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인봉 가는 길1---숲속의 교향곡
---성인봉 가는 길1---숲속의 교향곡
울릉도 여행 마지막 날.
독도도 보고 싶고, 성인봉도 올라가고 싶은데,
어디로 갈까?
둘 중 하나, 자유선택 여행을 해야 하는데, 양손의 떡이었다.
������성인봉으로 합시다.������
독도는 늙어서 힘없을 때도 갈 수 있지만,
성인봉은 지금 가지 않으면 언제 다시 갈 수 있을지 모른다,
이번 기회에 성인봉을 가자,
우리집 '그냥'씨의 결론이었다.
실은 바늘이 가자는 대로 따라 가는 것,
우리집은 바늘과 실이 수시로 바뀐다.
나만의 자유셈법.
7월 10일, 아침 7시 10분.
숫자의 조합이 찰떡궁합,
오늘 분명 좋은 일 생길 것,
나는 평소 버릇으로 마음을 부풀어 올렸다.
성인봉 가는 숙소 뒷길은 매우 가파른 아스팔트길이었다.
울릉도의 평균 경사가 25도 정도라고 하였는데, 이곳의 경사는 4-50도가 되지 않을까,
백운대 가는 도선사의 아스팔트길이 양반이라면, 이곳은 다섯 냥,
울릉도에 와서까지 아스팔트길을 통하여만 등산을 해야 한다니,
마음과 발걸음이 더 힘들었다.
낮게 깔린 안개는 후덥지근한 날씨를 더 덥게 만들었다.
비가 내린다면 어떨까,
비 오는 날의 성인봉, 또 특별할 것이나
인간의 이중성이라니, 생각으로만 그쳤다.
이 산 속에 웬 레미콘과 굴삭기?
여기저기 공사판이 한창 벌어지고 있었다.
당분간 일반인들의 통행이 금지되니 다른 쪽으로 하산하라고 하는 것이 아닌가.
이 울릉도 산 속도 이미 개발의 마술에 걸려 있음이었다.
누구를 위한 개발일까.
자연환경은 우리가 잠시 빌려 쓰다가 다시 후손들에게 물려주고 가는 것이라는데,
이렇게 깊은 산 속까지 파헤치고 부수고 해야 우리들 생활이 정말 더 좋아지는 것인가.
아스팔트로 발걸음이 무겁고 가슴이 답답해지고,
굴삭기의 무자비함으로 귀가 멍멍해지고,
레미콘이 쏟아내는 분진으로 눈이 흐릿흐릿하였는데,
몇 걸음 더 나아가니 완죤 신천지.
내 마음 속 도시의 찌든 오염이 한방에 사라질, 한 여름날 이른 아침 자연의 숲 속,
싱싱함, 싱그러움 그 자체였다.
더불어,
꾀꼬리가 구슬 같은 소리로,
뻐꾸기는 조금 구슬프게 그들이 있음을 알려왔다.
어미소는 큰 눈을 꿈벅거리는 것이 우리들에게 무슨 할 말이 있는 것인가,
무엇을 되새김질하며 반추하는 것이 우리들에게 무엇을 전하려 하는 것일까.
닭장 속의 닭들은 ‘꼬꼬닭’, 돼지우리엔 돼지들이 ‘꿀꿀’, 사슬묶인 개들은 ‘컹컹’,
그들만의 평화로운 세계.
이미 순서를 정해놓은 듯 서로 앞 서거니, 뒷 서거니 제 소리들을 내면서,
욕심덩어리 낯선 손님들을 맞이하고 있었다.
심지어 공사판의 소음까지 덜커덩 뚝딱 텅텅 툭턱 거리면서,
이들과 함께 어우러지고 더해지면, 분명 숲 속의 교향곡이 되고도 남았다.
지휘자 없이도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완전한 숲 속의 교향악단,
바로 그것이었다.
발 밑은 바로 가파른 산비탈,
여기저기 밭을 일구어 갖가지 밭작물이 푸릇푸릇 소리를 내고,
길가 이곳 저곳에는 이름 모를 꽃들까지 저마다 존재를 소리 없이 알리고,
다만 내가 잘 알아듣지 못할 뿐, 몰라주는 것일 뿐.
그 중에서 내가 알아보는 것은, 무슨 연유인지 자신만만하게 반짝거리는 짙푸른 동백나무, 연파란 산수국 그리고 거침없이 뽐내는 샛빨간 장미,
이들도 소리지르지 않고도 효과음 크게 내는 것들,
숲 속 교향 악단의 한 자리 하고 있었다.
산비탈을 따라 내려가면 그 끝은 바다, 건설중인 새로운 항구.
반쯤 열린 방파제는 바쁘게 바닷물을 끌어들이고 있고,
방파제가 없는 다른 쪽에는 바닷물과 노닥거리는 듯 한가롭기 그지없었다.
저 멀리 바라보이는 바다는 아예 하늘과 맞닿아 있었다.
바다가 더 이상 참지 못해 하늘을 향해 마구 달려 뛰어올랐는지,
기다리다 지친 하늘이 바닷물의 드넓은 품속으로 빨려들어 흠뻑 빠져버렸는지,
바다와 하늘이 철썩 맞붙어서 어디까지가 바다이고 어디부터가 하늘인지,
사랑은 이렇게 하는 것이야 하는 듯,
우리들 인간더러 헤아려 보라는 듯 하였다.
구름인지 바닷안개인지, 희뿌연 것들이 움직이는 듯 그냥 멈추어 있는 듯,
온통 바다와 하늘을 뒤덮어, 우리들 인간들이 어찌 알아볼 수 없는 그림을 그려놓고 있었다.
다만 드넓게 굽어지는 듯 펼쳐지는 일자형 수평선만이 바다와 하늘을 가르는 경계선이려니,
우리들은 짐작할 뿐이었다.
숲 속의 교향곡이 펼쳐지는 배경으로 누군들 이렇게 완벽하게 꾸밀 수 있을까.
보이지 않는 자연의 손이 아니면, 전지전능한 조물주의 셈 법이 아니라면, 이런 장관을 만들어낼 수 있단 말인가.
'보이지 않는 해‘는 오늘 이 '숲 속의 교향곡'을 보이지 않은 곳에서 지휘하고 있었다.
성인봉 가는 길은 이렇게 열리고 있었다.
(내 블로그; 자연.자유.자존, 울릉도여행기 2004.7.10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