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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제도는 당연한가?/송희식

햄릿.데미안.조르바 2024. 1. 1. 00:36

02.02.22.금. 결혼제도는 당연한가?

송희식 (hisic@naver.com)

서울대 경영학과 졸업, 서울지검 검사 역임, 동아일보 2000년 자문위원회 경제부문 자문위원 역임, 現 로마켓합동법률사무소 변호사

 

일찍이 버트란트 럿셀은 이 문제에 대해 고민하다 하나의 대안을 제시한 바 있다. 그가 제시한 대안은 20대의 남자는 40대의 여자와 결혼하고, 20대의 여자는 40대의 남자와 결혼한다. 달리 말하면 이것은 남자가 40대가 되면 이혼하고 20대의 여자와 결혼한다는 것이며, 여자가 40대가 되면 이혼하고 20대의 남자와 결혼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60대가 되면 다시 20세 연하의 남편 또는 아내와 이혼하고 60대의 다른 이성과 결혼한다는 것이다.

 

이 대안적 결혼제도는 남녀의 성적 문제에도 합리적이고, 남녀의 경제적 문제에서도 합리적이라는 것이다 (경험이 없는 사람과 경험이 있는 사람의 결합, 재력이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의 결합).

 

여기에서 더 나아가 결혼제도 자체를 아예 부정하는 제안도 있다. 올더스 헉슬리는 「멋진 신세계 The brave world」 에서 결혼을 범죄로 규정한다. 이유는 결혼이 인간(상대방)의 자유를 제한하는 행동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보면 이혼을 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오히려 이혼을 하지 않고 평생을 같이 사는 사람이야말로 사회제도에 순치되어 인간성을 억압하는 사람들이다. 이를 위하여 과거에는 종교적 관념이 동원되었다. 그것은 한편으로는 여성을 남성에게 종속시키는 방식이기도 했다. 자본주의 제도도 마찬가지이다. 모든 노동 가운데에서도 유독 가사노동에만 임금이 지불되지 않기 때문에 여성은 경제적으로 취약하고 결혼제도에 복종한다. 그러나, 자본주의가 가장 발달한 미국에서도 결혼상태의 가정은 전체 가정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다.

 

이혼 사유도 가지가지

법률가는 사건을 통하여 인간성을 본다. 그렇게 보는 인간성은 참으로 적나라하고 진면목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미스 코리아에도 출전한 일이 있는 어떤 미모의 아내가 있었다. 그런데 이 여자의 불만은 남편이 바람을 피우는 것이 아니었다. 남편이 바람을 피우는 상대 여성이 얼굴도 자신보다 못생기고 몸매도 자신보다 못하다는 것에 더욱 마음이 상했다. 그것은 자존심의 문제였다. 바람을 피우더라도 자신보다 나은 여성은 아니더라도 자신과 경쟁이 될 만한 여성이라면 자존심은 상하지 않겠다는 것이었다.

왜 그 남자는 아내보다 얼굴도 몸매도 못한 여자와 바람을 피우는 것이었을까? 그 이유를 아내는 물론 아무도 알 수 없었다. 그렇지만 그 이유는 지극히 간단하면서도 지극히 심원한 것이었다. 그 남자가 바람 피웠던 여자는 얼굴도 몸매도 신통치 않았지만 섹스에 있어서는 유리같이 민감한 여자였다. 그런데 아내는 얼굴도 미인이고 몸매도 좋지만 (그래서 시각적으로는 좋지만) 정작 섹스를 하기 위해서는 참으로 오랫동안 공을 들여야 했고, 공을 들여도 별로 반응이 없는 여자였던 것이다.

 

이렇게 깊은 이유, 말 못하는 이유 때문에 이혼의 문제가 제기된다. 모든 사랑의 영화는 결혼으로 끝이 난다. 사랑은 시각적이다. 떨어져 있으면 보고 싶고, 혼자 있으면 사랑하는 사람의 얼굴이 떠오르고.... 이 시각적 감정 상태는 결혼하지 못하는 한 계속된다. 그래서 이루지 못한 사랑은 영원하다. 낚아채지 못한(결혼하지 못한) 사랑했던 대상은 마음에 우상으로 남는다. 그러나 정작 결혼하면 우상은 파괴되고 배교하기 십상이다. 그것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다.

 

이렇게 이혼을 제기하는 상황이 되면 이제 부부는 전쟁을 하는 적이 된다. 남편이 아내의 춤바람과 남녀관계를 파고들자, 아내는 남편을 의처증으로 몰아 정신병원에 입원시키는 방식으로 치열한 전쟁을 한다. 이혼 재판의 법정은 결혼생활의 시시콜콜한 온갖 사건들이 자신들이 보는 관점에서는 상대방이 얼마나 비열한가를 보여주는 경연 대회장이다.

 

이혼도 결혼만큼 당연한 것이 되는 세상

다수의 인간들이 결혼을 존중하고 인내하면서 살아간다. 그러나 다음과 같은 스타일의 결합은 조심해야 한다. 명랑한 성격과 우울한 성격의 부부, 스타의식에까지 이르는 자의식이 강한 여자와 사는 남자, 돈 많은 여자와 결혼한 남자, 비실비실한 남편과 사는 여자, 양가부모가 이혼한 남녀, 자의식이 강한 남자와 자존심이 센 여자, 의처증과 의부증을 가진 남녀, 외아들과 외딸인 남녀, 잔소리 많은 여자와 철학자 남자.... 이들은 대개 견디지 못하고 결국 이혼하는 경향이 있다.

 

지금까지는 결혼은 당연한 것이고, 이혼하는 사람은 잘못된 사람으로 생각되어 왔다. 그러나 앞으로는 이혼은 당연한 것이고 결혼을 계속 유지하는 사람이 대단한 사람이라는 평가로 반전될 것이다. 그리고 100년 후쯤에는 그들은 사회에 순치된 남녀, 또는 인간성을 억압하고 있는 남녀로 평가될 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