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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고 다리야', 어느 날 일본여행에서

햄릿.데미안.조르바 2024. 1. 14. 16:28
1시간여의 자유시간.
오사카의 번화가, ‘신사이바시’ 거리.
아들과 함께 돌아다니며 또 잔소리할 찬스가 생겼다 좋아하고 있는데,
‘저 혼자 다니겠어요’
내 마음 속을 들여다 보았는지 아들놈이 재빨리 독립선언을 하며 어디론가 사라져버렸다.

나에게는 갑자기 ‘1시간의 자유’가 부담스러워졌다.
명동 같은 거리에서 우리들의 시선을 잡아줄 것이 뭐 있겠어, 1 시간을 어떻게 보내지, 하면서도 이국적인 것이 그래도 뭐 없나, 두리번거렸다.

‘아이고 다리야, 아이고 눈탱이야........’
‘그러니깐 진즉 빨리 좀 여행 한번 가자고 했잖여?’
‘나이들어 돌아다니니 이 고생이지........’
‘눈 아프고 다리 아파 뭐 좀 볼 수가 있어야제, 씨씨..........’

우리집‘그냥’은 얼마 가지도 않아서 더 이상 걷지 못하겠다고 버티는 것이 아닌가.
여행이 본격 시작되기도 전에 몸부림을 하니 이를 어찌하오리까?
여러분, 하루라도 젊었을 때 여행들 가시어요.

여기저기 기웃거리다가 비로소 찻집 비슷한 것을 찾아 들어갔다.
우리의 제과점 같기도 하고 커피숍 같기도 하였다.
어디 시원한 콜라나 한잔 했으면 하고 들어갔는데, 이것저것 제법 마실만 한 것이 많았다.
‘콜라 하나 그리고 이것’
손으로, 눈짓으로 우리의 팥빙수 비슷한 것을 시키면서 이름을 물어보았다.
‘아라이 데스까?’
‘무엇입니까’ 묻고자 했는데, 뱉어놓고 보니 태국말과 일본말이 섞여서 뛰어나왔다.
세계는 이미 ‘퓨전’, 내 입에서 범벅이 되어 나온 것이었다.
음식도 언어도 문화도 범벅 ‘퓨전’, 여행은 이를 몸소 확인하는 것일까?
중년의 남자종업원은 아는지 모르는지 ‘하이, 하이’ 만면에 웃음을 띠면서 주문을 받았다.

카페는 제법 붐볐다. 바쁘게 돌아가는 소리가 눈으로 들려왔다.
우리 옆 좌석에는 네 사람이 비즈니즈 상담을 하는 듯 하였다. 일본식 실용적 비즈니스의 한 단면이었다. 이들은 굳이 비싼 호텔에서 만나지 않는다.
저 멀리 한 켠에는 노부부가 앉아 있었는데 할아버지는 눈을 감고 있고 할머니는 뭔가 열심히 스푼으로 떠먹고 있었다. 황혼의 서글픈 휴식이었다.
그 옆에는 젊은 아가씨들이 담배를 피우면서 까갈갈 웃기도 하고 정신없이 재잘거리고 있었다. 일본의 자유였다. 여성들의 천국이었다.

나는 담배피우는 젊은 여성들을 보면 괜히 마음이 설레는데 오늘도 예외가 아니었다.
그것은 제한된 울타리를 뛰어넘는 그들의 담력과 용기가 있고 거기에 기다리고 있는 황홀한 ‘자유’ 때문일 것이었다.
맨처음 일본에 왔을 때, 도꾜역앞 커피숍, 그 때 처음 여성이 담배를 피우는 것을 보고서 얼마나 놀라고 설레었던가?
오늘 다시 보니 그 때보단 정도가 약하나 흥미로운 것은 흥미로운 것이었다.

그 ‘팥빙수’는 맛있었다. 녹차를 부어서 먹는 것이었는데 삶은 팥과 어우러진 ‘별미’였다.
이것도 또다른 ‘퓨전’인가.

밖은 비가 올 듯 말 듯 잔뜩 찌푸려있고, 뜨끈후끈거리는 날씨.
오랜만에 찾아온 한국인이 녹차팥빙수를 맛있게 먹는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카페속은 바쁘게 돌아가고 있었다.

1000엔 짜리를 주니, 1000엔 받았으며 계산이 920엔이니 잔돈 80엔 드리겠다고 복창을 하였다. 언제 들어봐도 확실해서 좋은 ‘복창’소리, 나는 이런 일본식을 좋아한다.
얼마를 받았는지, 얼마가 남고 얼마가 부족한지, 무엇이 싫고 무엇이 좋은지, 확인 또 확인하는 일본식이 난 좋다. 그렇지 않은 경우의 우리 한국식을 난 싫어한다.
이럴 수도 있고 저럴 수도 있는 것 같기도 한, 두리뭉실 애매모호한, 어영구영의, 대충대충의 그런 표현이 아니어서 난 좋다.
일본은 밑바닥 시장에서도 저렇게 셈이 확실하니 일본 전부가 모이면 그게 힘센 나라가 되는 것이 아닐까.

거스름돈과 함께 주는 영수증을 할 수없이 받아 챙기고 나오는데, 누군가 헐레벌떡 달려오면서 우산을 건네 주었다.
여행사 버스 기사가 비가 올지 모르니 가져가라 하였던 우산을 그대로 놔두고 나온 것이었는데 옆 좌석의 손님이 가지고 온 것이었다.
우리들을 위한 여행사의 준비도 좋았지만, 잊어버리고 놓고 온 우산을 옆좌석의 손님이 챙겨주다니, 또다른 일본인들과의 새로운 만남이었다.

그래서일까, 아이고 다리야 하던 우리집‘그냥’도, 오사카의 번화가라는 것이, 서울의 그것처럼 별거겠어 하던 나에게도, 피곤함이 어느새 사라져버렸다.
몸과 마음이 가뿐해지니 ‘나 혼자서 다닐 거예요.’ 하고 사라진 아들놈 걱정이 되었다.
곧 1 시간의 자유시간이 끝나가는데 ‘새로운 만남’을 잘 만나고 있는지, 어디로 잘못가지는 않았는지, 시간이 갈수록 자그마한 걱정까지 끼어들어 걱정이 점점 커지고 있었다.

만나기로 약속한 시각이 되자 저쪽에서 ‘헬레래’하며 ‘나 잡아 가도 좋아요’ 하는 품새로 걸어오고 있었다. 나는 정말 쓸데없는 걱정만 한 못난 애비가 되었으며, 그는 아마도 ‘새로운 세상’을 조금은 만나고 온 것이 틀림없었다. 저 걸어오는 걸음걸이와 살며시 웃음기가 머물고 있는 훤한 얼굴을 보면.
어른은 아이들을, 부모는 자식들을 품속에 넣어두려 하지말고 품에서 멀리 떼 내어 그들을 자유롭게 해주어야 할 것이며, 그래야 그들 부모 또한 더 자유로울 수 있음을 다시 확인하고 새롭게 또 배웠다.
(내블로그; '자연.자유.자존', 일본여행기 2004.10.4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