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퍼진 지갑 그리고 굳어진 마음(2002.2.21)
02.02.21.목. 헤퍼진 지갑, 굳어진 마음
골프를 취미삼아 살다보니 힘든 게 두 가지가 있다.
첫째 고민은 지갑에 있다. 처음 골프에 입문했을 때 골프 비용 때문에 입벌어진 일들이 어디 하나 둘이었는가? 쇳덩어리에 불과한 것 같은 드라이버 가격에 놀라고, 그늘집 삶은 계란 값에 분노하고 말이다. 그러다가 몇 년이 지나고 이제 가격에 무감각해져 버린 내 마음을 보고 또 놀란다. 고민은 그 무감각이 마음뿐만 아니라 실제 소비로도 이어진다는 것이다.
‘살까 말까?’의 잣대가 골프 한 번 치는 20만 원대가 되니 말이다. 예전 같으면 망설이다가 그만둘 일인데, ‘골프 한 번 안치면 될 가격이네. 일단 사지’라며 쉽게 소비해버리는 일이 종종 일어난다는 것이다. 골프 곳곳에 붙어있는 특소세처럼 내 씀씀이에도 특소세가 붙어있는 느낌이다. 지갑은 따라주지 않는데 손만 커져버린건 아닌지........
두 번째 고민은 융통성이 없어졌다는 것이다. 요즘 유행하는 재즈 댄스를 배우자고 며칠째 권유하는 선배들이 있다. 하지만 내 대답은 한결같다. ‘다른 것 배울 시간이 어디 있어요? 그럴 시간 있으면 골프 연습 더 해야지요’ 라는 말로 단호하게 거절하고 만다. 생각해 보면 이번뿐만이 아니다. 일본어도 스키도 헬스도..... 필요를 느끼지만 골프가 발목을 잡아 실행에 옮기지 못한 것들이다. ‘골프도 제대로 못하면서 뭘 다른 취미를 붙이려고?’ 라는 생각 때문이다. 그렇다고 그 시간에 골프를 하는 것도 아니면서, 다른 데 눈을 돌리면 골프가 허물어질 것이라는 생각에 이도 저도 못하고 만다. 골프가 마음의 절대구역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다. 뾰쪽한 수도 없으면서 제2의 대안이 유혹해 와도 좀처럼 마음을 내어주지 않으니..... ‘그냥 혼자 살았으면 살았지, 그 사람이 아니면 내 마음을 절대 내줄 수 없어’ 라고 고집하는 노처녀 마음이 이러할까?
사람이건, 골프건 너무 푹 빠지면 생기는 고민인가보다. 헤퍼진 지갑은 열심히 더 일해서 채운다고 하면, 골프로 굳어버린 마음은 무엇으로 풀어야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