이든 부러워할 일 하나도 없을 것이며, 오히려 그들이 날 시새움하고 남을 것이리.
얼핏 소란스러움 있어 짧은 잠에서 깼다. 젊은 부부들이었는데, 막걸리병을 흔들다 너무 흔들어 거품이 난리를 낸 것이었다. 수도관이 터지듯 솟구치는 막걸리를 어찌 손으로 감당하리.
어,어,어, 하는 사이에 병 속의 막걸리는 한 컵 수준으로 떨어지고, 한쌍은 날라가버린 막걸리에 아쉬워 어쩔 줄 모르고, 또 다른 한쌍은 막걸리를 날려보낸 갑작스런 미안함에 또 어쩔줄 모르더라. 이를 어쩌나, 그래도 한 사람은 못내 미련이 남는지 남아있는 막걸리를 컵에 딸고 또 딸아 입맛을 다시고 또 다시더라.
주섬주섬 배낭을 다시 챙기고 얼마 남지않은 하산길을 재촉하였는데 길은 여전히 꿈 속같은 그 산길이었으며, 발바닥에 닿는 감촉은 더 달고 뽀송뽀송하였다
젖은 기저귀를 갈아 낀 다음의 갓난아기 느낌이 그러할까.
신선놀음에 도끼자루 썩는 줄 모른다더니, 어느새 꿈길 같던 숲길은 사라지고 갑작스레 황량하기만 한 공사판이 소란스럽게 나타났다.
천당과 지옥의 차이라더니, 이렇게 다를 수가 있는가. 꿈길 같던 숲길은 어디 가고 삭막한 속세가 떡 버티고 서 있단 말인가.
어디서 이 많은 자동차들은 모였으며, 저 괴물 같은 공사판은 무엇인가. 산을 깎았는지 들판을 뒤집었는지 사방이 온통 난장판 아닌가.
공사판의 안내문에서 이곳이 행정구역으로 안양시 만안구인데, 그러면 관악 전철역은 어디에 있는 것인가.
좋기만 하던 꿈 속 같던 숲길이 마지막에 와서 속세의 심란한 난장판으로 변하여 난감해졌다.
‘빨리 더 빨리’
‘많이 더 많이’
아직도 우리에겐 인간과 자연을 조화롭게 만나게 하는 여유가 없는가.
꿈길이 현실과 만나서 우리 인간들을 더 활기차게 만들어내는 지혜는 없는 것인가.
조금만 여유를 가지고 제대로 일을 꾸며 나가면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인데, 얼마나 더 기다려야 한단 말인가.
다음에 이곳을 찾을 때는 꿈속 같던 숲길과 시끄러운 속세가 함께, 더 자연스럽게 어우러져 전혀 다른 새로운 세상이 만들어져 있기를 기대해본다. 오늘 맛본 거북바위에서의 비빔밥 같은 전혀 새로운 예술작품이 태어나기를 기대해본다.
그 날이 멀지 않으리라 믿으면서.
(내블로그; 자연.자유.자존, 2004.6.3, 오마이뉴스글모음에서)==앞부분은 없애는 것이 더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