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콧수염을 또 기를까?(2013.1.23)

햄릿.데미안.조르바 2023. 12. 31. 04:26

지난해 태국치앙마이 놀러가서는 한달여 기른 콧수염을 잘라내기가 못내 아까웠었다.

몇해전 죽기전 해야할 일들, 소위 '버킷리스트'중 하나로 '콧수염길러보기'하는 것을 작정했었다가 한번 해보았던 것.

 

이 참에 또 한번 해볼까?

 

지난 1월11일, 농유공 주관 국제참깨경쟁입찰이 공고된후, 오로지 입찰준비에만 몰두하였다.

오랫만에 찾아온, 두번다시는 이런 기회가 없을 것같은 느낌!

사무실을 맨처음 개설하고, 그 다음해 97년, IMF가 터졌던 그 해,

그때의 상황이 재현되는듯 느껴졌다.

준비하고 또 준비하고 집중하고 또 집중하였다.

아무리 준비하고 집중해도 경쟁자들이 어떤 가격구조를 갖고 어떻게 응찰가격을 제시할지 알 수가 없는 노릇.

한치앞을 볼 수 없으니...누가 어떤 가격을 제시할 지 도무지 짐작조차 할 수 없으니...

그래도 나름대로 이것저것 따져보면서 그럴듯한 경우의 수들을 정리해보지만...어떻게 마음을 다스려야할지 한편으로는 둥둥 떠다니는 듯 하고...

응찰일이 가까울수록 마음은 초조하고 불안하기까지 하기 시작하였다.

누가 내마음 속타짐을 알까?

 

마음이 안정을 찾고 평상심을 유지하려면?

이럴때일수록...경험상....큰게임을 앞두고 나는 나만의 버릇이 있다.

조금 뭣한 것이긴하나...

머리를 감지 않는다거나

속옷을 갈아입지않는다거나

면도를 하지않는다거나...

손톱을 깎지않는다거나...

내몸에서 뭣인가 빠져나가는 것을 '스톱'시키는 것.

그러면서 보이지않는 어떤 힘이 내게 있게 하는 것.

 

이번에는 입찰이 공고된 날로부터 수염을 깎지않았다.

하루만에 결판이 나는일이 아니므로 머리를 감지않는다거나 속옷을 갈아입지 않는다거나 보다는 면도를 하지않는 것으로 내마음이 의지할 곳을 마련해주기로 하였다.

한가닥 실오라기라도 되어 보이지않는 어떤 믿음과 연결되는 다리가 되어라 하듯이, 그런 바람으로...

 

그래서일까?

준비한만큼 좋은결과가 나왔다.

지난것보다 더 크고 알찬 것.

먼먼옛날의 영광이 다시 찾아온듯,

잘 되지 않을 때는 참고 기다리면서...때가 이르기를 기다려야 한다고 하더니...

참고 기다리는 것도 능력이라고 하더니...

한참동안 가만히 있기만 하고 아무것도 보여주지 못하니...모두들 날 '가마니떼기'로 여기나싶기도 하고... '그대도 이제는 이빨빠진 호랑이로세' 해왔나싶었는데...

그날 이후 아직 '살아있음' '그것도 아주 건강하게 살아있다!'라고 포효하게 되었으니, 얼마나 기쁘고 기쁜일인가보냐?

큰 덩어리라서 또 그만큼 할 일도 많이 생길 것이고 문제도 많이 터질 것이다.

그래도 까짓것 그동안 해왔던 일들이니 무슨 걱정? 뭐시꺾쩡일 것이냐! 그렇게 풀어헤치고 매듭지어 나가는 것이 나의 일일진대...바로 그것은 일복이 터진 것이요 바로 축복 그것인데 무슨 걱정일까?

 

그날 이후 면도를 하지않았더니 볼쌍사납게 콧수염이 제법 자리를 잡았다.

오늘로 2주째...

흰놈이 검은놈보다 더 많고...듬성듬성 그 세가 변변치 않아 어떤 멋스러움과는 전혀 상관되지 못한 놈이지만..

그 기분으로...

그 기념으로...

아예 그 '버킷리스트 중 하나' 숙제하는 셈으로...

'콧수염을 또 길러보자'싶다.

이 나이되어 뭔가를 저질러본다는 것...

그것은 축복 아닐까?